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6일 목요일
원전 9기를 멈추게 하는 방법
이글은 시사IN 2012-08-16일자 기사 '원전 9기를 멈추게 하는 방법'을 퍼왔습니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원전 재가동을 통한 전력 공급 증대보다 수급관리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월26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단연 화제는 고리 원자력발전소(고리 원전) 1호기였다. 전문가 초청 간담회와 긴급현안 질문에서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의원들은 고리 원전 1호기의안전성 문제를 언급하며 재가동에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리 원전 1호기는 지난 2월 정전 사고가 일어났고 뒤늦게 김수근 부산시의원에 의해 이 사실이 폭로되면서 3월부터 원전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7월4일 재가동을 승인했지만, 주민들은 검증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민간 전문가를 통해 재검증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상임위에 출석한 조석 지식경제부(지경부) 제2차관과 김균섭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도 ‘신중론’에 공감을 표했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다른 자리에 있던 홍석우 지경부 장관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상임위 분위기는 급격히 변했다. 지경부 출입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홍 장관은 “늦어도 8월3일까지는 고리 원전 1호기를 재가동해야 (휴가철이 끝나는) 13일 정도부터 전력 수급에 문제가 없다”라며 재가동에 시동을 걸었다. 이 소식을 접한 새누리당 윤영석 의원은 “지역구인 경남 양산이 고리 원전에서 10㎞밖에 안 떨어져 있어 지역 주민들이 아직도 불안해한다. 그런데 충분히 소통하겠다고 말한 게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발표를 하나. 이건 국민을 경시하는 태도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조석 차관은 “지금 전력 사정이 상당히 안 좋다. 별도 수요관리가 없으면 예비전력이 100만㎾ 이하로 떨어질 수 있는데 안전이 확인된 원전 재가동이 아쉬운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라며 회의 전반부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연이은 폭염 탓에 전력난이 우려된다며 재가동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들고 나온 셈이었다.
ⓒ뉴시스 2011년 9월15일 여의도 일대 아파트 단지가 전력 부족에 대비해 일제히 전기를 껐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7월30일 영광 원전 6호기가 갑자기 멈췄다. 한수원은 제어봉 제어 계통에 전력을 공급하는 장치의 일부인 전압조절용 전자카드에 문제가 생겼다고 밝혔다. 바로 다음 날에는 영광 원전 2호기의 펌프가 고장이 나 한때 출력이 10%가량 감소하기도 했다. 여론을 의식한 정부는 고리 원전 1호기를 당장 재가동하겠다는 방침에서 한 발 물러섰다. 지경부는 8월6일까지 안전점검과 재조사를 벌인 후 가동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이후는 원전을 재가동할 것이라고 업계 관련자들은 전망한다. 8월 셋째 주 전력 사용량이 피크(peak·절정)라는 예측을 지경부가 거듭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이러한 주장에 의문을 표한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고리 원전 1호기가 생산하는 전기는 전체 전력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전력난을 이유로 고리 원전을 다시 가동하자는 건 정치적 행보다. 영광 원전 6호기가 멈추자, 고리 원전 1호기를 재가동하겠다는 태도를 바꾼 거만 보더라도 당장 전력이 급해서 그런 거라고는 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지난 5년간 전력소비 증가율 30.6%
또 그는 원전 하나를 가동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마치 전력난이라도 올 듯이 호들갑을 떠는 것도 과장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멈춰 있는 원전은 고리 1호기(58만㎾급)와 영광 원전 6호기(100만㎾급)만이 아니다. 울진 원전 3호기(100만㎾급)는 6월30일 계획예방정비(정기점검 및 정비)에 들어갔다. 오는 12월 정비가 끝난다. 울진 원전 4호기(100만㎾급)는 지난해 9월 증기발생기 전열관에서 결함이 발견되어 지금까지 가동이 멈춰 있다. 세 차례에 걸쳐 정비 기간이 연장된 결과 올해 12월 말까지 전력 생산이 중단될 예정이다.
물론 환경단체도 폭염경보가 내릴 정도로 이례적으로 더운 날씨 때문에 전력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이들은 폭염으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대한 대응은 공급 늘리기가 아니라 수요관리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연간 전력소비량은 9510㎾h로 일본(8110㎾h)·독일(7180㎾h)보다 많다. 지난 5년 동안 전력소비 증가율도 30.6%로 일본(-1.9%), 영국(-5.1%), 미국(1.7%)에 비해 훨씬 높다. 그만큼 줄일 수 있는 양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국장은 지난 6월 정부의 ‘정전대비 위기 대응 훈련’을 예로 들었다. 지난 6월21일 정부의 독려로 각 기관과 산업체가 자율적으로 오후 2시부터 20분 동안 전기 끄기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전기가 548만㎾ 절감되었다. 양이원영 국장은 “발전용량이 58만㎾인 고리 원전 1호기 9개가 돌아가야 만들어질 전력량을 20분 전기 끄기로 아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위험한 원전을 다시 가동시키는 것보다는 이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고 경제적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가정용보다 싸게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 관리가 중요하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산업용 전기가 전체 전기 사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아래 그림 참조). 지난 총선에서 녹색당 비례후보로 출마했던 이유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1980년대 원전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전기가 과잉 생산되어 정부가 나서 전기 요금을 낮추는 방식 등으로 전력 사용을 부추긴 면이 있다. 그래놓고 가정만 쥐어짜는 방식으로 콘센트 뽑자고 해서는 안 된다. 전기요금은 가격 탄력성이 크다. 가격을 올리면 수요가 줄어든다. 그런 점에서 덩치 큰 산업계에 전기 요금을 가지고 전력량 사용을 제한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전력거래소에 들러 ‘기업이 생산을 줄일 수 없는 만큼 가정과 일반 서비스 시설에서 절전을 하고, 고리 원전 1호기는 재가동해야 한다’라고 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무식한 말이라고도 지적했다.
일본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원전 사고를 겪은 후 일본은 현재 원전 50기 중 2기만 가동 중이다. 전력 비상상황을 막기 위해 일본에서는 각 지자체와 기업이 수치화된 절전 목표를 정했다. 에 따르면, 일본 코카콜라와 전국 12개 음료 업체 등으로 구성된 ‘코카콜라 시스템’의 경우 15% 절전을 내걸었다. 자판기 냉각 운전을 차례대로 1~3시간 정지하는 방식 등으로 전력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또 JR 규슈는 전력 소비 피크타임인 오후를 중심으로 후쿠오카 시 교외 열차 노선의 감축 운행 및 열차편성 감축을 실시하고 있다.
이헌석 대표는 “단순히 ‘냉방 중인 가게 문을 닫자’ ‘온도는 몇 도에 맞추자’보다는 수치화된 감축 목표를 정해 민·관이 함께 노력하는 일본의 경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원전 대부분이 다 멈췄는데도 일본에서 전력 대란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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