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1일 일요일

나는 장준하의 외침을 외면할 수 없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4-21일자 기사 '나는 장준하의 외침을 외면할 수 없다'를 퍼왔습니다.
[미디어현장] ‘장준하 전문기자’의 취재 후일담-박경만 한겨레 사회2부 기자(부장)

지난달 28~30일, 유신 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다가 1975년 8월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된 장준하 선생의 겨레장이 서울광장에서 열렸습니다. 선생이 숨진 지 37년 7개월 만입니다.

민주통합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시도지사, 재야 민주화 인사에서부터 직장인, 주부, 대학생, 청소년까지 남녀노소 구별 없이 많은 사람이 줄지어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사흘 동안 서울시청 앞 분향소와 파주 장준하공원 묘소에는 8000여 명의 시민이 찾아와 선생을 추모하며 꽃을 바쳤습니다.

장을 벌려놓고 노심초사했을 주최 쪽의 얼굴에는 감동의 빛이 역력했습니다. 겨레장위원회 관계자는 문상객 모두가 장 선생님이 불러 모은 ‘장 선생님 손님’이라고 겸손해 했습니다. 주최 쪽이 가능성 반반으로 점쳤던 청와대 관계자의 깜짝 조문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장 선생이 정적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쪽 사람들은 부르지 않았나 봅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번듯하게 치러진 겨레장은 유족들의 응어리진 한을 조금은 달래준 것 같습니다. 장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쫓기듯 선친의 주검을 차에 싣고 파주의 산간벽지 공동묘지에 도착해보니 묘지란 게 사람이 설 수도 없을 만큼 비좁고 초라했다고 장남은 당시를 회고하며 몸서리쳤습니다.

겨레장을 하루 앞둔 27일엔 서울대 의대 이정빈 명예교수가 유골 정밀감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면이 둥그런 돌이나 아령 같은 물체로 머리를 가격당해 숨이 끊어진 뒤 추락해 엉덩이뼈가 손상됐다”는 것이, 국내에서 손꼽히는 법의학자가 “양심을 걸고 내린 결론”입니다. 서울대 의대의 여러 전문가들이 두개골을 절개하고 컴퓨터단층(CT) 촬영과 3D동영상, 유전자 분석 등 첨단기술을 사용해 정밀 분석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단순한 실족 추락사라는 정부의 발표는 거짓임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장준하 선생은 지난해 8월1일 무덤 이장과정에서 동그랗게 함몰된 두개골 모습으로 ‘타살 증거’를 스스로 드러냈습니다. 그동안 권력기관에 의해 타살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여러 차례 조사가 진행됐지만 결정적인 증거 부족으로 명쾌하게 진실규명이 되지 못했습니다.

시계 바늘을 1년 전으로 돌려 장준하 선생과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선생이 돌아가신 지 37년째 되던 지난해 이른 봄 입니다.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선생의 묘소가 홍수로 무너져 내려 8월 중순 통일동산에 ‘장준하공원’을 만들어 유해를 이장할 계획이라는 제보가 계기가 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전까지만 해도 선생의 묘소가 파주에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장준하 추모공원 개장일이 가까워 오자 차질 없이 준비가 되고 있는 지 궁금해져 파주에 사는 60대 제보자를 찾았습니다. 제보자는 한참동안 다른 얘기를 하다가 최근 선생의 묘소를 통일동산으로 이장했다고 전했습니다. 유골을 직접 봤냐는 물음에 그는 주저하듯 유골의 모양새를 띄엄띄엄 얘기해줬습니다.

사내 집배신에 메모를 올렸더니 편집국 고위간부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취재를 독려했습니다. 장준하추모공원 추진위원들과 유족으로부터 오른쪽 귀 뒷머리에 망치로 맞은 듯한 6~7㎝ 크기의 함몰된 상흔과, 유골 수습과 검증에 참여한 서울대 의대 법의학 교수가 ‘자연적으로 생기기 힘든 상처’라는 소견을 냈다는 팩트를 챙기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온몸에 전율이 감돌았습니다. 장준하 선생은 이렇게 해서 사후 37년 만에 를 통해 다시 세상에 나왔습니다. 귀를 여니 곳곳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선생의 가족들은 졸지에 가장을 잃고 숨죽이며 살아온 서러운 세월을 들려줬습니다.

선생을 모셨던 수행비서는 유신정권이 ‘장준하 간첩단’을 조작하려고 40일간 자신을 고문했다는 증언을 들려줬습니다.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에서 장준하 의문사 사건을 맡았던 조사관은 ‘단순 추락사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는 당시 조사 결과를 얘기해줬습니다. 그들은 선생과 관련된 작은 것 하나까지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진실 규명을 서두르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때를 기다린 것 같았습니다.

선생과 관련된 자료를 모두 찾아 읽고, 포천 약사봉 현장을 답사하고, 서가에서 먼지만 덮고 있던 를 꺼내 다시 읽었습니다. 정신없이 선생의 그림자를 쫓아다니다 보니 어느 날 ‘장준하 전문기자’ 쯤으로 대접받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민주당에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조사위원회가 설치됐고 암살의혹 규명 국민대책위원회도 꾸려졌습니다.

박경만 한겨레 사회2부 기자

이제 유골감식까지 마쳤으니 아마도 8부 능선쯤에 이른 것 같습니다. 민주당은 하루 속히 특별법을 제정해 진실을 밝히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근혜 정부는 ‘장준하의 외침’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두려운 것은 부정이나 반박이 아니라 무시와 무관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박근혜 정부가 반응할 때까지 ‘싸움걸기’를 계속하겠다고 말합니다.

선생 덕분에 몇 년 치 톱기사를 한꺼번에 쓴 죄로 ‘장준하의 외침’이 외로운 싸움이 되도록 외면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인연이란 이런 건가 봅니다.

박경만 한겨레 사회2부 기자 |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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