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4일 월요일

[한도숙 칼럼]총리후보 낙마를 보며 ‘칼레의 시민’을 생각한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3-02-03일자 기사 '[한도숙 칼럼]총리후보 낙마를 보며 ‘칼레의 시민’을 생각한다'를 퍼왔습니다.
"국민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동일시하는 지도자 보고싶다"

지난해 여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로댕전을 열었던 적이 있었다. 촌놈도 예술감성을 키워보려 작품감상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로댕하면 생각나는 것은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옥문’이라는 작품 속에 설치해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깊은 고뇌에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보며 한국 사회를 돌아보다

로댕의 두 번째 대표작을 꼽으라 하면 ‘칼레의 시민’을 든다. ‘생각하는 사람’과 ‘칼레의 시민’을 보면 두 작품 모두 인간의 깊은 고뇌를 엿볼 수 있도록 표현했다. 좀 다른 것이 ‘생각하는 사람’이 종교적으로 인간근원과 원죄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을 표현 했다면 칼레의 시민은 실재하는 생명의 위협 앞에서 절망과 공포에 떨어야하는 인간실제의 약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본다. 

이승에서 죄를 저지른 인간들이 목에 쇠줄을 걸고 지옥문을 들어간다는 원죄설을 설정하고, 나약한 인간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도록 표현한 ‘생각하는 사람’은 철저히 종교적이다. 반면 ‘칼레의 시민’은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프랑스의 칼레라는 작은 도시가 항복하지 않고 맹렬히 저항하였으나 영국의에드워드3세에 의해 결국 함락 당하고 말았다. 에드워드3세는 칼레의 모든 시민을 죽이려고 했다. 

칼레의 시민들은 불안과 절망,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때 칼레의 유지격인 여섯 사람이 스스로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는 조건으로 칼레시민들은 살려달라는 청원을 한다. 에드워드3세는 이를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다. 그때 칼레의 여섯 유지들이 바로 ‘칼레의 시민’이라는 로댕의 작품이 된 것이다. 

아마 여느 작가 같았으면 여섯 영웅의 의연하고 늠름한 모습을 조각상에 담았겠지만 로댕은 그러지 않았다. 깊은 시름과 고뇌와 괴로움과 공포를 조각상 안에 표현해 낸 것이다. 칼레의 영웅들은 실제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상황에선 여타의 시민들과 하나도 다를게 없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부각한 것이다. 시민들 앞에 의연하게 나서 단두대로 나선 사람들을 기려야하는 로댕의 입장에선 시민들과 수평적 관계를 강조하는 새로운 시도로 오히려 지도자들의 고뇌를 엿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칼레의 시민 누구나 같은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의연히 사회적 의무를 다할 수 있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칼레의시민이 위대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 목숨을 바치겠다는 그래서 칼레를 구하겠다는 지도자들의 스스로의 결단은 말로는 많이 했고 들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내어 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극심한 공포 앞에 의연을 유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상황이 만들어진 사실이라는 이야기도 있긴 하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른 박근혜 인수위와 총리지명

총리 후보 낙마, 대통령 특별사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사람들

인수위에서 하는지 박근혜 당선자가 혼자 쪼물락 거리는지 알 순 없지만 헌법재판소장 지명과 총리 지명이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기 어렵겠다는 말이 여당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총리지명자가 스스로 내려선 이후 또 다른 지명자들이 하나같이 총리자리를 고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우리사회의 지도자연 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보편적 도덕성이 국민이 요구하는 수준이하로 떨어져 있음을 확인한다. 그래서 씁쓸하다. 박근혜당선자는 “이러다가 훌륭한 인재들을 쓰지 못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훌륭한 인재를 가리기 위해 인사청문회를 하는 것인데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나올까 걱정된다. 

더군다나 이명박 대통령은 모두가 반대하는 측근비리와 재벌비리에 연루된 사람들까지 특별사면했다. 용산철거민들을 방패막이로 이용하면서 말이다. 이러니 사회지도자라는 사람들의 도덕성이 자꾸만 하락하는 것 아닌가. ‘먹고 죽은 귀신 때깔이 좋다’는 속된말처럼 뭐든 먹고 보자식의 몰염치로 점철 되는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남용해서 자식들 군대 안보내기, 좋은 학교 보내기위한 위장전입, 살수도 없는 농지를 이곳저곳 사들여 위장 농민되기, 공금 남용에 횡령까지...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의 온갖 비리와 비위가 적발돼도 “다 그런거지” 하며 버티기로 일관하니 그야말로 “화가 난다.” 이들의 버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초록은 동색이란 말도 있듯, 국회에 금뱃지 달고 있는 사람들 말은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국민들 시원하게 해준답시고 하지만, 까놓고 보면 당신들도 털어 먼지 안 나올 재간 없잖아 하며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격인게다. 

배울 만큼 배운이들이라 ‘칼레의시민’이란 로댕의 조각을 모르지는 않을 터이다. 이들은 과연 ‘칼레의 시민’ 앞에서 그들의 고뇌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쥬가 아니더라도 이름을 밝히지 않고 억 단위의 돈을 쾌척 한 사람, 연탄을 한차 보내는 사람, 쌀 수 백가마를 내려두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을 보며 지도자연 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이 국민위에 군림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호의호식 한다면 국민들은 도탄에 헤메이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런 자들이 지도자의 자리에 앉는 것은 호환보다 무서운 일이 될 것이다. 철저한 검증으로 국민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을 지명하기 바란다. 국민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지도자, 국민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동일시 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보고 싶다.

한도숙 한국농정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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