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8-01일자 기사 '용비어천가가 무색한 ‘전두환 찬가’ 언론과 권력 (53)'을 퍼왔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부와 아첨은 경멸의 대상이 된다. 하물며 사회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여론을 선도하는 언론인이 그런 행태를 보이면 경멸을 넘어서 사회적 지탄을 받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권세와 영화를 누리던 자들은 지금도 일제 잔재 청산의 심판대에 오르고 있고, 이승만 정권 시기에 ‘국부론(國父論)’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던 ‘만송족(晩松族)’은 역사에 추악한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에도 아부와 아첨으로 ‘입신양명’하던 정치인이나 지식인이 많았다. 특히 언론계에서 권력을 비판하는 글로 필명을 날리던 기자나 간부가 어느 날 독재자를 찬양하는 쪽으로 변신한 뒤 청와대와 국회로 가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 전두환 전 대통령.
현대판 용비어천가에 관한 한, 1980년 여름부터 시작된 ‘전두환 찬가’에 필적할 만한 사례는 아주 드물 것이다. 그 전개 과정을 살펴보자.
1980년 5·17 쿠데타와 광주 학살로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고 권력을 잡은 전두환은 대통령 최규하에게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하자고 건의했다. 말이 건의지 그것은 강요나 다름없었다. 전두환은 5월 31일에 신설된 국보위의 실질적 권력기구인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정권을 장악할 준비를 서둘렀다.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는 8월 16일 최규하에게 압력을 가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한 뒤 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 선출을 위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열었다. 단일후보로 나선 전두환은 총 투표자 2,525 명 가운데 2,524 명의 찬성, 무효 1표로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 선거 엿새 전인 8월 21일 전군지휘관회의가 ‘예편한 육군대장 전두환’을 대통령후보로 추대하자 조선일보에는 아래와 같은 ‘기사들’이 실렸다.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인간 전두환, 그가 육사를 지망한 것은 적의 군화에 짓밟힌 나라를 위하는 길은 내 한 몸 나라에 던져 총칼을 들고 싸우는 길밖에 없다는 일념 때문이다. (···)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천성적인 결단은 그를 군의 지도자가 아니라 온 국민의 지도자 상으로 클로즈업 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12·12 사건만 해도 그렇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쪽에 서면 개인의 영달은 물론 위험부담이 전혀 없다는 걸 그도 알았으리라. 이미 고인이 된 대통령의 억울함을 규명한다고 하여 누가 알아줄 리도 없는 일이었다. (···) 그가 보여준 일련의 행위는 육사에서 익히고 오랜 군대생활에서 다져진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도덕적 행위라는 게 주위의 얘기다.
육사 생도들의 프라이드는 높았다. 한줌의 국력까지도 전선으로 보내야 했던 시절이므로 이들에 대한 처우는 사실상 초라한 것이었다. (···) 그러나 전 장군에게 이 쓰라린 역경들은 오히려 견인불발의 인내심, 물욕에 대한 초탈, 체질화된 서민의식, 도덕적 겸허주의, 남의 고통에 대한 연민 등의 덕성을 길러 낼 수 있는 토양이 되었을 것. (···) 양담배 한 갑 정도의 부조리도 참아 넘기지 못하고 바로 잡았던 원칙장교로서 용명을 날렸다고 한다. 청년장교의 우국의 울분 속에 이미 개혁과 숙정의 의지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겨우 석 달 전에 광주 일원에서 수백 명을 살상하고 독재자 박정희의 후계자로 등장한 전두환이 위의 글들에서는 ‘희대의 영웅’ ‘애국심이 강한 지도자’ ‘속세를 초월한 인물’ ‘겸허라고 연민의 정을 가진 사람’으로 나타나 있다. 그야말로 흠집이라고는 전혀 없는 초인 아니면 신 같은 존재이다.
조선일보 8월 23일자 특집 ‘인간 전두환’에는 ‘동기생일지라도 어쩌다 그를 대할 때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암벽을 대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는 최고의 찬사가 들어 있었다.
중앙일보는 8월 27일자 사설에서 ‘대통령 체제의 출현은 80년대의 새로운 발전에 필요한 새로운 활력을 얻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그 사설은 ‘합천에서 청와대까지’라는 제목으로 4회나 연재되었다. 문명국이라는 소리를 듣는 그 어느 나라의 신문이 쿠데타와 학살로 집권한 사람을 나흘 동안 사설로 찬양한 적이 있었던가? 중앙일보는 그 연속사설에서 ‘여권에는 냉정하고 근검절약이 몸에 밴 인물’이라고 전두환을 극찬하는가 하면, ‘이른 새벽 관측소 초병에게 커피를 끓여 주며 격려’를 하고, ‘씨름도 지면 이길 때까지 계속하는’ 불굴의 사나이라면서 그의 ‘따뜻한 인간성’과 ‘굳센 의지’에 찬사를 보냈다.

▲ 상단 기사 <조선일보> 8월 23일자 특집 ‘인간 전두환’, 아래 기사 <경향신문> 8월 19일자 특집 ‘새역사 창조의 선도자 전두환 시리즈 1편’
“한국일보는 9월 11일자 사설에서 ‘민권의 생활적 실현의 선도자로서 전두환 대통령을 우리는 날마다 목도하고 있다’고 예찬하면서, 전 씨가 예술공연을 관람한 사실을 두고 ‘역대 어느 지도자보다도 문예진흥에 크나큰 관심과 비중을 두고 있음이 여러 차례 사사됐다’라고 칭송했다. 광주 학살, 삼청교육대, 언론인 축출, 민주인사 투옥 등 반민권의 상징적인 인물을 두고 ‘민권의 생활적 실현의 선도자’라고 곡필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신문은 이에 앞서 3회에 걸쳐 연재된 특집 ‘전두환 장군 의지의 30년’에서는 ‘구국의 길을 뚫을 수 있다면 백 번 죽어도 한이 없다’는 전 씨의 ‘우국충정’을 소개했고, 취임 1개월 특집 ‘국민 속 파고든 서민의 이웃’에서는 ‘휴일도 밤낮 없는 취임 한 달···민정시찰 때는 악천후에 헬기 강행군’이라고 미화했다.”(, 377쪽)
경향신문은 3회에 걸쳐 연재한 ‘새 역사 창조의 선도자 전두환 장군’에서 ‘서릿발 같은 판단력 뒤에는 훈훈한 인정을 느낄 수 있는 서민풍’이 있다고 찬양하면서 ‘편견 없는 성품은 항상 약자 편’이라고 미화했다.
“전두환 신군부체제의 등장을 비교적 비판적 시각으로 보도해온 동아일보도 전 씨의 대통령 당선 다음날인 8월 28일자 1면 사설에서 ‘전 대통령이 등장한 것은 한국 정치의 고질이었으며 종래 구정권들이 바로잡지 못했던 정권 차원만의 정치성, 관료성, 사대성, 허위의식에 대한 실천적 반론’이라는 둔사로써 전 씨 체제를 비호했다. 동아일보는 또한 8월 30일 전면 특집 ‘새 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 우국충정 30년···비범 속의 실천’이라는 제목 아래 ‘외제 물건을 전혀 모를 정도로 청렴결백한 생활로 일관해 왔다’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앞의 책, 378쪽)
신문의 사설은 회사의 공식 견해이므로 논설위원들이 무기명으로 쓴다. 그 시절에 이름을 가리고 ‘전두환 찬가’를 써댄 언론인들이 오늘 자신의 글을 다시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기명으로 ‘특집’ 기사를 작성해서 전두환의 눈에 띄어 총애를 받게 된 기자들은?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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