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4일 목요일

오락가락 민주당, 말 바꾼 당선자


이글은 시사IN 2013-02-13일자 기사 '오락가락 민주당, 말 바꾼 당선자'를 퍼왔습니다.
제주해군기지는 정부가 갈등 조정에 실패한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정치권은 숱한 말 바꾸기로 불신만 조장했고 정부는 주민의 의견을 모으는 절차적 정당성 없이 밀어붙이기만 했다. 해법은 없을까.

제주해군기지 예산을 놓고 막판 진통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31일 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그러나 끝내 ‘공사 중단’이라는 문구를 부대조건에 넣을 수는 없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새누리당 쪽에서 당장 대선 패배 얘기부터 하더라. 전체 결과는 차치하더라도 제주도 표심만 보자는 거다. 제주의 가장 큰 이슈가 해군기지 문제였는데, (박근혜 우세로 나온 대선 결과를 보면) 도민들이 이미 표로 심판한 거 아니냐는 거였다. 어쨌든 박근혜 당선자도 해군기지 문제에 있어서는 이명박 정부와 입장 차이가 없으니… 새 정부 ‘발목잡기’로 비칠 수도 있어 마냥 고집할 수만은 없었다.” 

ⓒ시사IN 자료 강정마을을 지나가는 제주올레 7코스.

그렇게 해를 넘겨 2013년 1월1일 제주해군기지 예산 2009억원은 단 1원도 삭감되지 않고 전액 통과됐다. 물론 ‘70일 동안 민·군 복합항임을 확인하는 철저한 검증을 거친 뒤 예산 집행’이라는 부대조건이 붙었다. 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이 조건은 보란 듯이 무시된 채, 공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야가 합의한 ‘선검증, 후예산집행’을 국방부(해군)는 ‘선공사, 후예산집행’ 논리로 돌파하며 공사를 강행 중이다. 

70일을 둘러싼 여·야 간의 공방 역시 이어지고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월2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부대조건이 공사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우원식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월4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예산을 집행하지 않으면 공사가 중단되는 게 당연한 일이라며 ‘공사 중단’ 이라는 용어를 빼자고 한 게 이한구 원내대표다”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싸움이 벌써 7년째 이어진다. 1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비용이 투입되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은 지난 7년간 끊임없이 소란스러웠다. 제주해군기지는 국책사업 시행에서 정부가 갈등 조정에 실패한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왜, 강정마을은 이처럼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얻게 됐을까. 천혜의 자연환경과 지역을 둘러싼 안보 이슈도 중요하지만,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 사업을 둘러싼 ‘거짓말’이다. 정부와 군, 그리고 정치권은 지난 7년간 문제 해결은커녕 불신만 조장해왔다.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 갈등 중재는 불가능하다. 법과 절차는 번번이 무시됐고, 정치권은 제주해군기지를 이슈화해 표를 얻는 데만 골몰했다. 

ⓒ뉴시스 1월10일 강정마을 주민들이 제주 서귀포시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 정문을 막고 있다.

오락가락 민주당, 말 바꾼 당선자

2007년 2월 “해양대군을 육성하고, 남방 해상 교통로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던 한명숙 전 총리는 5년 뒤인 2012년 3월, 강정마을을 방문해 “여러분과 손잡고 강정마을을 지켜내겠다”라고 약속한다. 참여정부 당시 제주해군기지를 찬성했던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전 장관, 그리고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전 민주당 대선후보도 이 ‘말바꾸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참여정부의 ‘원죄’는 당장 새누리당의 공격 포인트가 된다. 민주당은 이에 대항할 논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거치며, 한·미 FTA와 함께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참여정부발 쟁점’으로 떠올랐다. 선거기간 내내 민주당은 ‘공사 중단 후 재검토’를 당론으로 유지해왔다. 그러나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1월15일 한 보수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관한 당론 변경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일각에서 민주당의 ‘좌클릭’을 선거 패배의 이유로 제기한 탓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정권심판론’이라는 정략적 차원에서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했다는 비난은 불가피하게 됐다. 민주당 역시 근본적 해결보다는, 표를 얻기 위해 강정마을을 활용한 셈이다. 

