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2-07일자 기사 '우리아이 우열반 내모는 ‘이동수업’의 둔갑술'을 퍼왔습니다.
[권재원의 교육창고] 이주호 장관, ‘교과교실제’를 선진형으로 일원화해야
임기가 한 달도 안 남은 이주호 교과부장관이 또 망신을 당했다. 이번에는 교과교실제 때문이다. 이주호 장관의 야심찬 프로젝트로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 가며 수많은 시범학교들을 선정해가며 추진했던 이 교과교실제 사업이 속빈강정에 예산낭비도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한겨레 신문 2월 3일)
기사 내용은 이렇다. 서울시교육청이 교과교실제를 시범실시한 학교들 중 8개교를 골라 감사한 ‘2012년 하반기 교과교실제 운영 실태 정책감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교과교실제 예산 74억 2650만원 중 6억 7676만원이 이와 무관한 용도로 사용되는 등 예산낭비도 심각한데다가, 교과교실 활용도도 44%로 낮고, 학생들의 만족도도 30% 미만으로 저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사를 근거로 교과 교실제를 속빈강정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학급 중심으로 운영되는 초등학교와 달리 교과 중심으로 운영되는 중·고등학교에서는 교과 교실제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이 지정된 학급 교실에 머물러 있고, 교사가 시간표에 따라 해당 학급 교실로 찾아가서 수업하는 것을 너무 당연시 했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의 중등학교에서는 교사들이 각자 자기 교실에 있고 학생들이 시간표에 따라 해당 교과 교실로 이동하면서 수업을 듣는다. 교사들의 사무실도 해당 교실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교사들을 한곳에 몰어 넣은 우리나라의 교무실 같은 공간도 필요하지 않다.
물론 모든 교과 시간에, 모든 교사가 주입식 강의로만 수업하고, 교과서, 백묵, 칠판만을 사용하여 수업한다면 교과 교실제는 필요 없다. 그리고 실제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교과 교실제가 필요 없는 수업만 이루어져 왔다. 운동장에서 활동해야 하는 체육, 교실마다 피아노를 설치하기 어려운 음악, 그리고 실험도구가 필요한 과학 정도가 별도의 교실을 사용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는 모든 교과의 모든 교사들이 획일적인 방식의 수업을 한 탓이 아니다. 거꾸로 똑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획일적인 수업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 학급에 11개 교과의 교사들이 번갈아가며 수업을 하는데, 이 교과와 교사들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교실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교사는 그룹별 토론을 위해 책상을 4~5개씩 뭉쳐 놓기를 원하고, 수학교사는 6열로 질서정연하게 줄이 맞춰진 일반적인 교실을 원하고, 도덕교사는 책상이 교실 가장자리로 가고 가운데 신체표현을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기를 바란다면, 지금과 같은 체제에서 이게 과연 가능하겠는가? 그러니 가장 간편한 방법인 교과서 중심의 일제식 강의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학생이 과목별 교사가 상주하는 학급을 찾아다니며 수준별로 수업을 받는 교과교실제가 2010년 3월부터 전국적으로 일부 중·고교를 대상으로 시행된 가운데 울산의 한 중학교에서 교사가 숫자로 된 학급표지판을 과목과 담당교사가 표기된 학급표지판으로 바꾸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니 이주호 장관이 교과 교실제를 장려 했다는 것 자체는 문제 삼을 것이 없다. 문제는 이주호 장관이 실제로 추진한 것이 이런 교과 교실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실 위의 이유에서 실시하는 교과 교실제였다면 특별히 예산이 들어갈 일도 없기 때문에 학교당 9억의 예산이 들어가서 전용했느니, 낭비했느니 따질 이유도 없다.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교가 학급수가 줄어서 교사 수 보다 교실수가 많다. 그러니 교사들이 각자 교실 하나씩 맡아서 자기 수업에 최적화 된 공간으로 꾸며 놓으면 그만이다. 담임을 맡은 교사가 맡은 방은 조·종례 시간이나 자치활동 시간에는 학급 공간으로 활용하고, 수업시간에는 교과교실로 활용하면 된다.
