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5일 일요일

"우리에겐 증거가 아니라 존중이 필요"


이글은 이코노미 인사이트(Economy Insight) 2012-08-01일자 제28호 기사 ' "우리에겐 증거가 아니라 존중이 필요"'를 퍼왔습니다.
노동과 삶 ● 산재 인정을 위해 싸우는 삼성반도체 노동자들

암과 백혈병으로 56명이 죽고 150명 이상이 발병했는데도 정부 당국은 수수방관이다. 피해자들은 거액의 회유를 뿌리치고 산재 신청을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번번이 노동자 편이 아니었다. 노동자에게 수천 가지 화학물질과 관련된 산재를 직접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게 과연 타당한가?

이선옥 르포작가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자 황유미씨의 추모기일인 지난 3월6일 밤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사망 노동자의 가족들. 뉴시스

지난 6월2일 문자가 한 통 날아들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재생불량성빈혈로 쓰러져 13년간 투병해온 윤슬기씨의 사망 소식이었다. 열아홉의 나이에 병을 얻어 13년간 병과 싸우다 서른한 살에 죽음을 맞은 그녀의 삶이 너무 가여워 가슴이 먹먹했다.


열아홉, 부르는 것만으로도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가 들릴 듯한 나이. '재잘거림' '반짝임' '경쾌함' '맑음' '수줍음' 같은 싱그러운 단어가 따라붙을 나이에 그녀는 몹쓸 병에 걸렸고, 한 달에 한 번씩 수혈로 연명하다 서른을 넘겼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고통 속에서 보내다 결국 고통스럽게 죽은 젊은 여성. 그런 여성은 또 있다.


스러져가는 반도체 노동자들


윤슬기씨가 죽기 한 달 전에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려 투병하던 두 아이의 엄마, 이윤정씨가 숨졌다. 그녀 역시 서른둘밖에 되지 않은 젊은 여성이었다. 고 황유미, 박지연씨도 고등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삼성에 입사해 일하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숨졌다. 그런 죽음이 벌써 56명이나 된다.


그러나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은 여전히 '개별 기업' 차원의 일로 취급될 뿐이다. 하필 그 기업이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초일류기업인 탓에 입법부, 사법부, 언론, 학계 모두 그 기업의 돈에서 자유롭지 못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은 점점 늘어만 간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의 활동가 공유정옥(산업의학 전문의)씨는 수년 동안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백혈병, 암, 희귀성 질환을 앓던 이들의 마지막 모습은 묘사하는 데도 몇 번씩 숨을 골라야 할 만큼 처참했다.


"이번에 윤슬기씨 돌아가실 때는 12시간 가까이 봤는데 피를 흘리면서 죽었어요. 재생불량성빈혈은 어디서 피가 터지면 안 멈추는 병이거든요. 갑자기 폐출혈이 온 거예요. 피가 안 멈추니까 폐에 피가 차잖아요. 물에 빠져 죽는 거랑 똑같아요. 내 피에 내가 빠져서 죽는 것…. 숨 쉴 때마다 계속 코와 입에서 피가 나와요. 몇 시에 죽느냐만 기다리는 상황에서 계속 보다가 나오고, 보다가 나오고 그랬어요. 숨 한 번 쉴 때마다 피를 하도 많이 흘리니까…. 컨디션이 좋아지면 산재 신청하자고 그랬는데…. 하이닉스 김진기씨는 만성 백혈병인데 다른 암은 암세포를 떼어내지만 백혈병은 뼈 속의 골수 문제라 항암제로 골수를 다 죽인 다음에 남의 골수를 넣어야 해요. 백혈병 피해자들은 대부분 감염 아니면 이식 뒤 거부반응으로 돌아가세요. 1∼2년 투병하고 1억원 넘게 돈 쓰고 죽어요. 생존율이 절반밖에 안 돼요. 거부반응이 일어나서 피부가 다 벗겨지고 진물이 흐르고 온몸의 구멍에서 피가 다 나오고…, 그렇게 죽어요. 아내가 우리 남편 너무 불쌍하지 않으냐고, 다른 사람도 이렇게 죽느냐고 묻더라고요. 다들 얼굴만 봐도 피울음이 날 정도로 처참해요. 박지연씨도 막판에 그 예쁜 처녀가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죽었고."


피해자들의 건강했던 생전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들의 사연을 조곤조곤 말해준 다음에야 공유정옥씨는 내게 심호흡을 한 번 하라고 했다. 피해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줄 텐데 아마 놀랄 거고, 지금까지 본 사진 중에 가장 끔찍할 수도 있다고, 평소 공포영화를 못 보면 보지 말라고 했다.


차라리 보지 말걸, 그녀가 열어준 사진을 보는 순간 억 소리가 터져나와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의식을 잃은 채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몸의 모든 피부가 짓무른 모습으로 누군가 누워 있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파리하고 청순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죽어가는 드라마 속의 백혈병은 거짓말이었다. 그날 밤 내내 잠이 오지 않았다. 가난해서 병들고, 가난해서 죽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슬펐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진학 대신 공장에 들어간 아이들. 그래서 병을 얻었지만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힘없는 노동자라 개인의 질병으로 끌어안고 고스란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 가난해서 병에 걸리고, 병에 걸려도 치료받지 못하고, 치료받느라 다시 가난해지는 악순환. 이 순환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서글펐다. 정말 가난이 죄인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건 천형인가.


