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4일 목요일

나랏님 욕하면 잡혀간다, 인터넷 시대 막걸리 보안법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0-03일자 기사 '나랏님 욕하면 잡혀간다, 인터넷 시대 막걸리 보안법'을 퍼왔습니다.
[특집] "감히 대통령을" 끝나지 않는 괴담행렬과 질식된 표현의 자유

“감히 대통령을 욕하는 것으로 비춰진다고 생각된다면 이를 피하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2011.5.21 권혁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부위원장)

‘감히 대통령을 욕하는 것’이라는 말을 ‘감히’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무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다. 동네 슈퍼에서 만난 어르신의 꾸지람이 아니다. 꾸지람은 듣기 싫으면 무시하면 되지만, ‘감히’ 대통령을 욕한 건 ‘죄’가 되어 처벌을 받는다.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갔다. 

‘막걸리 보안법’의 재현…MB정부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2011년 5월, 회사원 송아무개씨는 ‘2MB18nomA’라는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 블로그도 만들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접속을 차단시켰다. ‘감히’ 대통령에 대한 욕을 ‘연상시키는’ 아이디를 만든 죄다. 한 심의위원은 ‘아버지에게도 그럴 수 있느냐’고 꾸짖었다. 해당 주소는 ‘불법·유해 정보’가 됐다. 법원은 방통심의위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대통령이나 정부를 비판하면 소리 소문없이 잡혀가던 시절이 있었다. 술 자리에서의 농담도 삼가야 했다. 소위 ‘막걸리 보안법’이 위세를 떨치던 때다. 국가가 흉흉한 민심을 억누르던 시절이다. 민주주의가 모습을 갖춰 나가면서 ‘막걸리 보안법’은 과거의 유물이 됐다. 착각이었다. 송씨는 “거꾸로 가도 너무나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방통심의위는 한 발 더 뒷걸음질 쳤다. SNS와 팟캐스트, 어플리케이션 등을 심의하는 전담 팀을 꾸린 것이다. 박만 위원장은 2011년 말 “신설되는 뉴미디어팀은 음란물이나 사행성 등 위법행위가 드러난 경우에 한정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정부나 정치인에 대한 비판적 의견은 무더기로 차단 또는 삭제됐다. ‘명예훼손’이라는 이유에서다. 


거꾸로 간 건 방통심의위 뿐만이 아니다. 경찰은 2010년 11월, 40대 대학강사 박아무개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길거리에 붙어있는 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은 “정상석인 사고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면서 다짜고짜 배후를 캐물었다. 박씨는 ‘쥐’가 G20의 ‘쥐(G)’라고 말했지만, 경찰은 ‘불온’하게도 대통령을 떠올렸다.

국방부도 한 몫 했다. 2008년, 국방부는 ‘불온서적’ 23권을 지정하고 군내 반입을 금지시켰다. 베스트셀러, 대학 수업 교재도 포함됐다. 목록은 42권으로 늘었다. 또 지난 8월, 군사법원은 트위터에서 대통령을 비판해 ‘상관 모욕죄’로 기소된 현역 대위에게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앞선 2009년, 국방부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정부가 억압한 건 ‘표현의 자유’였다. 정확히는 ‘비판적 의견을 표현할 자유’였다. 소위 ‘비판적 언론인’을 솎아낸 것과 같은 맥락이다. 비판이 거세된 언론이 언론이 아닌 것처럼, 표현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비판을 용인하지 않는 표현의 자유는 이미 ‘자유’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그렇게 ‘언론’과 ‘자유’를 억압하면서도 태연하게 ‘국격’을 입에 올렸다. 

‘민증 까!’…인터넷 실명제, 그 ‘삽질’의 역사

비판적 의견에는 ‘괴담’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인터넷은 그 진원지로 지목됐다. 느닷없이 ‘익명의 가면을 쓴 괴한’으로 몰린 사람이 여럿이다. 정부는 인터넷 아이디에 이름을 붙이려 했다. 인터넷 실명제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만들어진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이명박 정부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거의 모든 인터넷 게시판에서 시민들은 ‘민증을 까야’ 했다. 그러나 줄어든 건 ‘표현’ 그 자체였다. 애초 제도 도입의 취지였던 ‘악플러’나 ‘괴담’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대신 댓글이 전반적으로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표현 자체를 꺼렸다. 검열로 인한 ‘위축 효과’다. 2008년, 인터넷 토론방에서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됐던 ‘미네르바(필명)’는 그 ‘본보기’였다. 

인터넷 실명제는 애초부터 무모한 도전이었다. 2009년 4월, 구글은 자사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가 실명제 적용 대상으로 지정되자 한국 이용자들의 동영상 업로드와 댓글 기능을 차단했다. 청와대마저 ‘우회로’를 통해 동영상을 올리는 촌극이 빚어졌다. 정부는 ‘발끈’했지만 끝내 유튜브는 실명제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굴욕적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삽질’은 계속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언론사 홈페이지의 ‘소셜 댓글’에도 실명 확인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시민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해외 서비스로 실명제를 비켜가면서 이미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 나온 무리수였다. 정부는 ‘한국 인터넷’을 상정하고 여기에서 활동하는 ‘한국 국민들’을 통제하려고 달려들었다. 

뒤늦게 브레이크를 걸고 나선 건 헌법재판소였다. 헌재는 전기통신기본법(미네르바)과 정보통신망법(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대해 각각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미 ‘인터넷 통제국’의 오명을 뒤집어 쓴 뒤의 일이다. 뉴욕타임스는 “멍청한(lousy) 아이디어”라고 인터넷 실명제를 조롱했고, 유엔 특별보고관은 ‘전반적인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괴담’ 알레르기…시작은 ‘광우병 괴담?’

발단은 광우병 시위였다. 임기 초반이던 2008년 여름, 촛불이 들불처럼 달아 올랐다. 예상치 못한 ‘암초’였다. 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거리는 분노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을 바라보며 ‘아침이슬’을 불렀다던 대통령은,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파악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송구스럽다”면서도 “‘광우병 괴담’”이라고 했다.

곧 ‘괴담 과의 전쟁’이 선포됐다. 괴담의 진원지로 지목된 MBC (PD수첩) 제작진 6명은 검찰에 ‘긴급’ 체포됐다. 집회 참가자들은 줄줄이 연행됐고, 정부와 검찰은 ‘유언비어’를 엄정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에 발맞춰 눈치 빠른 언론들은 인터넷을 ‘괴담’이 횡행하는 무법지대로 묘사했다. 정부는 설명하거나 ‘오해’를 풀기보다, 입을 막는 쪽을 선택했다.

‘전쟁’은 이어졌다. 하루가 멀다하고 괴담이 쏟아졌다. 천안함 침몰도, 한미 FTA도, ‘방사능 비’도, 4대강 사업도, 정부 의견과 다르면 모두 괴담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정보공개 요청은 번번이 거부됐고, 비판 여론에 대한 수렴 과정은 무시됐다. 오직 ‘괴담’이라는 이름의 ‘탄압’이 있었을 뿐이었다. 수많은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채 감시와 검열의 눈초리에 시달렸다.

괴담은 ‘불통’의 다른 이름이다. 시민들은 설명을 듣기 원했고, 정부는 속도를 내기 원했다.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원했고, 이명박 정부는 ‘일사분란’을 원했다. 임기 말,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와 SNS가 괴담의 새로운 ‘진원지’로 지목되기 시작했다. 끝까지 ‘괴담’ 타령이다. 5년 가까이 정부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셈이다. 불행과 고통은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 

허완 기자 | nin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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