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8-05일자 기사 '아프니까 장애인이다? 사회가 손상을 장애로 만든다'를 퍼왔습니다.
[리뷰]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배제된 일할 수 없는 몸"
대다수 선진국의 ‘장애’ 규정에 준거가 되는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의 국제장애분류기준에 비추어 볼 때 장애에 대한 한국의 법적 정의는 한참 뒤떨어져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장애를 의학적이거나 생물학적 기능장애로 보지 않고, 장애의 사회적 모습을 고려한다(ICF takes into account the social aspects of disability and does not see disability only as a ‘medical’ or ‘biological’ dysfunction.). 세계보건기구는 1997년부터 여러 차례 장애에 대한 정의를 수정하면서 상황적(contextual)·환경적(environmental) 요인을 추가했다.
그러나 는 보건기구의 정의 또한 “주류적 정의”라고 평가하며 “‘의료 모델’에 기초해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한국의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을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로 본다. 보건기구의 정의에도 미치지 못할뿐더러 ‘상당한 제약’의 근거로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든다.
책을 쓴 김도현은 “‘손상→기능제약→사회적 불리’라는 3단계 도식에서 장애의 본질과 원인은 결국 개인이 몸에 지니는 손상에 있으며, 따라서 장애 문제 역시 이러한 손상을 잘 치료하거나, 치료하다가 안 되면 재활을 통해 소위 잔존 능력을 강화시켜 해결하고자 한다”며 장애에 대한 주류적 정의와 인식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밝힌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명칭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추적하면서 정치적 함의를 찾는다. 그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 한국에서는 불구자나 폐질자라는 용어가 쓰였다. 폐질은 고질(고칠 수 없는 병)을 뜻하며 고려 때부터 장애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문헌에 등장한다. “이러한 용어법은 장애를 질병과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시 의료적 관점에 굳게 기초해 있지만, 그 의미상 더 이상 치료나 재활을 도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근대의 장애 개념보다 나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인다.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되고 장애라는 표현이 공식화된다. 이 법은 1990년에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고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김도현은 이를 영어 disability를 번역한 일본어 ‘장해자’를 참고해 옮긴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치권을 비롯해 일부 장애인단체에서는 여전히 ‘장애우’라는 말을 쓴다. 이에 대해 김도현은 “장애인이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나타내는 1인칭의 표현일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그의 말대로 “나는 장애우입니다”라는 표현은 성립할 수 없다. 이는 “비장애인과의 관계에서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반영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김도현은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마서즈 비니어드에서 농인(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라는 얘기를 한다. 왜냐면 섬의 모든 사람들이 영어와 수화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바이링귀스트(bilinguist)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장애를 만드는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10대 중 1대만 저상버스인 한국의 대중교통은 나머지 9대를 이용하는 사람들 중 일부에게 ‘장애’를 느끼게 한다. 휠체어 이용 시민은 저상버스에서 장애를 느끼지 않는다. 2011년 기준 전국의 저상버스 도입 비율은 12%고, 서울의 경우 24%다.
텔레비전 시청도 마찬가지. 수화 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농인은 텔레비전 앞에서 장애인이 되고, 드라마 생방송에 화면해설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맹인은 장애인이 된다.
이 같은 사례는 특정한 ‘손상’이 바로 ‘장애’가 되는 경우가 아니다. 사회가 장애를 만드는 경우다. 마치 사고로 깁스를 한 사람에게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데 힘든 것처럼 장애는 손상을 차별하는 사회가 원인이라는 시각이다.
김도현은 ‘장애’가 자본주의의 자본-임금노동 관계에서 생겨난 개념이라며 “일을 할 수 있는 몸(the able bodied)를 선별하기 위해 일을 할 수 없는 몸(the disabled bodies)를 명확히 규정하고자 했다”고 지적한다. 테일러·포드주의 시스템 등 엄격한 노동규율과 표준화된 동작을 요구하는 시스템은 장애인을 노동에서 배제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최저임금법’이다. 한국에서 최저임금법 적용의 예외 대상은 유일하게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다. 장애인을 노동에서 배제하는 이러한 시각은 북유럽 복지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도현은 “스웨덴의 경우에도 장애인은 ‘신체적 결손, 정신적 결손, 사회적 장애(알코올·약물중독, 언어장애가 있는 이민자)로 인해 취업이나 직장유지가 곤란한 자’로 정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김도현은 장애인을 비정상인으로 보는 비뚤어진 시각이 우생학의 유령을 되살아나게 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황우석 사태를 예로 들며 ‘척수 장애인을 번쩍 일어나 걷게 만들겠다’는 황우석의 발언은 장애인을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인다. 현재도 모자보건법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을 근거로 장애여성에 대한 임신중절 수술을 합법적·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김도현은 장애인운동의 근본적 과제로 통합이 아닌 변혁을 든다. 그는 “우리의 신체성 자체가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있다”는 1960년대 일본의 급진적 장애인 운동의 구호를 소개하면서 진보적 장애운동이 자본주의 사회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단순히 배제만이 문제라면 장애인들을 현재의 사회에 통합시키면 된다”면서 “그러나 기존의 사회 자체가 장애인의 실존 자체와 충돌한다면 그러한 통합은 새로운 체제,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김도현 지음/ 메이데이/ 2007년 4월
박장준 기자 | weshe@mediatoday.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