노동자로 산다는 건 천형인가


삼성반도체 피해 노동자들은 지금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업재해 인정을 위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산재 인정을 받는다는 건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가족도 삼성이 제시한 개별 합의 대신 산재 인정을 받으려 어려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산재 인정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이 삼성이 제시한 합의금보다 적을지라도 이들은 또 다른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타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산재 신청을 포기하면 돈을 주겠다는 삼성의 회유를 거절하고 있다.


피해자들 스스로 서로 말린다고 한다. "힘들어도 조금 나중에 받자, 산재 인정 못 받게 하려는 돈이라 우리가 여기서 그 돈을 받으면 다른 사람들이 계속 죽는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조금만 참자, 조금 나중에 받자." 그렇게 서로 다잡고 있다.


10억원을 주겠다는 삼성의 제안을 거절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자신이 몰던 택시 뒷자리에서 딸이 숨졌다. 너무 힘들어 퇴사하고 싶어도 그 말을 삼키고,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워 펑펑 울고 싶었다던 유미는, 백혈병 응급 치료를 마치고 강원도 속초 집으로 돌아오던 중 싸리재 고개에서 뜬 눈으로 숨을 멈췄다. 엄마는 죽은 딸의 눈을 감겨주며 오열했고, 아버지는 스물셋 꽃 같은 나이의 딸의 주검을 자신의 차에 싣고 울면서 속초까지 가야 했다.


감기인 줄 알고 찾아간 병원에서 바로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골수를 찾았을 때 "나 이제 살았구나!" 했다던 황민웅씨는 돌 지난 첫째아이와,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된 둘째아이를 두고 주검 모습이 제일 험하다는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아내 정애정씨는 건장했던 남편을 하루아침에 잃고 어린 두 아이와 덩그러니 남겨졌다.


한혜경씨는 온몸이 뒤틀리고 병들어 제대로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삼성의 더러운 돈을 받지 않겠다"고 절규한다. 그녀는 뇌종양 수술로 눈물샘을 잘라내 울 수도 없다. 이들 모두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암과 백혈병을 얻었지만, 삼성은 개인적인 질병이라 주장하고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의 변호사들을 앞세워 이들의 산재 신청을 기각하고 있다.


그래도 이들이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는 건, 연이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는 길은 이들의 병을 직업성 질환으로 인정받아 작업환경을 바꾸고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삼성이라는 기업에 정상적인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그 활동이 보장돼야 한다고 피해자와 반올림 활동가들은 입을 모은다. 산재 인정과 노동조합, 이 두 가지 과제를 위해 노동자와 그 가족은 초일류기업 삼성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노조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병에 안 걸리는 건 아니겠지만 노조가 잘되면 현장통제력이 있잖아요. 파업도 할 수 있고. 예를 들어 기아자동차에서도 유해물질 사용 부서에서 계속 암 피해자들이 생겼어요. 그래서 노조가 발암물질 추방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믿을 수 있는 기관에 사용물질에 대한 성분 분석을 의뢰하고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을 촉구했어요. 유해물질로 의심되는 게 튀었을 때는 라인을 멈췄대요. 노조가 그런 힘이 있으면 작업중지권 행사가 가능하죠. 힘있는 노조가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면 결국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대체물질을 사용하게 하고, 과로 스트레스에 놓이지 않게 해서 병에 걸리는 노동자를 대폭 줄일 수 있어요."(이종란 노무사, 반올림 상임활동가)

