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7일 일요일

깃털처럼 가볍고 강철보다 센 슈퍼섬유


이글은 이코노미 인사이트(Economy Insight) 2012-10-01일자 제30호 기사 '깃털처럼 가볍고 강철보다 센 슈퍼섬유'를 퍼왔습니다.
깃털처럼 가볍고 강철보다 센 슈퍼섬유 국내 이슈 ● 코오롱-듀폰 소송 불러온 아라미드가 뭐길래…

강철보다 강한 슈퍼섬유는 군사·우주·항공 등 첨단산업의 주요 소재다. 한 업체가 슈퍼섬유를 이용해 새로 개발한 방탄복을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

군사·우주·항공 등 첨단산업 수요 확대… 미국 등 소수 대기업이 독점적 아성 구축

옷의 재료인 섬유가 슈퍼섬유로 발전하면서 이젠 첨단산업의 주요 소재로 쓰이고 있다. 우주선과 항공기를 비롯해 스포츠용품의 소재가 된 지 오래다. 다른 첨단산업과 마찬가지로 이 부문에서도 미국·일본·유럽이 선두주자다. 듀폰과 코오롱의 소송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관심을 끈 슈퍼섬유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김학준 (이코노미 인사이트) 부편집장

코오롱이 자체 개발한 슈퍼섬유(Super Fiber) 헤라크론을 두고 미국의 듀폰과 벌인 소송에서 패했다. 미국 지방법원이 선고한 20년 판매·금지에 대해 항소법원이 긴급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하루 만에 생산을 재개하는 등 한숨을 돌리긴 했다. 하지만 이것은 잠정적 결정이고 2심 판결에 어떤 영향을 줄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미국 안에서 재판이 벌어지고 있는데다 무역과 관련된 첨예한 사안이어서 듀폰이 쉽게 물러나지 않을 태세다. 역전이 힘들거나 재판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보인다. 듀폰은 케블라라는 슈퍼섬유를 최초로 개발해 첨단섬유 시장을 거의 석권하고 있다.
듀폰은 애초부터 특허보다는 코오롱이 자사에서 해고된 엔지니어를 고용한 것과 관련해 영업비밀 침해 혐의로 고소를 했다. 승산이 높은 건수를 걸고넘어진 것으로 보인다. 코오롱이 미국에서도 물질특허를 얻었기 때문에 특허 침해는 처음부터 논외였다. 코오롱이 미국에 불과 33억원어치를 팔았을 뿐인데 미국 법원의 배상액은 무려 1조445억원에 이른다. 아예 뿌리를 뽑아버리겠다는 심산이 엿보인다.
듀폰은 코오롱이 기술을 개발한 1980년대 중반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가 패했다. 이것도 10년 전쟁이었다. 그 와중에도 듀폰은 코오롱에 합작 제안을 하는 등 양동작전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에서 나타난 현상도 비슷해 보인다. 법률이나 협정보다는 국민 감정이 앞서 있다. 미국처럼 수출도 하지만 대규모 내수시장을 갖춘 나라의 특권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무리한 판결이라면 따르지 않으면 되지만, 그러려면 미국 시장 진출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달콤한 시장을 누가 외면할 수 있으랴.
듀폰이 이렇게 시비를 건 기업이 코오롱이 처음은 아니다. 듀폰과 아라미드 개발 경쟁을 벌인 네덜란드 기업 악조도 회오리에 시달렸다. 결국 악조는 일본으로 넘어가는 비운을 겪었다. 듀폰은 악조가 5년 늦게 개발한 트와론에 대해 특허침해 소송을 냈다. 1988년 두 회사는 11년간의 전쟁을 끝냈다. 악조의 미국 시장 진출을 점진적으로 늘려주기로 화해를 한 것이다. 악조는 미국 시장 진출을 긍정적으로 봤고, 애널리스트들도 같은 전망을 했다. 두 거인의 싸움이 끝나면서 시장도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다만 트와론은 미국밖에 시장이 없었다.
그런데 듀폰은 화해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1993년 미국 상무부와 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악조가 너무 낮은 가격으로 섬유를 미국 시장에 팔고 있다고 제소를 했다. 미 상무부는 이듬해 악조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반덤핑 관세 부과는 2000년에야 철회됐다. USITC는 오랜 기간의 검토 끝에 반덤핑 관세 부과를 철회해도 미국 내 산업이 피해를 입을 우려가 없다고 결정을 내렸다. 악조는 승리를 했으나 20년 이상을 물건은 못 팔고 미국 재판정만 쫓아다닌 꼴이 됐다. 우리 속담에 '송사가 잦으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꼭 그 모양이었다. 악조는 이런 풍파를 헤쳐나가지 못하고 결국 일본 데이진에 넘어갔다.

