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IN 2012-10-24일자 기사 '“박정희 등에 업은 자들이 민속촌 강탈했다”'를 퍼왔습니다.
한국민속촌은 애초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책사업으로 시작됐다. 최초 설립자인 김정웅씨(71·전 한국고미술협회 회장, 기흥관광 대표)를 만나 ‘막전막후’를 들어봤다. 김씨는 “뺏겼다”라는 말을 여러 번 읊조렸다.
한국민속촌 설립을 어떻게 맡게 됐나?
한국고미술협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청와대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민속촌을 만들려고 하는데 조언을 구하려는 내용이었다. 이미 올라와 있는 계획안을 검토했더니 기생집 같은 걸로 구성돼 있더라. ‘그게 어떻게 관광 상품이나 시청각 자료가 되겠느냐’라고 내가 뭐라고 했다. 그랬더니 청와대에서 계획을 아예 짜달라고 했다. 각하(박정희 전 대통령)가 전부 사라져가기 전에 지금이라도 보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각하가 이 일에 굉장히 열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실제로 열정적으로 말씀하셨다. 믿고 맡겨주셨는데, 내가 가진 돈이 당시 돈으로 3억원 정도밖에 없었다. 최소 6억∼7억원이 필요했다. 청와대가 지원해준다고 했는데, 그게 나중에 보니 융자였다. 어쨌든 짓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100㎞ 이내로 잡으라고 하셨는데, 그때 눈에 들어온 게 기흥 보라리였다. 그러면서 기흥관광도 만들었다. 빚을 많이 졌지만, 각하가 원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었고, 나 또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 소유주가 바뀌게 됐나?
국민속촌 운영이 잘 되고, 박 대통령이 마음에 들어 하니까 박정희 대통령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장난을 쳤다. 정영삼(박근혜 후보의 이종사촌 형부)이 나를 도굴품 수출꾼으로 몰아 집어넣었다(김씨는 1975년 7월5일 문화재보호법 위반죄로 구속됐다가 1979년 11월14일 무죄판결을 받는다). 민속촌을 포기하라는 압력이…, 정말 말로 다 못할 정도였다. 수사 과정에서 수사과장이 나에게 ‘그냥 포기하라’는 소리를 할 정도였다. 나는 죽어도 포기 못하겠다고 버텼는데, 결국 상황이 수습할 수 없게 됐다. 나는 범죄자에 빚쟁이가 되고, 기흥관광도, 민속촌도 개판이 됐다. 나중에 보니, (정영삼이) 아시아민속촌 부지로 확보해놓은 20만 평에 골프장(현 남부컨트리클럽)을 만들었더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몰랐나?
전혀 모르고 계셨을 걸로 생각한다. 중간에서 정영삼이 장난을 친 거지. 나중에 민속촌에 오셔서 나를 찾았다는데, 내가 구속돼 있을 때였다.
민속촌을 돌려받기 위한 노력은 안 했나?
소송을 두 번이나 했다. 근데 나는 힘이 없다. 결국 ‘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박정희 대통령 친인척이기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이유가 없었다. 돌려받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당연한 것 아닌가.
박근혜 후보에게 요청할 생각은 없나.
정치권에 기대하는 바 없다. 그리고 당시 박근혜 후보는 이 사안에 개입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지금은, 모르겠다. 당시에도 밑에 있는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등에 업고 그런 짓을 한 거다. 내가 ‘도둑 XX들’이라고 소리도 치고 그랬다. (권력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문제다.
장일호 기자 |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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