원칙과 신뢰를 자신의 브랜드로 내세우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 또한 제주해군기지와 관련된 말 바꾸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2007년 6월 “도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한 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던 박 당선자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제주해군기지 반대세력을 ‘100%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세력’으로 규정한다. 

박 당선자는 2012년 10월 제주를 방문해 “민·군 복합 관광미항 건설은 제주 도약을 이끌 수 있는 중차대한 과제로 안보와 제주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크루즈 관광허브로 확실히 키워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제주를 하와이처럼, 해군기지를 진주만처럼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공약이다. 그러나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하와이의 진주만 해군기지가 골치 아픈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절차적 정당성’은 어디로?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라고 비판한다. 문제의 시작인 7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2007년 4월 당시 강정마을 총회 회의록에 따르면 마을 전체 주민 1900여 명 중 단 87명이 모여 한 시간 만에 박수로 해군기지 유치를 가결해 해군기지 건설 후보지로 신청한다. 형식적으로는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주민 동의를 받았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숫자다. 설명회와 공청회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강정마을은 애당초 해군기지 후보군에도 없었던 지역이다. 

2002년에는 화순에서, 2005년에는 위미에서 주민들의 강한 반발로 해군기지 유치에 실패한 해군과 제주도는 이후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제주시 ‘제주해군기지 영향조사 연구팀’은 찬반 결정 방식으로 주민투표, 설문조사, 시민 배심원 제도, 제주도의회 결정, 제주 도지사 결정 등 5가지 방법을 제시했고, 도는 이 중 ‘조사결과에 대해 반대 측의 수용성이 가장 낮은’ 여론조사로 사업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려했던 대로 졸속과 오류가 있었다. 2007년 7월24일 KBS제주 보도에 따르면 표본 추출이 부실하게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예를 들면, 20대 이상 표본이 199명이라고 기록된 대천동의 경우, KBS제주가 전문기관 두 곳에 분석 의뢰한 결과 79명에 불과한 식이었다. 반대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젊은 층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여론조사는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결정하는 ‘유일하고 객관적인 근거’가 된다. 

결국 2007년 8월, 강정마을회는 주민 재투표를 실시한다. 725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이중 680명(94%)이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더 많은 주민이 참여한 이 재투표는 주민 의견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2011년 8월 야 5당 제주해군기지 진상조사단이 펴낸 조사보고서를 보면 “대다수 마을 주민이 해군기지 사업을 정확히 이해하거나 숙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고, 유치결정 과정에서 마을 주민의 참여와 의견 수렴이 충분하게 보장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적혀 있다. 

국책사업을 이유로 강정마을 절대보전지역 지정을 도의회가 ‘날치기’로 해제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절대보전지역 제도는 제주도개발특별법(1991.12.31. 법률 제4485호로 제정)이 제정될 당시 무절제한 개발로 훼손되어가는 자연을 보전하고 제주도 고유의 자연적 특성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 지역을 ‘영구히’ 보전하기 위해 도입됐다. 강정마을은 2004년 10월27일 절대보전지역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해군은 절대보전지역 해제를 신청하면서 “주민들의 동의를 득하여 선정된 입지이므로” 따로 주민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해제 면적 역시 절대보전지역 면적(82만6000m²) 대비 12.7%(약 10만5000m²)에 불과한 ‘경미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2009년 12월17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는 절대보전지역 지정 해제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킨다. 그러나 제주시가 펴낸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건설예정지 내 절대보전지역 변경(축소) 조사 검토서’에 따르면 “2004년과 2009년 환경여건이 변화되지 않았음”이라고 적혀 있다. 해제의 명분이 전혀 없었다는 걸 의미한다. 이로써 법률에 지정된 절대보전지역 제도는 무력해졌다. 

김태환 전 도지사의 ‘이중 체결’도 도민의 분노를 샀다. 제주도는 2009년 4월27일 국방부 및 국토해양부와 제주해군기지 건설 관련 기본협약서(MOU)를 체결하면서, 눈속임을 위해 ‘이중 협약서’를 만들었다. 서명은 ‘해군기지’ 제목의 협약서에 하고, 도민들에게는 ‘관광미항’이라는 제목의 협약서를 공개한 것이다. 

