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노컷뉴스 2012-10-10일자 기사 '[르포] 불안,공포…사지(死地)로 몰리는 사람들'을 퍼왔습니다
[구미 불산가스 누출 현장을 가다 ③] 사지(死地)에서의 하루하루
지난달 27일 순도 99.8%의 불산 가스가 바람을 타고 공장 옆 마을로 흘러들었다. 20톤에 달하는 양이었다. 사고 이후 5명이 사망하고 공장도 잠정 폐쇄됐지만 재앙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연기를 마신 소방관, 경찰과 마을 주민들은 사건 발생 열흘이 넘도록 원인 모를 발진과 두통,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당국의 대처는 안이하다. 하루만에 주민 대피령을 해제해놓고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CBS는 불산 가스 누출 사고 이후 공장과 그 주변 마을에 드리워진 "재앙의 그림자'와 사지(死地)에 방치된 주민들, 공장 근로자들의 실태를 심층 취재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재앙이 시작됐다
2. 감춰진 진실
3. 사지(死地)에서의 하루하루
4. 예견된 인재...대안은?

휴대전화 알람 소리에 눈을 떴지만 몸은 아직 잠에 취한 그대로였다. 구미4단지에서 6년째 근무하고 있는 정모(36)씨는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간신히 추스리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출근 버스에 올랐다. 머리가 띵 하고 정신이 몽롱한 건 이른 아침 출근길의 피로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달 27일 휴브 글로벌에서 불산 가스가 누출된 그 시각, 정 씨는 두 블럭 떨어진 공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고 이후 공장은 잠정 폐쇄됐고 공단 사람들도 하나 둘 복귀했지만 김 씨는 예전에 없던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걱정되죠. 대피하란 소리를 늦게 들어서 불산 가스에 노출된 시간이 길었거든요. 불산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게 없으니까...고엽제처럼 나중에 노출된 사람들한테 어떻게 피해가 올지 모르니까 그게 제일 불안해요."

◈불산 내려앉은 공장으로 향하는 불안한 눈빛들 "아파도 출근해야죠"
지난 9일 사고가 난 휴브 글로벌 주위의 공장엔 불산의 '공포가 아직 짙게 남아 있다.
사고 공장에서 20여m 떨어진 공장에서 작업반장 김모(56)씨가 생석회로 바닥을 문지르며 불산 중화 작업에 한창이었다. 밀대로 바닥을 밀던 김 씨는 사고의 기억까지 지워내려는 듯 힘을 주어 걸레를 문질렀다.
"그 때도 지금처럼 문을 열고 작업해서 가스를 많이 마셨어. 지금도 머리가 아파요. 다시 공장을 돌리려면 물청소를 해서라도 복구해야지."
구미4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사고 다음날에도 공단에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불산이 내려앉은 창문을 맨손으로 닦기도 했다.
또다시 가스 누출 사고가 날까봐 그만둬야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납품 기일을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출근해야 한다.
오후 5시가 넘어 대피했다는 김 씨는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이유 불문하고 출근하고, 아파도 일을 끝마친 뒤에 아파야 한다"며 종종걸음으로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불산 연기 속 출동했던 소방관들 "비난소리 가슴 아프지만 감수해야"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들에게도 '그날'의 기억은 불산 연기처럼 뿌옇게 가슴 한켠에 남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불산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화학보호복이 있었지만 독성 연기를 마신 사람을 한시라도 빨리 구조하기 위해서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1차로 현장에 도착한 10여명의 구조대는 공기호흡기만 착용하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구조대는 공장 안과 맞은편 ENG 공장 화장실에서 최모(30)씨 등 4명을, 그리고 공장 뒤편 민가로 향하는 수로에서 쓰러진 채 신음하는 이모(49)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했다.
독한 불산 연기를 견디며 인명구조를 했지만 사고 이후 돌아온 건 '물을 뿌려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여론의 비난이었다.
"연기가 공장 안이 가득 차 있는 상태라 공기 중에 있는 불산 연기를 중화하는 건 당시로선 의미가 없었어요. 일단 사람을 구조하는 게 중요하니까 시야 확보를 위해 물을 뿌리며 구조를 했죠."
사고 현장에 다녀온 이후 대원들 중 일부는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눈이 따가워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 할 수도 없는 처지다.
"주민들의 입장은 십분 이해하지만 저희는 공무원이니까 섭섭해도 어쩔 수 없죠. 주민들보다 현장의 대원들이 1차적으로 더 피해를 입었지만 저희를 희생해서라도 구조를 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해요."
당시 불산 누출사고 현장에 투입된 대원은 180명. 하지만 화학보호복 등 장비를 갖춘 대원은 12명에 불과했다.
"우리에게도 그 곳은 사지(死地)였어요. 죽은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산 사람을 구출해야 하는 초를 다투는 상황이었기에 장비를 완벽히 갖출 수도 없었습니다. 보호복 없이 목숨을 걸고 들어가 구조했고 1명을 제외한 4명은 구조 당시에도 의식이 있는 상태였어요."
"목숨 걸고 일한 대가로 비난을 들었을 때 너무 속상했다"며 어두운 낯빛으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한 소방대원은 응급 구조 요청이 들어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구조 현장으로 황급히 자리를 떴다.
CBS 조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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