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1-07일자 기사 '추울라…목도리 둘렀네 ‘국민소녀상’'를 퍼왔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만든 소녀상. 날씨가 추워져 털모자와 목도리를 한 소녀상의 무릎에 7일 낮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이 놓여 있다.(왼쪽) 비가 오면 시민들은 소녀상에 비옷을 입혀줬다.(오른쪽) 김경호 신소영 기자, 뉴시스 jijae@hani.co.kr
위안부 소녀상, 국민동상 된 비결은 ‘탈권위’
우러러만 보던 기존 동상들과 달라
시민들이 양말·목도리 등 애정표현
일본대사관 앞 설치도 상징성 부여
위안부 문제 주목도 높이는 효과도
소녀상 설치, 그후 1년
7일 낮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1047차 정기 수요집회’가 열린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집회에 참석했던 길원옥(84) 할머니와 김복동(86) 할머니가 자리를 뜨자 소녀상이 할머니들을 대신해 선물 세례를 받았다. 소녀상의 무릎에 꽃다발이 놓였고, 소녀상 옆 빈 의자에는 일본인 여성들이 접어온 종이학 수천마리가 자리했다.수능 예비소집일이기도 했던 이날 열린 집회에는 수능을 보는 고3 선배들 덕에 학교를 일찍 마친 남녀 고등학생들이 수십명 몰렸다. 집회가 끝난 뒤 이들은 소녀상과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느라 바빴다. 이날 수요집회에 참석한 경기도 김포초등학교 유동아(11)군은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요. 날씨가 추운데 발이 따뜻하라고 수면양말을 신겨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지난해 12월14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세운 소녀상을 피해자 할머니들이 어루만지고 있다.
소녀상은 이미 ‘동복’ 차림이었다. 누군가 손수 뜬 것이 분명한 털모자와 털목도리를 둘렀고, 무릎에는 담요를 덮고 있었다. 맨발에는 양말도 신었다. 소녀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운성(48)씨는 “소녀상의 발 앞꿈치는 땅을 딛고 있기 때문에 일반 양말을 신길 수가 없는데, 3주 전쯤 가보니 양말이 신겨져 있어서 깜짝 놀랐다. 가만히 보니 소녀상 발에 신길 수 있도록 특별히 만든 양말이었다”고 말했다. 소녀상이 현재 신고 있는 양말은 발바닥 부분 없이 발등만 덮게 돼 있다.시민들은 철마다 소녀상에게 다른 옷을 입혀왔다. 지난해 12월14일 수요집회 1000회를 기념해 소녀상이 제막된 날부터 시민들은 소녀상의 휑한 발목을 담요로 감쌌다. 설날에는 소녀상도 한복을 입고 조바위를 썼다. 장마철에는 비옷을 입었고, 경비를 서던 경찰관이 우산을 씌워주기도 했다. 일제로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키지 못한 것을 사죄라도 하듯 시민들은 험한 날씨로부터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힘을 보탰다.이처럼 소녀상이 ‘국민 동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소녀상을 기존 동상들과 차별화하는 핵심은 ‘탈권위’다. 등신상을 기본으로 높은 좌대 위에 올라가 있는 기존의 동상들과 달리, 소녀상은 시민들과 같은 땅에 발을 딛고 눈을 맞출 수 있다.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큐레이터는 “기념비적인 동상들은 그리스·로마의 황제나 영웅의 조각상처럼 사람들이 우러러보도록 만들어 놨다. 반면 위안부 소녀상은 대지 위에 우리와 같이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음으로써 시민들이 사진도 찍을 수 있고 만져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한 시민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 앞서 비에 젖은 평화비 소녀상을 닦고 있다. 뉴시스
일본대사관 앞이라는 장소도 소녀상을 특별하게 만든다.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은 “공공미술은 장소의 맥락에 따라 정서나 감성을 증폭시키는데,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이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이순신 동상이 전혀 상관이 없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어 별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소녀상이 특정 인물을 형상화하지 않은 점도 기존 동상들과 차별성을 지닌다. 반이정 미술평론가는 “전쟁이나 인물을 기념하는 관제의 방식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감동이 생긴다”고 말했다.시민들과 눈높이를 맞춘 소녀상 덕분에 수요집회의 분위기나 위안부 문제에 접근하는 사회적 시선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판수(73) 자원활동가는 “소녀상이 생기고 피해자로서 배상과 사죄를 촉구하는 수준을 벗어나 축제의 장이 됐다”고 말했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는 “시민들이 목도리 하나라도 걸쳐주고 손이라도 잡으면서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참여의식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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