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한겨레신문 사이언스온 2012-10-04일자 기사 '“비정규 연구자 문제 심각” “연구인력 수급 국가대책을”'을 퍼왔습니다.
현장의 목소리 타운미팅 참가자 인터뷰
10년 넘게 생명과학 분야에서 연구한 박사 연구자, 사기업과 출연연, 학계에서 두루 연구한 맹성렬 교수, 과학기술 정책에 관심이 많은 변호사, 비정규직 심각성 제기하는 공공연구노조 이광오 사무처장을 과기정책 제안 토론마당 현장에서 만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한국 생물학계에서 ‘브릭(BRIC: 생물학연구정보센터)’이 얼마나 큰 기여를 하고 있는지 몰라요. 생물학 연구 현장의 다양한 문제들이 공유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바이오 분야를 비롯해) 기초연구를 하는 사람들의 열악한 처우를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오네요.”
박사학위를 받고 10년 넘게 생물학 분야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김아무개 박사를 이곳 과기정책 토론장에 오게 만든 건 이런 희망과 불안 때문이었다. ‘2012 대선, 과학기술인 말하다: 현장의 목소리로 채우는 과기정책 제안 타운미팅’의 제2차 토론마당에는 한겨레 과학웹진 과 현장과학기술인모임(가칭), 그리고 사회적 기업 디모스와 더불어 10년 넘게 생물학 연구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 왔던 생물학연구정보센터가 공동주최자로 참여했다. 공동주최와 후원기관(카이스트·포스텍 대학원 총학생회, 시민과학센터, 전문연구정보센터협의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1차 때보다는 좀 더 다양한 분야, 지역, 연령, 성별에서 과학기술 정책에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다.

» 지난 9월22일에 열린 ‘2012 대선, 과학기술인 말하다: 현장의 목소리로 채우는 과기정책 제안’ 제2차 타운미팅. 사진/ 정우진 (이하 동일)
“박사인력 늘고, 진로는 제한...국가 차원 대책이 필요”
지난 1차 타운미팅 때와는 달리, 이번 2차 토론마당에서는 처음부터 토론 의제로 나뉜 분과별로 '정책 제안 집중토론'이 곧바로 시작됐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고자 타운미팅에 참가했는지 토론 행사가 진행되는 중간에 틈틈이 몇몇 참가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오랫동안 생물학 분야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계신 김아무개 박사와 얘기를 나눴다. 그는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기초 분야에 있는 연구인력에는 중간지대가 없다. 교수 아니면 갈데가 거의 없다. 이런 연구인력의 제한된 진로 문제는 국가가 아니면 누가 관심을 가지나?”라며 “독일 막스플랭크연구소, 일본 리켄(이화학연구소), 미국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 같은 기초연구소가 한국에도 생겼으면 좋겠다. 여전히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는 이른바 ‘비즈니스 마인드’를 바탕으로 인풋-아웃풋의 논리로 접근하는 게 일반적인데, 사실 연구라는 게 그런 논리로만 바라볼 수 있는 게 아니잖은가”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말에는 현재 그런 기초연구를 목적으로 세워진 출연연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 녹아 있었다.
