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2-10-30일자 기사 '[경향논단]비겁한 정치'를 퍼왔습니다.
올해 4월 발표된 ‘유엔세계행복보고서’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덴마크가 뽑혔다. 덴마크는 에너지, 교육, 복지 등 여러 측면에서 관심을 가질 부분이 많은 국가이다. 특히 덴마크는 원자력발전을 아예 시작하지도 않았고, 1970년대부터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발전시켜 온 나라이다. 지금도 풍력으로 전기의 20%를 생산하고 있고, 2020년까지는 풍력으로만 전기의 50%를 생산하려 노력하고 있다. 원전이 없으면 당장 나라가 망하고 전기도 못 쓸 것처럼 얘기하는 정치인들이 많은 우리나라가 꼭 참고해야 할 국가이다.
덴마크의 행복 비결은 물질과 소비에 있지 않다. ‘유엔세계행복보고서’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건강한 사회공동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소득이 높다고 해서, 그리고 소비를 많이 한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게 유엔세계행복보고서의 결론이다. 실제로 덴마크 국민들은 유럽연합(EU) 평균보다 전기를 15% 적게 쓰지만, 각종 조사결과에서 삶의 질이 높고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행복이 물질적 풍요나 소비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사회공동체가 건강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정치다. 정치가 잘돼야 사회적 불평등이 심각해지지 않고, 정부가 시민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지속가능한 미래도 보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행복하다는 덴마크의 정치는 한국 정치와 무엇이 다를까?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투표율이다. 덴마크는 1980년 이후에 치른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이 모두 80%를 넘었다. 2011년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81.83%에 달했다. 지난 4·11 총선 투표율이 54.3%에 불과했던 우리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이렇게 높은 투표율은 사회공동체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보여준다. 덴마크는 이런 높은 관심과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고, 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여 온 것이다. 이런 높은 투표율은 좋은 정치제도 덕분이기도 하다.
덴마크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사전투표제’를 도입해 선거일 기준 3주 전부터 유권자들이 미리 투표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비례대표성이 강한 선거제도를 통해 다양한 정당이 경쟁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래서 덴마크는 8개 정당이 원내에 존재하고, 어느 한 정당이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하기 어려운 의석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거대 기득권 정당 중심으로 정치가 좌우되면서 정책경쟁이 실종된 우리 정치의 모습과는 다른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선거 때면 늘 투표율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가 돈다. 덴마크 수준으로 투표율을 높이려면 ‘비겁한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 투표율을 높이려면 유권자들이 최대한 투표를 하기 쉽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사전투표제를 도입하지는 못할망정, 투표시간을 단 2시간 연장하는 문제도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후보는 소극적이다. 표를 먹고 산다는 정치인이 유권자들의 높은 투표참여를 바라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만약 낮은 투표율에 기대어 권력을 잡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비겁한 발상이다.
다른 정당들이라고 해서 비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기득권 정당들은 신생정당이 살아남을 수 없도록 선거제도를 만들어 왔다. 전두환 정권 때 국회의원 선거에서 2%를 넘지 못한 정당은 등록을 취소하고 그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는데, 민주화가 됐어도 이 조항은 삭제되지 않았다. 동일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부분만 1989년에 삭제됐다가, 그마저도 국회가 2002년에 슬그머니 부활시켰다. 그래서 지난 총선이 끝나고 녹색당, 진보신당 등은 등록취소가 되고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새로운 정당이 자리를 잡으려면 여러 번의 선거를 거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한 번 선거에서 득표율 2%를 넘지 못했다고 정당 이름을 사용치 못하게 하는 법조항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런 조항을 만들어 잠재적 경쟁자의 싹을 자르겠다는 것이 ‘비겁한’ 기득권 정당들의 모습이었다. 이제 이런 식의 비겁한 정치를 청산하고 정치제도부터 근본적으로 바꾸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한 정치혁신을 가능케 할 것이다.
하승수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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