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일 월요일

박정희 '일왕 스타일' 사진 "뼛속까지 친일"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9-28일자 기사 '박정희 '일왕 스타일' 사진 "뼛속까지 친일"'을 퍼왔습니다.
(박근혜 바로보기) '사무라이 박정희 섹스파티' 중에서

▲ 출처=트위터
28일 트위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 육영수씨의 사진이 화제다.
이 사진은 박정희 대통령기념관에 있는 것으로 흰 나비넥타이에 어깨띠, 목걸이훈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복장이 사진에 있는 일왕의 모습가 비슷해 역대 일왕의 사진이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다.
이를 본 트위터들은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 "일본육사 출신인걸 자랑스럽게 광고하나봐요", "‏헉 진짜 일왕스타일..ㅋㅋㅋ박정희기념관 빨리 없애야 하는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이 얼마나 일본을 동경했는지는 (박근혜 바로보기)에 잘 서술돼 있다. 
다음은 (박근혜 바로보기)의 일부. ('사무라이 박정희'의 섹스파티 50쪽)
박정희의 ‘심복’으로서 한때 비서실장 이후락이나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에 버금가는 권력을 휘두르던 강창선(전 보안사령관)의 증언을 보기로 하자. 그는 중앙일보 1991년 12월 14일자에 이렇게 썼다.
“(···)계엄 선포 한 달쯤 전인가(1971년 10월 17일 계엄이 선포되었다), 박 대통령이 나를 불러요.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박 대통령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죽장화에 점퍼 차림인데 말채찍을 들고 있었어요. 박 대통령은 가끔 이런 복장을 즐기곤 했지요. 만주군 장교 시절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다카키 마사오 중위(박정희의 일본 이름)로 정일권 대위 등과 함께 일본군으로서 말 달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박 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그분은 항상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김삼웅, [친일정치 100년사], 293~294쪽에서 재인용)
박정희는 5·16 쿠데타 이후 가장 먼저 일본에 친선사절단을 보냈으며, 그가처음으로 공식 방문을 한 나라도 일본이었다. 일본을 방문한 박정희는 도쿄의 한 고급요정에서 그 나라 정·재계의 ‘거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지사들의, 나라를 위한 정열만큼은 잘 알고 있다. 그들 지사와 같은 기분으로 해볼 생각이다.”
일본 자민당 부총재 오노는 1963년 12월 17일에 열릴 박정희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전에 도쿄에서 기자회견 열고 “박정희 대통령과는 부자 사이 같은 관계로서 아들의 경축일을 보러 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즐겁다”고 공언함으로써 한국민들을 격분시켰다. 박정희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벌어지자 주한일본대사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한 외교관은 (국가와 정보)라는 책에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고 기록했다.
박정희는 청와대에 머물던 시기에 마당에서 닛뽄도(일본도)를 휘두르면서 ‘검술 실력’을 자랑하는가 하면 일본의 전통대중가요인 ‘엔카’ 또는 제국주의 군가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민족적 민주주의’와 ‘조국 근대화’를 외치던 국가원수가 실제로는 일본 봉건시대의 사무라이나 침략군의 장교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박정희는 현역 군인 시절은 물론이고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은 뒤에도 청렴하고 결백하고 서민적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으려고 애를 썼다. 제대로 된 자기 집이 없다거나 쌓아둔 재산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는 얼마쯤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그가 대통령으로서 모내기 현장에서 농민들과 함께 막걸리를 사발 채 들이키는 모습은 ‘빈농의 아들’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윤경진 기자  |  ykj23@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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