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9일 화요일

‘방송장악정책’으로 본색 드러내는 박근혜 정부


이글은 미디어스 2013-02-19일자 기사 '‘방송장악정책’으로 본색 드러내는 박근혜 정부'를 퍼왔습니다.
[한수경의 미디어의 세계, 세계의 미디어]

요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내놓는 것들은 보면 답답함이 밀려온다. 특히 논란이 되는 방송정책은 ‘장악’이란 단어가 숨겨진 ‘방송장악정책’으로 봐야 할 것이다. 다가올 박근혜 정부와 함께 언론장악이 더욱 심화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약간의 기대를 품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새 정부의 방송정책은 정말 사람 잡는 정책이 될 것이 너무나 자명하다.

▲ 새누리당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가운데)와 신의진 원내대변인이 30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정부조직법 관련 법률 개정안을 제출하고 있다ⓒ뉴스1

MB정부의 출범과 함께 탄생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방송정책에 기여하기는커녕 문제의 원인으로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심지어 방통위를 없애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그 이유는 방통위가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지켜야할 책무는 내팽개치고, MB의 입김을 그대로 반영해 방송을 장악하고 무력화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MB정부는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을 앞세워 방송을 좌지우지하며 방통위는 그야말로 말이 합의제 기구이지 실질적 독임제 기구처럼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다.
방송법 날치기 통과, 조중동매 종편채널 챙겨주기, 미디어렙 여당 단독처리, 방송사 낙하산 인사 등 그동안 방송과 관련해 문제들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낙하산 사장들의 ‘활약’으로 공영방송은 정부의 나팔수가 되었고, 특히 MBC는 난장판이 되어 사퇴해야할 김재철 같은 인물은 버젓이 얼굴은 내밀고 애꿎은 언론인들만 보복조치로 고초를 겪고 있다.
때문에 방통위의 합의제 기능을 강화시켜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회복시키는 것이 언론계와 시민들의 염원이었다. 무엇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 즉 대통령과 정당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사회 각 계층이 참여하는 제도적 개혁으로 적어도 낙하산 사장은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국가와 자본권력으로부터 최소한의 독립을 확보하고 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 회복을 위한 많은 논의와 노력들은 허사로 돌아갔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방송정책에서 제발 손을 떼 줄 것을 요구받았는데, 이 뜻을 완전히 곡해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방통위 기능을 대거 정부부처로 옮겨 아예 발밑에 두겠다는 아주 '창조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내놓은 정부조직개편안은 방송정책 효율성의 제고와 방송산업의 진흥을 위해 방통위의 기능 대부분을 독임제 기구인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시키겠다고 한다. 방송을 ‘효율성’과 ‘산업성’ 논리로 이해하고 있으니 온 사방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논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야당, 시민단체, 방송 및 언론학계 등에서 반발을 하고, 심지어는 보수언론조차 문제라고 하는데, 여당과 인수위는 무엇이 문제냐는 반응이다. 방송정책을 논하면서 정보통신기술(ICT) 진흥과 일자리 창출 등을 말하는데 ‘방송’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더욱이 몇몇 언론학자들이 이러한 산업논리를 내세워 방송정책을 대변하고 있어 말문이 막힌다.  
인수위가 내놓은 방송정책에서 논쟁의 핵심은 ‘방송’을 ‘언론(콘텐츠)’으로 보느냐, 아니면 ‘산업(기술)’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른다. 방송을 보는 이러한 시각차이로 인해 현재 여야가 대결구도로 각을 세우고 있으며, 또한 국내 주요 언론학회 모두 인수위의 방송정책 ‘미래창조과학부‘ 이관을 두고 하나같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방송정책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방송’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방송은 미디어의 일부이다. 미디어(media)란 용어는 국내에선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이해되고 있기에 설명을 덧붙이기도 하는데, 기술적 혹은 산업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혼동을 피하기 위해 종종 ‘미디어’란 용어보다 ‘언론’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미디어(언론)는 일차적으로 전통매체인 인쇄매체와 방송매체를 포함해 뉴미디어로 일컬어지는 인터넷매체를 말한다. 즉 신문, 잡지, 라디오, TV, 또 인터넷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전파하는 것이 미디어이며, 미디어의 콘텐츠엔 뉴스, 시사교양, 문화예술, 스포츠, 또 오락물인 드라마, 대중음악, 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 장르가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 콘텐츠에는 광고도 포함되며, 따라서 광고 또한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보호된다. 

