이글은 경향신문 2013-02-15일자 기사 '“적법절차 없는 교과서 수정명령 위법”'을 퍼왔습니다.
ㆍ대법 “사실상 재검정 불구 심의 안 거쳐”… 저자들 4년 만에 승소
교육과학기술부가 이명박 정권 초기 ‘좌파적 편향성’을 이유로 교과서 내용을 수정토록 한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당시 조치가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교과부가 내린 수정명령을 거부한 학자들이 소송을 낸 지 4년 만에 나온 결과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5일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등이 교과부 장관 등을 상대로 낸 수정명령 취소 청구소송에서 교과부의 손을 들어준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고 밝혔다.
이 소송은 2008년 11월 교과부가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내용 중 55항의 내용을 수정하라고 명령한 것에서 시작됐다. 앞서 같은 해 6월 보수적인 학자들이 중심이 된 ‘교과서 포럼’ 등에서 교과부에 해당 교과서의 내용 중 253곳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한 것을 교과부가 받아들인 결과였다. 저자들은 자신들이 거부했는데도 일방적으로 수정명령처분이 내려지자 이듬해 2월 행정소송을 냈다.
4년 만에 나온 대법원의 판단은 ‘저자들 승, 교과부 패’다. 교과부는 초등교육법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중 “교과부 장관은 검정도서의 경우 저작자 또는 발행자에게 수정을 명할 수 있다”는 부분을 근거로 교과부의 수정명령은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따로 저자들의 동의절차나 새로운 심의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교과부 장관이 수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2심 판결(2011년 서울고법 김창석 부장판사)의 근거도 이와 같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교과부가 내린 명령이 오타 정도를 잡는 ‘수정’ 수준이 아니라고 봤다. 교과서 수정이 헌법을 근거로 한 자주성, 정치적 중립성 등을 기준으로 한 만큼 사실상 재검정에 가깝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수정명령의 내용이 표현상의 잘못이나 기술적 사항 또는 객관적 오류를 바로잡는 정도를 넘어 이미 검정을 거친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새로운 검정절차를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교과서 내용이 새로운 기준으로 상당 부분 바뀌게 됐으므로 처음 교과서를 검정할 때처럼 교과부가 심의절차를 거쳤어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들의 손을 들어준 1심 판결(2010년 서울행정법원 이진만 부장판사)의 취지와도 같다.
대법원이 이날 2심 판결을 파기함에 따라 사건은 다시 서울고법에서 심리하게 됐다. 파기환송심에서는 대법원 판결 취지를 그대로 따르는 관례상 ‘역사교과서 소송’은 사실상 저자들의 승리로 끝나게 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이날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더 이상 국가권력이 교과서 내용을 흔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이번 판결을 환영하는 성명을 냈다. 전교조는 이어 “이번 판결로 정부가 교과서 내용을 통제하려는 행위가 부당함을 확인한 만큼 지난 1월21일 교과부 장관의 교과서 수정명령 권한 및 감수권을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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