미국 정부와 듀폰의 후발주자 죽이기?

듀폰의 행동은 원천물질 개발에 대한 권리 주장으로 볼 수 있다. 처음 신물질을 개발하기란 정말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개발되고 나면 다른 길을 찾는 것은 길을 개척하면서 가는 것만큼 어렵지도 않고, 돈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 선점한 시장을 지키기 위한 선발주자의 수성 전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막대한 개발비를 들여 시장을 만들고 키워놓았더니 그동안 관망만 하던 이들이 먼저 이득을 챙기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 이민자가 세운 듀폰이 섬유 분야에서 첨단 기업인 것은 사실이다. 화학기업인 듀폰은 1930년대에 첫 합성섬유인 나일론을 개발했다. '공기와 석탄과 물에서 만들어내며, 강철보다 강하다'고 선전했다. 여자 스타킹 등에 쓰였는데 가볍고 질기고 탄력 있고 관리가 쉬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나일론은 불에 닿으면 바로 녹아내리는 게 흠이었다.
몇십 년이 지나서 듀폰은 나일론의 이런 단점을 보강한 아라미드 섬유를 개발한다. 방화복을 만들 정도로 열에 강한 정말 '꿈의 섬유'다. 나일론이 220℃에서 녹았는데 아라미드 섬유는 나일론의 2배 이상 되는 온도에서도 견뎠다. 웬만해서는 타지 않는다는 얘기다.
듀폰이 1960년대에 처음 개발한 아라미드 섬유는 메타계로 분류되는 노멕스였는데, 분해 온도는 400℃였으나 강도가 일반 섬유와 비슷해서 슈퍼섬유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노멕스는 진정한 슈퍼섬유인 파라계 아라미드 섬유 케블라의 탄생에 선구자 역할을 했다. 1971년 시장에 나온 케블라는 강도가 일반 섬유의 3배였고 분해 온도도 550℃에 이르렀다. 개발은 됐으나 공정이 워낙 어려워 본격적인 생산은 1980년대 후반에야 가능했다. 초창기에는 낚싯대에 많이 쓰였는데 값이 비싸서 선뜻 사기 망설여질 정도였다.
우리는 보통 '알루미늄보다 가볍고 강철보다 강하다'는 표현을 쓴다. 섬유가 알루미늄보다 가벼우니 강철보다 강하면 슈퍼섬유가 된다. 강철은 보통 단면적 1mm²에 285kg을 견디는데, 섬유에 225kg의 무게를 매달았을 때 끊어지지 않는 강도를 가지면 슈퍼섬유의 기준을 통과하는 것이다. 슈퍼섬유의 하나인 자일론은 580kg을 견디고, 탄소섬유 중에는 720kg에도 끄떡없는 것이 있다. 대부분의 슈퍼섬유는 강도·탄성·내열성이 모두 뛰어나 비슷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약간씩 물성의 차이를 보이면서 용도가 조금씩 달라진다.
슈퍼섬유는 우주·항공·군사 분야에 많이 쓰이는 첨단 제품으로 보통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을 받아 개발이 시작된다. 또한 개발 기간과 개발된 뒤 상용화 기간이 몇 년에서 몇십 년까지 걸리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나 기업이 하기 어렵다. 따라서 개발 과정에서부터 정부의 예산과 기술 지원이 따른다. 정부는 제품이 개발되면 이를 구매해주고, 외국 경쟁사들으로부터 기술 보호를 위해 법률적·정치적 지원을 계속한다. 슈퍼섬유는 일본·미국·유럽연합(EU) 등이 정부 차원에서 기술 지원 과제로 선정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새로운 첨단 제품이 계속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슈퍼섬유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생산량으로 볼 때 파라 아라미드 섬유, 탄소섬유, 고강력폴리에틸렌(HSPE·High Strength Polyethylene) 섬유를 대표적 슈퍼섬유로 보면 될 것이다.

