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일 목요일

꿀꿀이, 꼬꼬, 멍멍이가 편히 죽을 자유를!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8-01일자 기사 '꿀꿀이, 꼬꼬, 멍멍이가 편히 죽을 자유를!'를 퍼왔습니다.
잉여인간을 위한 위안서

이 글을 쓰려고 하니까 너희들을 먹으면서 말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더위 속에서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꿀꿀이, 꼬꼬, 멍멍이여 미안하다.   


굉장한 더위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집에서 찬물 받아 놓고 만화책이나 보는 게 제일 행복하다. 뭐 비행기를 타고 아예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잉여의 피서법은 만화책이나 왕창 빌려 보는 게 손쉬운 피서법이다.


그렇게 불쌍한 눈빛으로 잉여를 바라보지 마시라. 하찮아 보여도 막상 해보면 이게 편하고 재미까지 있는 법. 회사에서 일하는 수많은 직장인들은 자기 집 방바닥에 누워서 라면을 삶아 먹고 만화책이나 원껏 보길 소원 하고 있다.


이 무더위에 진실로 불쌍한 친구는 따로 있다. 바로 복날에 희생되는 많은 동물들이다. 지난 7월28일은 중복이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8월7일은 말복이다. 그 날만 되면 많은 '영양탕' 집은 킬링필드 현장이 된다. "덜덜~"

▲ 우리가 뭘 잘못 했는데!
그렇다고 고기를 먹지 말자는 건 아니다. 잉여가 그렇게 고귀한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없어서 못 먹었으면 못 먹지! 그래도 복날에는 우리를 위해 희생한 가축 친구를 위해 묵념 한번 하고 먹는 건 어떨까?
고개 숙였으면 고기 먹는 것에 죄책감까지야. 먹고 먹히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생태계가 건강해지는 구조 아닌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자신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사형수 목이 뎅강 하고 날아간 순간 그에게 해방을 선사한다고 말했다.
우리 덕분에 많은 가축은 자유를 찾았다. (뭔 황당 논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원기 회복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한 송아지, 꿀꿀이, 멍멍이, 꼬꼬닭들은 목숨이 끊어졌을 때 신체적 자유를 얻는다. 왜 죽어야만 자유를 찾을까….
그 이유는 효율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미 효율성이라는 단어는 온 생활에 스며들었다. 생명을 다루는 병원도 예외는 아닌데 농가라고 버틸 수 있을까? 그것 때문에 많은 가축은 말 그대로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실감하며 자라난다. A급 상품이 되기 위하여!
가축이 먹는 사료에는 성장촉진제와 항생제가 들어 있다. 작은 우리에 가축들을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공간, 토지는 곳 돈이다. 좁을수록 비용은 적게 든다. 그리고 그 뜻은 효율성이 높다는 의미로 통한다. 이미 그 가축은 생명체가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건 말건 상관없다.
그런 동물을 보며 잉여는 속으로 말한다. "자유롭게 자라고 편안히 죽으면 좋겠다"라고 말이다. 살아서는 쓸모없고 죽어서야 상품이 되는 존재를 보면 잉여들은 왠지 모를 동질감이 생긴다. 이 사회 어디에서도 필요하지 않는 존재가 잉여이기 때문이다. 혹 모르겠다. 끔찍해서 이런 말 안하려고 했는데, 장기기증 서약이라도 했다면…. 
지난 2010년 겨울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발생했다. 그 결과 소, 돼지, 닭과 오리, 염소, 사슴을 포함한 880여만 마리가 2011년 2월까지 생매장됐다. 이렇게 야만적일수가? 가축이라 해도 하나의 생명체를 무참히 죽인 것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도시에 산다면 그 참혹함을 느끼기 어렵지만 생매장에 죽어가는 생명을 보아야 하는 농가는 그야말로 흉흉한 분위기였다.

▲ 인간이 가진 생매장에 대한 공포는 상상 이상이다. 따라서 '생매장'은 공포영화에도 자주 등장 한다. 아예 제목으로 나오기도 하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것은 공포영화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는 것 이다.(쇼생크 탈출과 그린 마일로 알려진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영화 '생매장')

구제역 발생 시점에 초기 관리에 실패한 현정부는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많은 가축을 생매장했다. 상품에 하자가 생겼을 땐 가차 없이 빠른 행동을 보여주는 정부다. 사람에게도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구제역은 비인륜적으로 가축을 사육해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효율성이 구제역을 불러왔고 또 가축을 살처분하는 데 있어도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흙에 묻힌 채 공포와 고통 속에 모두들 죽어갔다. 단번에 목숨이 끊기는 자유도 못 얻었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여야 하는 권리가 있을까? 물론 직접 그 작업을 실행한 인원들을 탓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살처분 작업과 관련해 큰 정신적 충격을 입었다는 보도가 나왔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진정한 문제는 이런 일을 지시한 '윗선' 이다.  훌륭하고 높으신 분이니 그 분들의 뜻을 깊이 알 리 없는 건 당연하기도 하다.
잉여는 그저 울부짖는 돼지를 보며 등골이 오싹할 뿐이다.
허공에서 정부가 나를 바라보며 확성기로 "아, 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도 허튼 생각이나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눈앞에 보이는 돼지하고 똑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상 끝"이라고 외치는 악몽을 꿀 정도다.
아 그런데 영국 정부의 농장동물복지위원회(FAWC)는 1979년 가축에게도 보장돼야 할 '5대 자유'가 있다고 발표했다. 그 자유가 무엇인가 하면 ①배고픔과 목마름으로부터의 자유 ②불편으로부터의 자유 ③고통과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④정상적인 활동을 할 자유 ⑤공포와 불안으로부터의 자유다.
동물뿐 아니라 2012년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자유다.

윤개굴 자유기고가  |  bypl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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