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7일 수요일

한국문화재단은 ‘제2의 정수장학회’?


이글은 시사IN 2012-11-06일자 기사 '한국문화재단은 ‘제2의 정수장학회’?'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32년째 이사장을 맡은 한국문화재단이 해산했다. 그동안 속 보이는’ 장학사업으로 입길에 오르내렸던 이 재단을 해산한 이유는 제2의 정수장학회’ 불씨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어느 번호로 전화하셨나요?” “34××-××××번요.” 그랬더니 곧바로 “어느 사무실을 찾으세요”라고 되묻는다.

한국문화재단 취재차 전화했다가 경험한 일이다.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와 한국문화재단이 한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는 게 발단이었다. 두 단체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서울 강남구 신사동 ㅅ빌딩 5층을 함께 썼다. 한국문화재단 해산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다고 메모를 남겼더니, 이번엔 박근혜 캠프의 공보위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사IN 이명익 한국문화재단이 있던 빌딩의 알림판. 5층 사무실 이름이 비어 있다.

박근혜 후보가 1980년부터 32년째 이사장을 맡고 있어, 야당으로부터 ‘제2의 정수장학회’로 지목된 한국문화재단이 해산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재단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6월25일 이사회 결의로 해산했고, 지난 9월10일 해산 등기를 마쳤다. 청산인은 한국문화재단 이사였던 최외출 영남대 교수가 맡았다. 최 교수는 현재 박근혜 캠프의 기획조정특보이다. 


자산 13억원은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로

한국문화재단은 1979년 3월 삼양식품 창업자 전중윤 명예회장이 인재 양성과 학술·문화 진흥, 국제 학술·문화 교류 등을 목적으로 자본금 6억원으로 만든 ‘명덕문화재단’의 후신이다. 명덕문화재단 설립 이듬해 1980년 7월 전중윤 회장 등 삼양식품 관계자 전원이 물러나고 대신 박근혜 후보가 이사장에 올랐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삼양식품 전 회장이  미국에서 들여온 10만 달러 차관 가운데 절반을 불하받아 라면사업으로 성공한 특혜 보답 차원에서 재단법인을 만들어 박 후보에게 넘긴, 정경유착성 뇌물”이라고 공격했다. 

한국문화재단은 재단법인 형태로 정수장학회처럼 장학사업을 주로 한다. 하지만 그동안 ‘속 보이는’ 장학사업으로 입길에 오르내렸다. 민주통합당 김경협 의원실이 확보한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문화재단의 장학금 수혜자 가운데 대구 지역 학생이 61%나 되었다. 또 박 후보 선거구인 (대구) 달성군 학생이 전체의 28%에 이르렀다. 지역 편중은 박 후보가 정계에 입문한 1998년을 기점으로 두드러졌다. 1997년 장학생 수혜자는 서울(75명), 경기(6명), 인천(1명), 경북(1명) 등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되었다. 이때만 해도 대구 지역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박 후보가 달성군 보궐선거에 출마한 1998년부터 대구 지역, 특히 지역구인 달성군으로 장학생 쏠림현상이 나타났다. 1998년 대구가 0명에서 45명으로 늘었다. 45명 가운데 20명이 달성군 학생이었다.  

ⓒ뉴시스 민주통합당 최민희, 김경협, 전병헌 의원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정수장학회, 한국문화재단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문화재단은 청산 당시 자산 총액이 13억여 원. 국세청에서 확인한 공익법인 결산 자료에 따르면, 2011년 12월 현재 총자산이 13억3000만원으로, 청산 과정에서 자산 13억여 원은 한 사무실을 쓰는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에 넘겼다. 

청산인 최외출 교수는 “감독기관의 허락을 받아 (통합)업무 처리 중에 있다”라고 밝혔다. 박근혜 캠프 쪽 또 다른 관계자는 “명덕문화재단은 육영수 여사 모교인 배화여고 학생들을 후원하다가 박 후보가 이사장을 맡았다. 한국문화재단이나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 모두 장학사업이 목표인 만큼 한 곳으로 통합한 것이지 청산을 한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제2의 정수장학회’ 불씨를 미리 끄기 위해 서둘러 해산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고제규 기자  |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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