민항이냐, 군항이냐…계속되는 논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제주해군기지가 민항을 중심으로 하고, 군용 선박은 기항만 하는 ‘민·군 복합형 기항지’가 될 것이라고 약속해왔다. 민항을 주된 기능으로 하되, 필요 시 해군이 정박하는 시설로 쓴다는 의미였다. 

정권이 바뀌면서 제주해군기지의 이름도 ‘살짝’ 바뀌었다.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제주해군기지에 15만t 크루즈 두 척이 동시 기항할 수 있는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으로 건설하겠다”라고 공약한다. 그렇게 2008년 9월, 제주해군기지의 공식 명칭은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으로 확정된다. 중요한 것은 이름보다 정부 투자계획이다. 크루즈항은 534억원, 해군기지에는 9770억원으로 군항 예산의 규모가 민항 예산의 18배가 넘는다. 예산은 군항 위주 건설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셈이다. 

2011년 국회 예결위원회는 이 같은 이유로 2012년 예산 422억원의 대부분을 삭감했다. 국회가 문제 제기했던 ‘설계 오류’ 역시 확인됐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2012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한 15만t 크루즈가 전 세계에 6~7척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또한 해군 내부 자료에 따르면 제주해군기지는 설계상 15만t 크루즈 두 척의 동시 접안이 불가능했다. 같은 해 2월17일 총리실이 주관하는 ‘크루즈선박 입출항 기술검증위원회(기술검증위원회)’가 꾸려졌다. 

그러나 민주당 장하나 의원실이 입수한 기술검증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이 기술검증위원회는 해군기지 공사 강행을 위한 ‘들러리’였음이 드러난다. 1차 회의(2012년 1월26일)와 2차 회의(2012년 1월30일)에서는 15만t 크루즈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군항으로 픽스해놓고 크루즈 부두 한다고 하다보니…” “(이명박 대통령이) 왜 화끈하게 15만t을 불렀는지 모르겠다” “충분히 검토했다면 15만t은 안 나왔을 것”. 

4차 회의(2012년 2월14일) 회의록에서는 “총리실에서는 검증문제가 조기 매듭지어지고 국책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그런 방침으로 검증위원회도 구성한 것이고, 그 점을 고려해 종합 결론을 도출해주셨으면 좋겠다” “어떤 방법으로도 설계 변경이 일어나지 않는 방법에서 기술적 대안을 찾아달라”라는 ‘당부’가 발견된다.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라는 검증위원회 참석 인사의 발언이 있었지만, 결국 검증위원회는 ‘항만설계를 크게 변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선박 시뮬레이션을 하라’는 보고서를 채택한다. 

2월19일 국방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설계에 근본 오류가 있다거나 입출항이 불가능하지 않다”라며 검증위원회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항만 내부와 항로 설계 일부를 변경한다(변경된 설계 역시 기술적·법적 논란이 있다). 그리고 2월22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제주해군기지 공사 강행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했다. 여러 정황이 ‘민항’이 불가능함을 시사하고 있고, 우근민 제주도지사 역시 “해군기지에 민간 선박은 입출항을 할 수 없다”라며 무늬만 ‘민·군 복합항’임을 인정했지만 정부 내부의 ‘다른 목소리’들은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그해 3월, 구럼비 바위는 폭파되기 시작했다. 

2012년 예산 통과 후 ‘70일 부대조건’에 따라 정부는 1월17일과 18일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 역시 “총리실 주최라는 비독립적 검증 주체, 불완전한 전제조건, 부족한 검증기간 등 문제점을 안고 있다”라고 시민단체와 강정마을회는 문제를 제기한다.  

누구를 위한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인가?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지난해 9월 대정부 질의에서 문서 하나를 공개한다. 해군본부가 2010년 발행한 ‘08-301-1 시설공사 공사시방서’였다. ‘설계적용’ 난에는 ‘CNFK(주한 미해군사령관) 요구조건(DL(-) 15.20m)을 만족하는 DL(-) 17.40m로 계획’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주한 미해군사령관이 요구한 계획 수심은 핵추진 항공모함(CVN 65급)에 적용되는 수심이었다. “미군 항모의 제주해군기지 입항 가능성이 없다”라는 국방부 주장과 배치되는 문서였다. 

장 의원은 “한국에는 있지도 않은 항공모함을 시뮬레이션의 대상 선박으로 설정한 이유는 제주해군기지가 미군의 상시적 활용을 전제로 한 기지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다”라고 말했다. 

