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7일 월요일

빚 빨리 갚게 하면 내수침체 더욱 ‘깊은 골’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8-26일자 기사 '빚 빨리 갚게 하면 내수침체 더욱 ‘깊은 골’'을 퍼왔습니다.


진단과 전망 l 가계부채 연착륙 어떻게
주택시장 침체·금융부실 키울
파산 통한 빚 조정방식 피해야

주택대출 원리금 분할상환 유도
생계형 대출은 적절히 유지돼야

최근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가계신용은 922조원으로 전 분기보다 10조9000억원 늘어나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위기 이후 부채가 축소되어 온 주요국들과는 반대로 우리 경제의 가계부채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 부채조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부채조정의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나치게 빠른 부채조정은 내수 부진의 심화를 통해 가계부채의 부실 위험을 더욱 높이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부채가 조정되는 방식, 정확히 말해서 부채의 절대적 규모가 줄어드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채무자들의 파산인데, 이는 부채 규모를 빠르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이지만 부작용이 매우 크다. 금융기관들의 부실이 늘어나면서 경제 전반의 신용경색으로 확산될 수 있고, 채무자들의 파산에 따른 소비침체로 상당 기간의 경기 둔화가 불가피하다. 부동산 거품이 심각했던 미국, 스페인 등이 위기 이후에 겪었거나 겪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과정이다.이들과는 성격이 조금 달랐지만, 우리 경제도 채무자들의 파산을 통한 부채조정으로 인해 내수침체를 겪은 바 있다. 2000년대 초반의 카드사태가 그것이다. 2002년 말 57조원을 기록했던 여신전문회사(카드사)의 가계대출은 2005년 3분기 23조원에 달할 때까지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러한 카드사 가계대출의 축소 과정은 동시에 신용불량자들이 대규모로 양산되는 과정이었다. 이로 인해 2003년 민간소비는 0.4% 감소했으며, 이듬해에도 0.3% 증가에 그치는 등 내수 침체도 심각했다. 이러한 부작용과 경기침체의 경험을 고려한다면, 채무자들의 파산을 통한 부채조정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이 주택담보대출로 이루어져 있음을 고려할 때, 채무자들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주택가격이 빠르게 하락할 경우 주택시장 침체와 금융부실 확대가 맞물리면서 경기침체의 폭과 기간이 매우 심각해질 수 있다.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부채조정 방식은 채무자들의 부채 상환인데, 이와 관련해서는 가계부채의 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계부채라는 이름으로 통칭되기는 하지만, 우리의 가계대출은 주택구입을 위한 담보대출과 서민들의 생계형 대출이라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지난해 감독당국은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통해 만기 일시상환 위주인 주택담보대출의 구조를 장기간에 걸친 원리금 분할상환 중심으로 바꿀 필요성을 제기하였는데, 이는 점진적인 상환을 통한 부채조정을 유도하는 방식인 셈이다.그런데 문제는,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지나치게 빠른 상환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소득이 그다지 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빚을 갚기 위해서는 소비를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다. 부채를 더욱 빨리 갚기 위해서는 가계가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데, 이는 그렇잖아도 부진한 내수경기를 더한층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따라서 신속한 부채조정은 가계부채의 또다른 구성요소인 서민과 자영업자 등의 생계형 가계대출을 더욱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생계형 가계대출의 증가가 내수경기 부진과 무관하지 않음을 감안할 때, 가계부채의 신속한 조정으로 인한 소비 위축은 내수 부진을 더한층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부채상환능력이 취약한 서민계층의 생계형 대출 증가는 분명 우려할 만한 요인이지만, 신속한 부채조정이 이에 대한 대책일 수는 없다. 오히려 경기둔화로 일시적인 어려움에 처한 저소득 계층에 대한 서민금융 등은 적절하게 유지되어야 하며, 이들의 부실 위험을 낮추는 것은 내수경기 활성화와 가계소득 증가를 통해 부채상환능력을 높임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다.우리 경제에서 가계부채의 조정은 필요하지만, 부채의 절대적인 규모가 빠르게 감소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서는 곤란하다. 위기를 겪은 주요국들, 특히 미국에서는 디레버리징이 빠르게 진행된 반면 우리의 경우 오히려 레버리지가 확대되었기 때문에 잠재위험이 심각하다는 주장은 사태의 일면만을 보여줄 뿐이다. 오히려 미국 경제와 같은 수준의 디레버리징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경제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고, 금융기관의 부실도 확대되지 않을 수 있었다. 미국의 ‘신속한’ 디레버리징은 5년여에 걸친 경기침체 아래서 진행되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가계부채가 마냥 늘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반대로 빠르게 줄어들어도 곤란하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의 상황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주택담보대출의 분할상환 유도 등을 통해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지만, 동시에 주택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되며 부채조정이 가파르게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임일섭/농협경제연구소 거시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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