이어 그는 “연구원이나 교수 임용 과정의 철저한 비공개도 역시 부당하다”며 연구과제 선정 과정과 함께 투명한 행정 시스템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과학자인 그는 “여전히 우리사회는 너무나 남성 중심의 사회라,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박사)학위 과정 때보다 (박사)학위 이후의 어려움은 더한데, 가장 큰 것은 당당하게 똑같은 동료로서 인정받기가 쉽잖다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성의 기회가 더 줄었다”라는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 여성 비율이 현실을 반영해 과학기술 분야에서 지금보다 더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 전문성을 갖춘 독립적인 컨트롤 타워를”
이어 만난 참가자는 전북 완주에 있는 우석대의 맹성렬 교수(전기전자공학부)였다. 현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과학기술위원회 정책위원으로 활동해서 그런지 과학 정책에 대한 그의 소견은 잘 정리돼 있었다. 먼저 요즘에 과학기술계에서 한창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과학기술 분야 정부 부처의 구조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우선 정부 부처가 개편되야 한다. 현재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게 지식경제부(지경부)다. 지경부의 전신이 산업자원부인데 여기에서 주로 하는 일이 대기업 지원이다. 현재 가장 많은 연구개발(R&D)비를 쓰고 있는 지경부의 상공부 부분을 현재 중소기업청과 합쳐 하나의 부처로 만들고, 역시 지경부의 에너지자원 부분을 환경부와 합쳐야 한다. 과거 정보통신부의 기능 그리고 교육과학기술부의 나노기술(NT), 생명공학기술(BT) 기능을 합쳐 ‘첨단산업원천기술분야’를 지원하는 부처가 따로 있어야 할 것이다.”“현재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가 과기 분야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니 과학기술부를 부활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주도하는 연구개발 예산에서 과학기술 부분은 따로 떼어 과기 분야 컨트롤타워에 넘겨야한다. 그리고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컨트롤타워’를 관리해야 한다.”
이어 그는 연구자로서 현재 연구과제를 지원하는 행정 절차가 실제 연구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방해가 된다면서 “발상을 바꿔 연구자가 더 창의적인 연구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연구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방해하는 연구환경은 ‘두뇌 유출’과도 관련이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두뇌 유출이 가속화해 현재 후진국 수준까지 내려갔” 다고 말했다. 특히, 여전히 연구과제의 선정에서 “연구 분야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전문 에이전시가 없기 때문에 여전히 연구비를 따기 위해서는 연구와 무관한 다른 관행들이 영향을 끼친” 다고 나름의 평가를 제시했다.

» 맹성렬 우석대 교수
다음으로 국가의 연구개발 지원에 나타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주아무개 변호사를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평소에도 과학기술 정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그는, 특히 환경과 에너지와 관련해 “환경 분야의 경우에는 아직 기술 개발이 더 필요하다. 따라서 더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현재 정부는 경제 개발이라는 맥락에서 환경 분야를 바라보는 것 같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원자력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우려된다. 값싼 비용의 측면 외에 원자력의 사후처리 문제나 사회구성원의 형평성 문제 등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각한 비정규직 연구자 상황, 제한고용 기간 없애야”
타운미팅에는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공공연구노조)의 간부도 한 분 참석했다. 이광오 공공연구노조 사무처장은 길게 나눈 대화에서 과기 정책의 지배구조(거버넌스), 비정규직 문제, 과기 연구의 공공성과 과학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공공연구노조의 입장 또는 개인 의견을 전해주었다.

» 이광오 공공연구노조 사무처장
먼저 과기 정책의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그는 과기 정책을 국가가 전적으로 ‘컨트롤’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지배구조의 일원화, 기획단계의 국가 역할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과학 정책을 수립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은 과학기술인이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고 말하면서 “행정체계 개편 같은 지배구조의 형식보다는 누가 무엇을 얼마나 관여할 것인지 같은 지배구조의 내용이 더 중요한 이슈”라고 강조했다. 국과위가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평가하면서, 그는 “교과부와 지경부가 국가 연구개발 예산(약 15조 원)의 3분의 2(약 10조 원)를 차지하고 있고, 따라서 국과위는 기존 부처이기주의 등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장 연구자에겐 ‘시어머니’가 하나 더 생긴 것일 뿐”이라며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었다.
김 사무처장의 얘기를 들어보면, 과학기술 분야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너무나도 심각하다. 최근에 열린 토론회 자리에서(최근 김정현 님의 사이언스온 기사, 9월18일치), 그 심각함이 비정규직 연구자 자신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김 사무처장은 “이 문제는 반드시 올해 안에 가시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비율은 약 27%인 데 비해 출연연의 비정규직 비율은 2배에 가까운 비율이며 그보다 더 심각한 곳도 많다”면서 원인 중 하나로 피비에스(PBS, 연구과제중심운영제) 체제를 들었다.