그뿐 아니다. 국방부가 해군기지 건설의 경제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항모의 입항을 전제로 했다. ‘키티호크호 승조원 5200명, 구축함 등 군함에서 800명 등 6000명의 인원이 제주해군기지에 입항할 것으로 추산’한 것이다. 국방부는 미군이 하루 300달러씩 소비할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이유를 경제효과의 근거로 제시했다. ‘접점’은 없을까? 

반대 세력과의 ‘대화’는 없었다. 공권력의 폭력과 탄압이 있었을 뿐이다. KBS제주는 2009년 1월29일 단독 보도를 통해 정부 주요 기관이 반대 세력 진압을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했음을 폭로했다. 보도에 따르면 제주도·해군·국가정보원·제주지방경찰청·환경부 등 관계자 15명이 제주시 전복요리 전문점 ‘산호전복’ 회동에서 “고소·고발을 해줘야 경찰도 조처가 가능하다” “인신 구속 등이 있어야 반대 수위가 낮아진다” 따위로 제주해군기지 반대 여론을 제압하기 위한 대책회의를 가졌다. 

강정인권침해조사단이 2012년 10월 펴낸 ‘제주해군기지 건설과정에서의 강정마을 인권침해 조사보고서’와 장하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7년간 업무방해와 공무집행방해 따위 이유로 연행된 사람만 700명이 넘고, 이 중 22명은 구속, 480명은 기소 상태다. 법과 공권력을 통해 갈등을 ‘종료’시키려고 한 결과다. 군(해군)이 민간인을 폭행하는, 군복무에 어긋난 사례들도 보고됐다. 군사시설을 짓는 단순 사업장에서 해군이 ‘군사작전’을 펼친 것이다. 

정부는 갈등 조정자 구실을 방기했다. 청와대(사회통합수석 및 외교안보수석), 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회, 국무총리실, 특임장관실, 국방부, 국민권익위원회 등 제주해군기지로 인한 갈등을 해결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여러 기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 시행자인 해군 측에만 책임을 떠맡긴 채 ‘적극적 구실’을 거부하고 있다. 

2011년 6월2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임태희 당시 대통령실장은 청와대의 적극적 구실을 요구하는 민주당 김재윤 의원에게 “제주도의 문제는 제주도에서…” “도민 대다수는 찬성”이라는 기존 방침만 되풀이했다. 같은 해 6월2일 대정부질의에 출석한 김황식 국무총리도 마찬가지였다. “적법 절차에 따라 이뤄졌고, 국가를 위해 주민의 일부 반대가 있다고 해도 할 것은 해야 하는 것이 국가 의무다.” 

사업진행률 22%, 정부와 군은 같은 방침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 이처럼 갈등을 방치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정부가 적절한 방안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반대 세력이 ‘제풀에 지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방치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처럼 ‘선심성’ 선거 공약으로 시작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의 경우 사업의 필요성과 타당성, 국민적 공감대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추진되기 십상이다. 졸속 추진의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주무부처와 공공기관은 갈등 상황에서도 사업을 지속하려는 속성을 보인다. 열린우리당 당시 한 당직자는 “참여정부의 최대 실책이 있다면 관료에게 포섭당한 것이다. 당시에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들여다봤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끌려다니면 안 된다’는 관료들의 말을 더 신뢰한 게 패착이었다”라고 말했다. 

갈등 해결의 실마리는 있다.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따라 사업 주무장관인 국방부 장관이 ‘민관갈등조정협의회’를 구성·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 또한 거부해왔다.  

제주해군기지에 대해 이명박 정부와 비슷한 기조를 보이는 박근혜 당선자는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법과 공권력으로 ‘진압’되는 갈등은 필연적으로 재앙의 씨앗을 품게 되어 있다. 여러 언론에서 인용하는 강정마을 주민 대상 ‘정신건강 실태조사’의 결과 역시 그렇다. 적대감·우울·불안·강박 등 정신적 이상 소견이 있는 사람이 전체 주민 중 75.5%,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전체 주민의 43.9%로 제주도민 평균 (8.1%)에 비해 5배 이상 높다. 

장일호 기자  |  ilhostyle@sisain.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