한 섬유업체가 슈퍼섬유의 강도를 측정하기 위해 자동차를 들어 올리고 있다. 뉴시스

방탄복, 방화복에서 비행기 소재까지

듀폰이 처음 개발한 케블라가 파라계 아라미드 섬유다. 악조가 개발한 트와론, 일본의 데이진이 개발한 테크노라, 코오롱의 헤라크론이 대표적이다.
미국 듀폰은 케블라를 출시해 슈퍼섬유 시대를 열었다. 케블라는 1980년대 방탄조끼가 실용화되면서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케블라의 강하고 질긴 섬유를 여러 겹으로 만들어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강한 힘으로 들어오는 총탄의 속도와 회전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군인과 경호원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탄복의 경우 예전에는 두껍고 무거운 것이 흠이었다. 여름에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팔을 들고 내리기 힘들 정도로 활동에도 제약이 많았다. 방탄복에 케블라 같은 가볍고 강한 섬유가 쓰이면서 두께가 얇아지고 무게도 한결 가벼워졌다.
메타 아라미드 섬유는 내열성이 뛰어나 소방관 등의 방화복으로 사용된다. 섬유의 진화가 계속되면서 열과 심장박동 등을 체크할 수 있는 섬유 센서와 전극 등을 붙여 데이터를 옷에 저장하거나 외부의 컴퓨터로 전송해 소방관의 생명을 보호하는 방화복으로까지 발전했다. 미국 소방협회의 통계를 보면, 소방관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은 부상이 아니라 심장발작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대비책 마련에 나섰고 첨단 섬유가 계속 개발되면서 활동성은 유지되면서 생명 보호에도 탁월한 기능을 가진 진화된 제품이 나오고 있다.
아라미드 섬유는 방탄복·방화복뿐만 아니라 가볍고 강한 소재를 필요로 하는 항공기·휴대전화·타이어·건축자재·스포츠용품 등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아라미드 섬유는 듀폰이 먼저 개발했으나 테크노라라는 자체 상표를 가진 데이진이 트와론을 흡수하면서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세계 아라미드 시장은 데이진이 45%, 듀폰이 40%, 코오롱이 7%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시장은 듀폰이 76%를 장악하고 있다.
요즘은 '탄소' 또는 '탄소나노'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은 제품이 없을 정도로 탄소섬유가 보편화됐다. 탄소섬유는 비싼 만큼 개발 초기인 1970년대 초엔 돈 많은 사람들이 하는 골프채에 쓰이면서 인기를 끌었다. 가벼우면서도 강도·탄성이 좋아야 하는 보트, 테니스 라켓, 낚싯대 등 스포츠용품에도 많이 쓰였다. 다른 슈퍼섬유는 실의 형태로 많이 이용되나, 탄소섬유는 실 형태는 물론 봉이나 파이프 형태 등으로도 많이 이용된다.
탄소섬유는 금속에 비해 가볍고 강도·탄성률·내열성·전도성·내마모성 등이 뛰어나 우주·항공 분야의 첨단 소재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우주산업이 정체를 보이고 냉전체제가 끝나면서 구조조정기를 맞았다. 애초 탄소섬유 개발에 앞서 있던 일본의 도레이, 토호 테낙스, 미쓰비시 레이온 등 3사가 현재 살아남아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 세 곳이 전체 시장의 70% 정도를 점하고 있다.
탄소섬유도 원료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 팬(PAN)계 탄소섬유가 주종을 이룬다. 초기에는 항공기용 구조재, 인공위성 부품, 우주왕복선, 우주정거장 등 첨단산업에 주로 쓰였으나 생산비가 낮아지면서 자동차·선박·건축자재 등에 두루 응용되고 있다.
1980년대 항공기의 구조재로 개발되면서 탄소섬유의 붐이 일어났다. 초기에는 출입문 등에 사용됐으나 날개와 동체 등으로 사용 범위가 확대됐다. 보잉의 B787은 날개와 동체 등 1차 구조재의 약 50%에 탄소섬유강화수지(CFRP)를 사용했고, 에어버스의 최신 기종인 A380은 1차 구조재 등의 약 25%를 CFRP화했다. 최근 석유 가격의 고공행진으로 경량화에 의한 연비 향상이 항공회사의 수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항공기의 탄소섬유 사용량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등 환경적 요인이 커지면서 항공기 구조재로서 탄소섬유의 전망은 아주 밝다고 볼 수 있다.