“최근 10년 간 국가의 연구개발 비용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고 따라서 많은 사업들이 신설됐다. 하지만 1996년부터 시작된 피비에스 제도에 의해 연구기관이 연구 활동 인건비를 줄여서 다른 운영비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실제 비싼 고급 인력인데도 값싼 비정규직으로 데려다가 일정 기간만 인력을 사용하고 있다. 연구과제 참여 인원에 1~2명만 정규직이고 나머지 10명 이상이 비정규직인 것이 태반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일으키는 사회 문제의 심각성은 너무도 분명하다. 동일한 노동을 수행하고도 동일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회 정의의 문제를 일으키고, 그래서 이것은 다시 사회 불안의 요소가 된다. 이와 함께 이공계 기피 현상 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김 사무처장은 “최근 과제책임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에서 ‘연구 역량이 축적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많았다. 연구라는 게 혼자하는 게 아니라 팀워크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정규직은 길게 봐야 2년이고, 연구사업 기간이 완료되는 동시에 떠나야만 하니 연구팀의 입장이나 개인의 입장에서 모두 다 연구 역량의 축적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면서 공공부문이 오히려 비정규직 문제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간제법 제4조를 보면, 기간제한 유예 대상이 있는데 연구 인력은 2년 이후에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당장에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과 조건으로 대우할 수 없다면 일단 제한된 기간의 고용은 없애야 한다(현실적으로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불가능하기 떄문에, 우선 기간제한 관습부터 철폐해야한다는 의미다). 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지 2년 단위의 해고가 관습화되어 있는 게 문제다”
이 사무처장은 개인 의견이라며 과학기술 연구에서 공공성의 가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가치의 측면에서 볼 때 ‘기초’, ‘순수’, ‘융합’, ‘대형’ 연구라고 하면 다 선(善)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사실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다. 국가의 연구개발 수행에서 기본적으로 공공성을 고려해야 한다. 만약 연구결과가 궁극적으로 특정 재벌이나 자본, 집단에게만 이익을 가져다 주고 결국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아무리 ‘기초’, ‘순수’ 연구라고 말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어떤 연구성과가 궁극적으로 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현재의 가치는 한 글자로 말하면 ‘돈’이고, 좀 어렵게 말하면 ‘상용화’이다. 이른바 성과중심의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과학기술 연구 흐름에서 이런 가치와 기준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해지길 바란다.”“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사회운동(교육운동, 의료운동, 환경운동 등)이 존재하는데 과학 분야에는 그런 ‘운동’이 없다. 과학기술이 공공재적 성격을 바탕으로 하여 다수 국민의 삶에 유익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누군가 싸워야 하는데 현재 과학 분야의 조직력은 너무나도 부족하다.”
“현장 과학기술인의 목소리에 더 큰 힘 실려야”
과기정책 제안 타운미팅은 과학기술 분야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으려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벽한 토론마당이라고는 볼 수 없다. 더 영향력 있고 신뢰할 만한 정책을 제안하기 위해서는 개선될 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2차 타운미팅에서 만난 몇몇 참가자들에게 그런 점들을 물어 보았다.
이광오 사무처장은 “현장의 의견이 여전히 대학 위주로 편중되어 있다. 민간과 공공연구소의 목소리가 부족하며 이런 편중이 왜곡된 시각으로 정리되는 게 우려스럽다. 또한 타운미팅의 목적 자체가 다소 제한적이다. 대선 주자에게 단순히 ‘전달’하고 그치기에는 이런 토론의 노력들이 너무 아깝다. 계속해서 현장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듣고 영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의견을 제시했다.
주아무개 변호사도 “여기에서 끝날 게 아니라 우리 현장의 목소리에 좀 더 힘을 실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이런 논의들이 이전에는 전혀 얘기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선 주자에게 전달하는 데 그치지 말고 정책 제안의 영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맹성렬 교수는 “기존의 과학기술단체들은 실제 현장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하고 대처하고 있지 않다. 이는 다른 분야의 활동력과 다르게 과학 분야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타운미팅 식의 연대가 필요하며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우진 아주대학교 석박사통합과정전문가 집단 내부 및 외부와의 소통을 글로써 원활히 매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은 학인.
이메일 : aneyespecia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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