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2-11-07일자 기사 '한겨레의 ‘대선 만인보’ 기획이 돋보이는 이유'를 퍼왔습니다.
[대선보도, 비평으로 뚫다]
대선 후보등록일이 가까워 오면서 여야간 공방은 점점 격렬해지고 있다.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 한국 등 주요 언론의 보도 열기는 점점 온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대선 주자들의 말과 행동은 첨예한 정치 쟁점이 되어 매일 아침 집 앞에 전달된다. 아마 이런 추세는 대선 직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문재인과 무소속 안철수의 단일화 진도가 급진전을 보임에 따라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안개 속이다. ‘묘수’를 찾기 위해 각 캠프는 고군분투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주류 정치 질서의 현실을 보았을 때 결국 이런 양상은 치열한 네거티브 공방과 더불어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나 북풍에 기댄 흑색선전으로 뒤범벅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렇게 될 때 결국 ‘유권자’인 국민은 대선 정국의 들러리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선거의 주체란 누구인가? 유력 정치인 후보인가? 새누리당 김무성처럼 아무 죄의식 없이 마타도어를 방사하는 공격수들인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제도로 선출된 대통령을 평가하고 비판하며 다시금 선출에서 주체가 되는 이들은 분명 ‘유권자’라는 한시적 이름으로 호명되는 국민이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유권자’는 ‘주권자’로서의 위치를 상실 당하고 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냉소주의에 빠져 투표를 하지 않는 자들의 잘못’이라며 ‘또 다른 냉소’를 보낼지 모른다. 그러나 독재 정권 내내, 그리고 심지어 민주 정권 10년이라는 시기에 조차 ‘민중의 의지’와 정치적 열망이 거의 반영되지 못했던 한국 정치사의 암울한 역사를 떠올려 봤을 때, 대통령에게 별 다른 기대를 보내지 않는 대다수 노동자계급의 냉소는 사뭇 이해가 된다.

▲ 지난 9월부터 <한겨레>가 내놓고 있는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의 기사들은 소수점 아래의 ‘유권자’로서의 민의가 아니라 사회 주권자로서의 민중의 삶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그렇다면 언론은 언제고 국민을 대통령 선거의 ‘주체’로 인정한 바 있던가? 국민은 오직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의 소수점 아래 어딘가에 희미하게 존재할 뿐이다. 최근 ‘잘 나가고 있는’ 한 여론조사기관은 자신들이 국내에서 최초로 일일 여론조사를 거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늘날 여론조사는 ‘슈퍼스타K’의 모바일 인기투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르주아 정치판의 모든 정치 일정이 이 여론조사의 늪에 갇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주류 미디어와 권력의 질서가 정해놓은 질문지 속에 갇힌 ‘여론’은 민중들의 구체적 진실을 결코 담아낼 수 없다. 이미 정해놓은 어떤 시나리오 속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지난 9월부터 (한겨레)가 내놓고 있는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의 기사들은 소수점 아래의 ‘유권자’로서의 민의가 아니라 사회 주권자로서의 민중의 삶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이 돌아가며 전국 곳곳의 ‘몫 없는 자들’의 땅에서 심층 취재와 정책 전문가 도움을 통해 밀도 깊고 삶에 밀착한 이야기들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뽑아내고 있다. 그 첫 번째 보도인 (연평도: 평화가 밥 먹여준다)(9월 14일자, 정환봉·허승 기자)에서 우리는 어떤 전문가의 논평으로서가 아니라, 연평도 주민들의 생생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이명박 정권의 대북 강경책에 따른 연평도 주민들의 삶의 파탄과 ‘평화’를 열망하는 그들의 절박함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대북 정책이 밑바닥에서 살고 있는 민중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정권을 향수하고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이 엇갈림이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정서라는 것을 알게 한다.
2주 후에 실린 두 번째 기사인 (구로디지털단지: 꿈 잃은 여성노동자들)(9월 27일자, 이경미·최유빈 기자)도 대선에서 어떤 희망도 찾지 못하는 구로공단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그녀들의 관심과 노동 환경 조사, 그리고 며칠간 공장에서의 직접적인 노동 체험을 통해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 이 지역 여성노동자의 절반이 보수정당에 염증 보이면서도 “지지정당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오늘날 정치가 직면한 위기가 수구세력의 ‘음모’가 아니라 정치 자체의 절멸 속에 위치해 있음을 드러낸다. 기사 말미에 그들에게 ‘투표’란 일당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란 대목에서는 최근 논란이 된 투표시간 연장을 둘러싼 쟁점이 어딘가 잘못 되어 있다는 걸 알게 한다. 현실이 이렇다면 ‘투표시간 2시간 연장’이라는 대책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지금의 문제를 조금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 자살하는 시골 노인들의 문제를 다룬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11월 2일자.
이 심층 보도 시리즈는 (‘취업 바늘구멍’ 앞에 선 강원대 학생들)(10월 10일자), (도산 위기 몰린 횡성 한우농가들)(10월 22일자), (경북 군위·의성군, 자살하는 시골 노인들)(11월 2일자)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들여다본 우리 사회의 쟁점과 문제들을 미시적이면서도 거시적인 시선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나 여기에 기자들의 치열한 비판적 문제의식이 기입되어 있다는 걸 느끼게 한다. 좀 더 치열한 시선을 기대하면서도 우리가 주류 언론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대선 보도의 진일보한 기획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어디를 보아도 답답하고 암담한 시기다. 고가도로와 송전탑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이 계속되고 있고, 대한문 앞에서는 쌍용차 해고노동자가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전 사회적인 ‘응답’이 절실하다. 이런 시점에 기자실에 쏟아지는 이전투구들을 실어나르는 관습적 취재가 아니라 피폐해진 전국 곳곳 민중들의 삶을 응시한다는 건 자못 용기있고 도전적인 시도이다. 이 땅 언론들이 바로 그곳들을 응시할 때 정치의 위기나 주권자로서의 주체성을 기각하고 있는 국민들의 태도에도 작은 변화가 일지 않을까? 1%의 정치 퍼포먼스를 보다 센세이셔널하고 경쟁적으로 전시하고 99%의 삶에는 공포를 기입하는 것에 급급한 지금의 언론은 아주 종종 정치인들보다도 더한 해악이 되고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홍명교 /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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