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IN 2-12-11-21일자 기사 '원자력 안전을 위한 긴급 제언'을 퍼왔습니다.
원자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실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원자력안전위원장을 반핵 혹은 탈핵 인사 중에서 임명하도록 법제화하는 것이다.

선거판에 가려져 있지만, 지금 이 나라의 가장 긴급한 현안은 원자력 문제다. 제아무리 좋은 정부가 들어선다 하더라도, 만약 현재 운전 중인 23기의 원전 어디선가 중대사고가 터진다면 이 나라는 전면적 붕괴를 면할 길이 없다. 그런데도 정부와 관계 전문가들은 “우리 원자력은 안전하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후쿠시마라는 대참사를 보고도 이런 자세를 고치지 않고 있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더욱이 요즘 우리는 원전 현장에 온갖 부조리·비리·불법이 만연돼 왔음을 알려주는 뉴스를 부쩍 자주 접한다. 원전에 오랫동안 납품 비리가 계속되어 왔다거나 원전 근무자의 기강해이 혹은 감독기관의 직무유기가 도를 넘어섰음을 말해주는 보도를 보며 우리는 분개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도처에 불법과 비리와 몰상식이 활개 치는 사회에서 원전이라고 예외일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부조리와 비리는 한국의 원전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일본 국회에 의해 꾸려진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독립조사위원회’는 지난 7월 보고서에서 ‘핵 사고로부터 안전해야 할 국민의 권리’를 짓밟은 후쿠시마 사고의 근본 원인은 지진이나 쓰나미가 아니라 ‘원자력을 취급하는 기관과 개인들의 용서할 수 없는 무지와 교만’에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요컨대 후쿠시마 참사는 불가항력의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무지와 교만’은 정부와 산업계·언론·학자들 사이의 뿌리 깊은 유착관계에 의해 조장·강화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이 범죄적인 ‘유착관계’를 폭로해준 생생한 현장 증언이 하나 있다. 그것은 독일의 반핵 활동가들이 만든 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일본계 미국인 기술자의 증언이다. 이 기술자는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를 제작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사의 직원으로서 여러 해 동안 후쿠시마 원전 상태를 점검하는 일에 종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원자로 내부의 증기 건조기가 거꾸로 부착돼 있는 등 허다한 결함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러한 안전상의 중대한 위험을 지적할 때마다 회사 측이 침묵을 강요하고, 보고서 내용을 수정·조작할 것을 지시했다는 사실이다. 더욱 기막힌 것은 나중에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 정부와 관계기관에 이 내용들을 알렸으나 일관되게 묵살돼 왔다는 점이다. 말할 것도 없이 안전대책을 강화하는 데에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미국 회사든 일본의 관계당국이든 쉬쉬하며 사실을 은폐하고, 위험을 방치해 왔던 것이다.
이 믿어지지 않는 일들은 핵 혹은 원자력을 보유하거나 운영하고 있는 나라라면 어디서든 공통된 현상이다. 비단 경제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군사적 측면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관련 정보는 늘 은폐되고, 국민은 항상 거짓말만 들을 수밖에 없는 게 원자력의 현실이다. 그런데 그러한 비밀주의의 궁극적인 결과는 ‘국익’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국가의 멸망을 초래한다는 게 문제다.
위험 은폐, 원자력 보유국의 공통된 현상
지난 5월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매우 중요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 연구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같은 대규모 원전 사고가 터질 확률은 10년 내지 20년마다 한 번씩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원전은 괜찮다”라는 허튼 소리가 얼마나 근거 없는 발언인가를 드러내는 연구 결과이기도 하지만, 정작 두려운 것은 이 연구소의 예측이 현실화될 경우다.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100년 안에 북아메리카·서유럽·동아시아를 비롯한 북반구 전역이 완전히 거주 불가능한 땅으로 변해버린다.
세계적인 반핵 사상가이자 활동가인 다카기 진자부로는 생전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 종말에의 어두운 예감이 있어 먼 장래나 다음 세대의 삶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풍조가 일반화되어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 무서운 것은 우리들의 체념이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거짓과 부조리, 비밀주의에 둘러싸인 원자력 시스템에 대한 집요한 비판과 감시, 민주적 통제이다.
그런데 원자력에 대한 감시와 민주적 통제를 실현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이고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원자력안전위원장을 반핵 혹은 탈핵 인사 중에서 임명하도록 법제화하는 것이다. 원자력 업계와의 유착 혐의를 받는 인사가 원자력안전위원장이 되는 몰상식한 풍조가 반복되면, 파국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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