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8일 수요일

“국민 어루만져야할 정치권, 제 욕심 채우기 바빠”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8-08일자 기사 '“국민 어루만져야할 정치권, 제 욕심 채우기 바빠”'를 퍼왔습니다.
[인터뷰]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20년 투쟁

 
ⓒ이승빈 기자 김복동 할머니

지난달 21일 김복동(87) 할머니는 서울을 출발해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하원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시인과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 채택 5주년 기념식에 참가했다.

김 할머니와 일행은 LA다운타운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1032차 수요시위를하고 칼스테이트대학 LA 캠퍼스에서 강연을 했다. 또 갤러리웨스턴에서 스티브 카발로 작가와 언론 인터뷰를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미국 글렌데일 시의 프랭크 퀸테로 시장은 7월 30일을 "한국 일본군 '위안부'의 날"로 선정했고, 미국 전국방송인 폭스뉴스는 3일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팍 공립도서관 앞에 있는 일본군강제위안부 기림비 앞에서 두 차례나 생방송 뉴스로 위안부 문제를 방송했다.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 윤미향 대표와 미국을 방문하고 온 김 할머니는 "미국 워싱턴도 가고 LA에도 갔지. 대학교에서 학생, 학부형들 5~6백명 많이 모였는데 과거 이야기 해주니 '그렇게 험악한 줄은 몰랐다. 자기들도 힘쓰겠다'고 하더라"며 "LA가서는 일본대사를 만났는데 '자기 혼자만 힘을 써서 되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할머니들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도 말했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미국에 다녀오니 마음이 가벼워 진 것 같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미국인들이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관심이 깊어.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을 많이 걱정해"라며 "우리 교포들도 많아서 LA에서는 우리들처럼 수요시위를 하는데, 우리를 모른다고 하는 것 보다 관심을 주니 마음이 더 좋지. 가볍고"라고 말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건넨 1천만원

ⓒ이승빈 기자 김복동 할머니

지난 5월 5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고발하는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이 마포구 성미산 자락에 개관했다. 2003년 점화식을 한 지 9년 만이다. 박물관은 꽃다운 나이에 전쟁터로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졌으며 검은 벽돌로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돼 있다. 1034회를 맞은 정대협과 할머니들의 수요시위의 결실이기도 하다. 

김 할머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건립할 때 매월 조금씩 적금을 모아 1천만원을 전달했다. 최근 미국에 다녀와서도 LA기림비 건립을 위해 보태라며 1000$를 기금했다.

그는 "내가 직접 당한사람"이라며 "내 혼자 힘으로는 안되는 일을, 우리들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도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한다"며 돈을 보태는 이유를 전했다. 이어 "힘껏 도와주고 싶지만 가진게 없어서 많이 해주지 못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 할머니는 지난 1992년 7번째 진행된 수요시위 현장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20년 동안 한결같이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위해 싸워왔다. 그런 김 할머니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애초에 나오지도 않고 묻고 살았을 텐데.."라며 긴시간 투쟁에 지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신사적이지, 그때는 청와대 앞에 드러눕고 그랬어"

ⓒ민중의소리 미국 방문에서 여성인권 활동을 인정받은 공로패

김 할머니는 14살 때 일본군에 끌려가 22살에 돌아왔다. 그는 군복을 짓는 공장에 가는 줄 알았지만 8년 동안 중국·타이·말레이시아를 떠돌았다. 해방이 됐지만 자신이 겪은 일을 세상에 알리기는 어려웠다. 김 할머니는 90년대가 돼서야 진실을 들고 나올 수 있었다.

그는 "처음 신고를 하라고 할 때 내가 가정만 가졌더라면 못했겠지. 그런데 갔다 왔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겠어. 가정이 없으니 '내가 말을 안하면 이게 묻힐 것 아니냐', '우리들이 말을 해야만 나쁜 짓을 한 것을 알 것 아니냐'하고 생각했지"라며 말했다.

이어 "할매들이 젊을 때였는데.. 처음에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렇게 몰라주나' 서러웠어. 지금은 신사적이지만 그때는 막 청와대 앞에서 드러눕고 그랬거든. 그러면 청년들이 우리를 짊어지고 실어 날라서 서울광장에 콱 내려놓고 그랬어"라며 전했다. 

그는 "요즘은 예전과 달리 좀 알아주니까 '나와서 이렇게 하길 잘했구나' 생각이 들지. 관심이 높아져서 마음이 좋아"라며 밝혔다. 그는 특히 수요집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이야기 하면서 "더우나 추우나 와서 할 때보면 우리가 기운이 좀 난다"며 "학생들이 과거 역사 잘 알아서 '우리나라에도 그런일이 있었구나' 알고 잘 자라줬으면 좋겠어"고 고마워 했다.

"국민 어루만져야할 대통령이 도둑질하기 바빠"

ⓒ이승빈 기자 김복동 할머니

김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는데에는 우리 정부의 역할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조건 적으로 일본을 배타할 것은 아니지만 과거를 깨끗하게 청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우리나라 대통령은 '우리 둘이(일본과 한국) 서로 왕래하는 것도 좋지만 과거 잘못된 것은 깨끗하게 청산하자' 이렇게 바로잡아야 하는데 바로잡지도 않고 있다"며 "정치인들은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져 줘야 하는데, 권력을 잡기 전에는 다 해준다고 해놓고 막상 권력을 쥐면 제 욕심 챙기기 바쁘다"고 질타했다.

이어 그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집안일이라고 생각하고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일본에게 '과거의 잘못은 깨끗이 해결하라'고 강력하게 항의를 해서 일본이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할머니는 '하루 빨리 일본이 자기 잘못 뉘우치고 법적 배상하고 사죄를 하는 것'외에는 더 바라는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죄를 받으면 마음이 풀릴 것 같아. 그 전에는 이 마음이 풀리지가 않아"라며 속내를 드러냈다.

김 할머니에게 일본의 사죄와 배상 외에 하고싶은 일을 여쭤봤다. 그는 "편안하게 살고 싶다"며 바람을 전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은 뭘 더 하겠나. 내일 모레면 죽을지 안 죽을지 알기도 어려운데"라며 "사죄받고 배상 다 받고나면 좀 편안하게 살고 싶어. 걱정없이 살다가 가고싶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승빈 기자 김복동 할머니

전지혜 기자 cream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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