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3일 토요일

[사설]정규직 미끼로 비정규직 여성 농락한 공직 사회


이글은 경향신문 2012-10-12일자 사설 '[사설]정규직 미끼로 비정규직 여성 농락한 공직 사회'를 퍼왔습니다.

초·중학교 자녀 2명을 둔 전업주부 ㄱ씨는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지난해 3월 어렵게 공공기관의 일자리를 얻었다. 서울시내 한 구청의 계약직 주차 단속요원이 된 것이다. ㄱ씨는 구청이 공공기관인 만큼 처우가 좋을 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믿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금방 허물어졌다. 1년마다 재계약해야 하는 계약직이라 신분부터 불안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때마침 같은 부서 남자 직원이 다가와 수차례에 걸쳐 “인사권을 가진 사람을 통해 정규직으로 만들어주겠다”며 성관계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 남자 직원은 1년 연장 계약 등을 언급하며 금품도 강요했다. 구청에서 힘깨나 쓰는 다른 직원들도 ㄱ씨에게 접근해 정규직화를 구실로 돈과 성상납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ㄱ씨는 구청 직원들에게 농락만 당했다는 생각에 지난해 이 같은 내용의 진정서를 해당 구청 관계자들과 감사원, 서울시, 행정안전부, 국가인권위원회에 냈다. 그러나 진정 결과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구청 감사실에서는 아예 진정 자체를 무시했다. 서울시 감사실도 구 감사실보다 나은 것이 없었다. 조사를 나온 시 감사실에서는 “우리 같은 관공서에서는 증거 없이 진정서를 넣으면 한계가 있다. 경찰에 고소를 하라”고 말했다. 또 “나이도 있으신데 이런 사람들에게 당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해당 구청이나 서울시가 하찮은 여성 비정규직 한 명의 하소연쯤으로 여기면서 철저히 깔아뭉갰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서울시 감사관실 관계자는 “당사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만큼 조만간 사직 당국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말 분노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1년 가까이 진정이 거듭됐는데 도대체 뭐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사건이 유야무야될 때를 기다리며 진정서 처리를 미루고 있었던 것인가.

ㄱ씨는 “내가 쓰레기가 됐다는 느낌 말고 남은 게 없다”면서 “자살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다. 누구나 그런 심정에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검경이 나서서 진실을 규명하고 ㄱ씨의 인권을 농락한 자들을 엄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다. 해당 구청장뿐 아니라 박원순 시장도 ㄱ씨의 진정에 소홀히 대처한 데 대해 사과하고 사후대책을 세워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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