비행기 동체의 25%를 탄소섬유로 제작한 에어버스의 A380 여객기. 고유가 등에 따라 가벼운 재질의 슈퍼섬유 사용량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뉴시스 신화

국내 기업 진출은 걸음마 단계

아라미드·탄소섬유에 이어 각광받는 것이 고강력PE 섬유다. 초고분자량폴리에틸렌(UHMWPE·Ultra High Molecular Weight PE) 섬유로 불리기도 한다. 이 섬유는 밀도가 cm³당 1g 이하로 매우 가볍고, 특히 물을 흡수하지 않고 물에 뜰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강철의 2배 이상인 고강도 특성을 지녔다. 다만 녹는 온도가 150℃ 정도로 낮은 것이 약점이다. 대형 선박을 예인해 이동하는 로프, 선박의 해안 계류용 로프, 요트의 돛 등에 최적이다. 방탄복, 헬멧, 선수용 운동복, 골프장 그물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국내 슈퍼섬유 부문에서는 코오롱이 세계에서 3번째로 아라미드계 헤라크론을 개발해 성가를 높였으나 세계시장의 점유율은 미미한 실정이다. 일반 섬유 부문과 마찬가지로 슈퍼섬유도 원사 관련 부분은 소수의 대기업 위주로 구성돼 있고, 중견 중소기업 규모의 원단 업계와 소규모 가공 업계로 수직화가 형성돼 있다.
국내에서는 아라미드 섬유 사업에 가장 많은 업체들이 뛰어들어 경쟁하고 있다. 선두주자인 코오롱이 연간 5천t의 헤라크론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효성이 뛰어들어 알켁스(파라 아라미드) 1천t을 생산하고 있다. 휴비스(500t), 웅진케미칼은 메타 아라미드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다. 고강력폴리에틸렌 섬유와 탄소섬유 분야는 몇몇 기업이 소량 생산을 하거나 새로 진출하는 등 이제야 첫발을 뗀 상태다. 탄소섬유는 일본이 1970년대에 대량 생산을 시작했으니 반세기가량 늦은 셈이다.
이렇게 슈퍼섬유에 대한 업계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으나 기술과 생산 기반이 취약해 수입의존도가 높은 실정이다. 슈퍼섬유로 만든 대표적인 수출품은 메타계 아라미드 섬유로 만든 타이어코드다. 우리나라가 세계 생산 1위다. 다만 완제품보다 원료 수출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산업용섬유기술센터장 변성원 박사는 "특성이 조금 다른 아라미드 섬유와 탄소섬유가 슈퍼섬유의 2대 축을 형성하면서 발전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은 아라미드 섬유를 제외하고는 아직 제대로 생산을 못하는 단계"라며 "계속 늘고 있는 첨단산업 분야의 국내 수요뿐 아니라 수출을 위해서도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투자를 늘릴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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