그러나 이주호 장관이 실제 추진하려 했던 것은 이런 교과 교실제가 아니라 수준별 이동수업을 통한 경쟁교육의 강화였다.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선호하는 교과교실제를 미끼로 내걸어서 수준별 이동수업을 강화하려 한 것이다.
수준별 이동수업이란 한 학급의 학생들이 특정 교과 시간(주로, 영어나 수학)에 성취 수준에 따라 별도 편성된 학급으로 분산되어 수업 받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우열반을 더 세분화 한 것이다. 현재 교육과정에 따르면 국영수사과는 수준별 수업을 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게 반드시 분반 수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학생들이 수준에 따라 적절한 학습기회와 자료를 제공받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는 굳이 분반을 하지 않고 한 교실 안에서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 핀란드 교육의 비결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경쟁교육을 신봉하는 이주호 장관과 교육당국은 이를 수준별 학급편성으로 이해했다. 급기야 이들은 영어, 수학 교과를 3개 학급 단위로 5개 수준별 학급을 편성하는 수준까지 밀어 붙였고, 국어, 과학까지도 이렇게 분반시켜서 수업하는 것을 권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이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져 수업을 받을 추가적인 교실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학교마다 3개 학급당 최소 2개 이상의 영어교실, 수학교실, 그리고 국어교실이 요구되는데, 24학급짜리 학교라면 이 세 과목이 돌려가며 사용하더라도 최소한 6개 이상의 교과교실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리고 기왕 하는 김에 사회, 도덕 같은 교과에 생색내기로 1~2개의 교과교실을 배당한다면 10개 정도의 교과교실의 증설이 필요하다. 이게 이 정부가 추진하는 교과교실제의 실상이다.
물론 교과부는 이렇게 대놓고 수준별 이동수업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교과 교실제를 선진형, 과목중점형, 수준별이동수업 형으로 나누어 제시하였다. 이 중 선진형이란 것 만 교과 교실제의 원 의미에 가깝고 나머지 둘은 전혀 관계가 없다. 과목 중점형이란 예술, 영어, 과학 교과를 중심으로 교과교실을 운용한다는 것인데, 이미 대부분의 학교에 미술실, 음악실, 과학실이 설치·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현행 제도와 차이가 없다. 그런데 교과부 자료에서는 선진형(전 교과 동시 실시), 과목 중점형(예술, 영어, 과학 교과 실시), 수준별 이동수업형(수준별 이동수업 교과 실시) 이런 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교사들은 1번을 선택하면 뭔가 큰 일이 날 것 같이 느끼기 때문에 특정 교과만 바빠질 것 같아 보이는 2, 3번에 표가 몰리게 되어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교가 과목 중점형이나 수준별 이동 수업형을 선택했고, 선진형을 선택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애초에 교과교실제와 무관한 수준별 이동 수업형과 사실상 현행 그대로인 교과 중점형을 같이 섞어서 선택할 수 있게 한 것부터 교육당국이 교과 교실제를 제대로 할 의지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이제라도 교육당국이 교과 교실제를 제대로 실시하고 싶다면, 그 방법은 어렵지 않고, 돈도 별로 필요 없다. 교사가 교무실이 아니라 각자의 교실에서 근무하면 된다. 그 교실을 자신의 교과와 교육철학에 맞게 디자인하고 가꾸면서 학생들과 계속해서 새로운 수업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다. 이건 행정적으로도 간단하다. 교과 교실제의 유형을 이른바 선진형으로 통일하면 된다. 교과 중점형이나 수준별 형은 사실상 교과 교실제도 아니다. 물론 그 댓가는 교사들을 한 군데 몰아 넣는 교무실이 사라지기 때문에 감시하고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가 북한이 아닌 다음에야 교사들을 감시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 부디 예산 낭비하지 말고 제대로 된 교과 교실제를 실시하기 바란다.
권재원 풍성중 교사 | hagi8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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