▲ 말레시아 아스트로 위성TV 파라볼라 안테나 출처: Hytar/wikipedia

이러한 미디어 콘텐츠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된다. 미디어의 발달을 살펴보면 왜 미디어와 통신기술을 분리할 수 없는지 이해하게 된다. 먼저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되는 대중매체(매스미디어)라는 말이 생기게 된 신문의 경우를 보자. 신문은 인쇄된 소식정보지로 손으로 적어 배포하는 형태가 아니라 인쇄기(윤전기)로 찍어 우편(혹은 별도 배달시스템)으로 배달된다. 뉴스 콘텐츠는 인쇄기술을 이용해 발행된 ‘신문’이란 종이(인쇄)매체가 통신시스템인 우편제도를 바탕으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즉, 뉴스(콘텐츠) -> 인쇄된 신문(매개체) -> 우편시스템(통신인프라) -> 독자(수용자)에게 전달된다.  
전자파를 이용한 라디오와 TV를 말하는 방송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친다. 즉, 방송프로그램(콘텐츠) -> 라디오/TV/컴퓨터(매개체) -> (정보)통신시스템(통신인프라) -> 청취자/시청자(수용자)’에게 전달된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콘텐츠를 수용자에게 전달시키기 위해 전파매체와 전파수단이 필요하다.     여기서 미디어(media)인 신문과 방송은 콘텐츠를 종이신문, 라디오, TV, 인터넷(컴퓨터) 등의 매개체로 전파시키는 것으로, 이를 가능케 하는 인쇄기술, 우편제도 및 (정보)통신기술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그렇지 않다면 매개 혹은 매체(medium)에서 나온 미디어(media)란 말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 미디어는 통신기술을 바탕으로 발전되어 왔으며, 더욱이 방송은 통신기술을 없이는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콘텐츠를 전파하기 위해 인쇄기술, 우편시스템, (정보)통신기술이 필요한 것이지, 이러한 ’기술‘ 자체의 발달을 위해 혹은 기술의 산업진흥을 위해 미디어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내용이 없는 백지편지를 보내기 위해 우편제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내용물 없는 빈 상자를 보내기 위해 택배가 발달한 것도 아니며, 또한 정보와 데이터가 없는 빈 공간을 보내기 위해 통신기술이 필요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은 말 그대로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기술인 것이지, ‘기술’을 위해 정보를 생산하거나 혹은 기술개발을 위해 우리가 서로 지역과 국경을 가로질러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말하자면 이러한 통신기술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통신기술의 발달로 콘텐츠를 전달하는 방식이 급속도로 달라졌고 또 다양해졌다. 이제는 디지털시대, 방송통신기술 융합시대, 멀티미디어시대 등의 말처럼 통신기술의 발전이 방송정책에도 끊임없이 반영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목적과 수단이 뒤바뀔 순 없으며, 통신기술(수단) 진흥을 위해 방송(목적)을 삼킬 수는 없다.
문제가 되는 방송에서 TV방송을 살펴보자. TV방송은 지상파TV, 케이블(유선)TV, 위성TV, IPTV로 발전해 왔다. 지상파방송은 지상의 송신탑을 이용해 전달되는 공중파로 안테나를 필요로 하는 KBS1, KBS2, MBC, SBS, EBS와 OBS 방송이 이에 해당된다.
케이블TV는 광섬유를 통한 동축케이블(coaxial cable)로 전달되는 무선 주파수 신호를 받아 전파되는 방송으로 안테나가 필요 없으며, 종편채널, 보도채널과 각종 전문채널들이 이에 속한다. 위성TV는 통신 및 방송위성을 이용한 방송으로 지구상에서 위성으로 쏘아 올린 전파를 변환해 지구로 다시 재송신해 이를 파라볼라안테나로 수신해 시청하는 방식이다. 국경을 초월해 해외 프로그램을 위성TV로 시청할 수 있어 채널과 프로그램의 선택권이 확장되지만, 동시에 국제적으로 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FOX, CNN, BBC 등 수많은 채널들이 위성TV로 전파되며, 특히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자국의 방송을 시청하기 위해 많이 이용한다.
그리고 IPTV(Internet Protocol Television)는 흔히 인터넷방송 서비스로 일컬어지며, 컴퓨터를 매개로한 인터넷 프로토콜을 이용한 디지털방송 서비스로 국내에선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으로 정의된다. 기존의 지상파, 케이블 및 위성방송과는 달리 원하는 프로그램을 선택적으로 골라 시청할 수 있는 ‘VOD(Video on Demand)’ 또는 VOIP(Voice over Internet Protocol) 등 인턴넷서비스를 제공하는 양방향성 서비스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방송과 통신기술이 융합된 멀티미디어시대가 된 것이다.  