중증재생불량성빈혈(백혈병)을 앓다가 지난 6월2일 숨진 삼성반도체 노동자 윤슬기씨 방의 자기 사진과 일본어 교재, 소설책. 한겨레 정용일

노동자를 위한 수칙은 없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삼성은 여전히 무노조경영을 고집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산재 인정 과정은 개별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구조다. 불승인이 나면 심사 청구, 재심사 청구, 행정소송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에서 포기하고 만다. 2008년에는 '업무상 요인에 의한 질병이 아니라는 명백한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시행규칙이 삭제돼 노동자들에게 더 불리한 상황이 되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수천 가지 되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조차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는데,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업무연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삼성반도체 노동자들과 피해자 가족 23명이 제기한 산재 승인 청구에서 근로복지공단은 22명에게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대부분 암환자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노동자들이 화학물질의 성분이 얼마나, 어떻게 내 몸에 유해하고, 이게 내 업무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완벽하게 입증하기란 불가능하다. 같은 라인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계속 암에 걸려 죽어가고, 발병자 수가 제보된 것만 150명이 넘는다면, 이는 마땅히 해당 기업과 정부가 나서서 그 업무의 연관성을 밝히고 보상하는 게 상식일 것이다. 아니 그보다 먼저 노동자들에게 당신이 만지는 화학물질은 무엇이며, 그 물질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안전한 일터를 위해 이러이러한 조치를 취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기업의 마땅한 책임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삼성반도체 문제를 다룬 만화 (먼지 없는 방)(김성희 지음)과 (사람 냄새)(김수박 지음)는 '클린수칙은 있어도 안전수칙은 없는' 반도체 공장의 현실을 증언한다. 가장 청정한 산업으로 알려진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은 '화장을 하면 안 된다, 뛰면 안 된다, 3명 이상 모여 있으면 안 된다, 무스나 스프레이를 사용하면 안 된다, 손톱을 기르거나 매니큐어를 바르면 안 된다'는 청정 수칙이 있다.
이는 모두 클린룸의 청정을 유지하기 위한 수칙이다. 노동자를 위한 수칙은 없다. '너는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교육만 하지, '어떤 물질은 사용하고, 어떤 물질은 해롭다'는 교육은 하지 않는다. 이런 일터의 현실이 노동자를 죽이고 있다. 그 죽음의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는 현실이 한시라도 빨리 바뀌어야 한다. 산재 문제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인식이 바뀌는 게 무엇보다 절실하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 발표가 있었는데, 최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에서 반도체 회사의 조립·가공 라인 모두 벤젠, 포름알데히드, 비소 이런 물질들의 노출이 확인됐어요. 특히 혈액암을 일으키는 벤젠·포름알데히드·방사선 노출이 가공뿐 아니라 조립라인에서도 확인됐기 때문에 예전에는 반도체 산업의 산재는 무조건 불승인, '규명되지 않았다' '모른다'였는데 이제는 태도가 조금 바뀐 거 같아요. 저희가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게 행정소송 중인 뇌종양, 루게릭, 다발성 경화증이에요. 워낙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각종 희귀 질환이 많거든요. 이 질병의 원인을 노동자 개인이 아닌 국가와 사업주, 특히 국가의 책임으로 보고 사회보험의 취지를 충분히 살려서 의심이나 개연성만으로도 충분히 인정해주는 판결을 기다리고 있어요."(이종란)

자본권력을 겨누는 화살은 어디에?

"산재는 근거가 전혀 없으면 불승인이고 아주 명확해야만 승인을 해주는데, 사실은 근거가 상당히 있어도 불승인을 당해요. 이게 무슨 사법 처리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보장인데 원인 불명을 이유로 기각하는 건 말이 안 되죠. 화학물질 중에 정보가 공개된 게 15%만 유해 정보가 있대요. 발암성 여부는 8만 종 중에 2%만 시험을 거쳤고, 98%는 연구를 안 했기 때문에 몰라요. 학자들은 돈이 없어서 연구를 못한다고 해요. 기업이 자기 이윤을 깎아먹는 연구에 당연히 돈을 대지 않죠. 기자회견을 할 때 그런 주장을 해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증거가 아니라 존중'이라고. 반도체 노동자들이 산재 인정을 받는다는 건 경제발전이 도대체 뭘 대가로 치르고 이뤄진 것인가 보는 거예요. 결국 노동자의 생명을 대가로 디지털 강국이 되는 거잖아요."(공유정옥)
지난 몇 년 동안 근로복지공단은 1조원이 넘는 흑자를 기록해왔다.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률은 50% 미만으로 낮아졌다. 사회보험을 집행하는 비영리 국가기관이 기록한 1조원 넘는 흑자는 결국 노동자들의 사고와 질병을 방치한 결과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 손실은 18조원을 넘어섰다(고용노동부 집계). 교통재해의 1.4배, 자연재해의 15배 수준이라고 한다. 3시간에 1명씩 노동자가 죽는데도 우리 사회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너무나 둔감하고 무관심하다. 만일 대학생이나 청소년이 1년 내내 3시간에 1명씩 죽어나간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침묵하진 않았을 것이다. 삶에 계급이 있듯, 죽음에도 계급이 있다.
영화 (괴물)에 보면 미군이 한강에 버린 독극물 때문에 괴물이 만들어진다. 그 독극물이 바로 반도체 노동자들의 작업 공정에 노출된 약품 중 하나인 포름알데히드다. 영화 속 포름알데히드가 정체불명의 괴생명체를 만들었듯, 현실의 포름알데히드는 노동자들의 질병과 죽음이라는 괴물을 만들고 있다. 독극물이 만들어낸 괴물이 엉뚱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듯이, 반도체 산업에서 쓰는 수백 가지의 화학물질도 오로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손을 담그고 냄새를 맡으며 일한 노동자들의 목숨을 뺏고 있다.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출 불화살은 어디에 있을까? 영화 속 괴물을 향해 날아가던 불화살처럼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 노동자의 건강권이 제대로 보장받는 세상을 만들 불화살은 어디에 있을까?
대선을 앞두고 부도덕하고 부패한 정치권력의 심장을 겨누는 화살이 되겠다는 정치인은 많은데, 죄 없는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괴물, 인간보다 이윤이 먼저인 자본권력을 겨누는 화살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추모제를 치러야 할 노동자 수는 점점 늘어만 간다.

namufre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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