▲ 방콕의 불교방송 WBTV가 스튜디오에서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장면 출처: 한수경/마이그린뉴스

이처럼 방송은 통신기술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콘텐츠인 방송프로그램을 수용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통신기술이 이용된다. 말하자면 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프로그램 전달방식도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여기서 통신기술은 방송콘텐츠를 전파시키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지, ‘통신기술’ 그 자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방송 관계자들이 프로그램을 생산해 온 것은 결코 아니다. 국내에선 ‘미디어(media)'를 ’콘텐츠‘가 아닌 ’기술‘과 ’산업'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처럼, 방송통신기술에서 마치 방송이 통신기술의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살기위해 밥을 지어 먹는 이치와 같다. 과거엔 밥을 먹기 위해 밥을 짓는 수단으로 솥이 필요했고, 아궁이에 불을 때 밥을 했다. 이 밥 짓는 기술은 점차 발전해 전기밥솥이 개발되고, 계속적으로 발전해 더 편리하고 밥맛을 더 좋게 하는 전기밥통이 개발되고, 심지어 예약취사와 보온은 물론 컴퓨터기술을 이용해 원격조정으로 밥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발달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단지 밥통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가 밥을 먹고 있는가? 또 우리는 밥통기술 산업진흥을 위해 식생활 습관을 밥통산업에 맡겨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밥 먹는 횟수도 밥의 양도 밥통회사가 결정해야 할 것이다. 방송과 통신이 불가분의 관계인 것처럼 밥과 밥통기술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현재 진행되는 방송정책을 ‘산업’으로 이해하는 것은 주객이 완전히 전도된 주장이다.  
그럼에도 방송정책 논쟁에서 방송은 ‘산업’이니 ‘방송정책’이 아니라 ‘방송산업’이라 칭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간의 방통위가 언론장악을 위한 도구로 악용된 것을 막아낼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언론계가 많은 싸움을 해 왔는데, 박근혜 정부는 아예 합법적으로 방송장악을 선언하고 나섰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언론장악 논란이 될 수 있는 ‘지상파, 종편 및 보도채널’은 방송통신위원회에 남겨두었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기타 케이블 및 위성방송, IPTV는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는 것을 마치 방송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고 방송통신기술의 진흥을 위한 것으로 우기고 있다. 이원화된 정책으로 혼란만 가중돼 방송은 더욱 뒤죽박죽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지상파, 케이블, 위성, IPTV 등은 단지 프로그램 전파를 위한 방송통신기술에 따른 구분일 뿐이다. TV가 언제부터 ‘방송콘텐츠’가 아닌 '방송기술'을 전파했는가? 드라마, 영화, 음악, 쇼, 스포츠 등의 프로그램이 콘텐츠가 아니고 기술인가?
국제적으로 오랫동안 수많은 미디어학자들이 ‘문화제국주의’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해 온 이유도 방송콘텐츠가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CNN이나 BBC 같은 보도채널을 통해 서구식 뉴스를 시청해서가 아니라, 영화, 드라마, 음악, 쇼 등 오락프로그램 속에 담긴 메시지 또한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 국민들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어가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부 방송채널만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방송채널이 전파하는 콘텐츠 그리고 광고 또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전달한다. 
언론자유를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인정함은 효율성과 산업진흥 때문이 아니라,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형성과 여론형성이 언론을 통해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민주주의 정치결정과정인 선거에서 ‘나의 대표자’를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여론형성과정은 다양한 정치적 토론과 논쟁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속도’와 ‘경제적 이득’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많은 시간투자와 합의를 위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방송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해 자유롭지 못하고 또 공공성을 상실할 때 민주주의는 제대로 발현될 수 없으며, 이러한 과거로의 회귀는 이미 MB정부의 언론장악으로 뼈아프게 경험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MB보다 더욱 진화한 ‘방송장악정책’을 내놓으며 방송통신융합시대에 어울리는 ‘미래창조과학부’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무조건 믿으란다. 새 정부 출범부터 ‘독재자의 딸 박근혜’라는 오명을 씻기는커녕 애써 증명하며 그 본색을 드러내는 셈이다. 민주국가가 아니라 독재국가로 회귀시켜 인권과 언론자유를 탄압하겠다는 발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독재자들의 논리가 더욱 판을 치니 다가올 ‘미래’가 참으로 암울하다.  

한수경 언론학 박사·마이그린뉴스 발행인  |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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