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0일 토요일

방송공정성특위 발(發) 블랙코미디에 대한 우려와 기대


이글은 미디어스 2013-04-19일자 기사 '방송공정성특위 발(發) 블랙코미디에 대한 우려와 기대'를 퍼왔습니다.
[기고] 이영만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
정치는 국민을 관객으로 두고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행위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서 배우들은 몇몇 그룹으로 나뉜다. 물론 정해진 각본은 없다. 객석 분위기를 봐가면서 투쟁과 대화, 경쟁,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극을 이끌어간다. 상대편 배우에게 마음에도 없는 호통을 치기도 하고, 헐리우드 액션과 방백(傍白)도 난무한다. 어떤 경우에는 관객을 의식하면서 서로 반대편 그룹끼리 짬짜미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정치는 쇼(show)의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이 극장의 관객은 단순히 구경만 하는 관객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배우들을 캐스팅(선거)하고, 무대 위에서의 말과 행동을 통제하는 권한이 있다. 연기가 형편 없거나 엉뚱한 언행을 하면 무대 아래로 끌어내릴 수도 있다. 바로 민주주의 메커니즘이다.

▲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방송공정성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새누리당 의원들이 전원 불참해 자리가 텅 비어있다. 이날 회의는 여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개회하지 못하고 산회했다ⓒ뉴스1


이렇게 정치판에서는 이 두 요소가 결합되어 매일 ‘민주주의쇼’가 열린다. ‘국민이 곧 권력’이라는 고귀해 보이는 가치가 쇼라는 가벼운 형식에 담긴다. 서로 명분과 실리를 주거니받거니 하며 연기생활을 더 오래하려고, 더 중요한 비중의 역할을 맡으려고 애쓴다.
그런데 이 판에서 중요한 요소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언론이다. 대부분의 관객은 배우들을 직접 보지 못한다. 내가 뽑아 무대 위로 올린 배우가 열심히 하는지, 허튼짓은 안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매개체가 바로 언론이다. 반대의 기능도 있다. 관객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 배우와 그룹에 알리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다.
MB 정권 5년 동안 언론은 매우 편향적이었다. 더 넓은 무대면적과 많은 배우의 수를 차지한 그룹에 지나치게 우호적인 렌즈를 착용했다. 주도권을 쥔 배우들(대통령과 여당)을 실제보다 아름답게 그렸으며 실수에는 눈을 감았다. 권력이 언론을 장악한 결과였다. 배우가 매체를 좌지우지하고 이의 영향을 받은 관객들이 다시 그 힘 센 배우를 캐스팅하는 악순환이 생겨났다. 정치판의 룰이 불공정하게 틀어졌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심각한 왜곡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 이같은 왜곡을 바로잡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MBC 김재철이나 YTN 배석규와 같은 정권발 낙하산 사장을 몰아내거나 뉴스타파, 국민TV, 고발뉴스 등 대안매체를 만드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국회에 방송공공성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것으로 보아 야당은 물론 여당 정치인들도 언론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다. 물론 이 불공정성으로 이익을 챙긴 여당의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특위가 15일로 예정되었던 첫 회의부터 파행을 빚었다. 특위 내 야당(?)인 새누리당이 회의 소집에 응하지 않은 것이다. 전병헌 위원장이 여야 간사 간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일정을 잡았다는 게 보이콧의 명분이다. 그런데 이면에는 새누리당이 이경재 방송통신위원회의 청문보고서 채택을 합의해 주지 않은 민주통합당에 대해 항의한 거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국회든, 미방위든, 공정성 특위든 ‘여’가 강공드라이브를 걸고, ‘야’가 몽니를 부리며 저항하는 모양새다.
사실 이 문제는 몇 달을 끌어오던 정부조직법 개정 협상부터 비롯된다. 여야 정치인들은 오랜 격투 장면을 연기하느라 에너지가 소진됐고, 양쪽 모두 지지 관객들 잃을까 노심초사하며 합의한 것이 바로 방송공정성 특위다. 9월말까지 한시적으로 활동할 기구를 만들어 놓고 각자의 진지로 돌아가 한숨 돌리자는 합의다. 말하자면 이 특위의 구성 자체가 미봉책이요, 명분용이라는 것이다. 특위의 활동으로 그동안 훼손됐던 방송의 공정성이 전향적으로 회복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불행하게도 거의 없다. 시작부터 삐거덕거리는 모양새부터가 그렇다. 어쩌면 방송을 진영논리에서 독립시키자는 논의를 각 ‘진영’에 맡겨놓은 것 자체가 형용모순이기도 하다.
그림이 그려진다. 민주당은 명분을 내세워 다그칠 것이고, 새누리당은 대응을 최소화할 것이다. 위원들을 방송과는 거리가 먼 인사들로 채운 것부터가 그렇다. 새누리당의 입장에서는 무승부가 승리요, 파행이 쟁취이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를 입에 넣었으나 씹지 않고 버티기만 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도 나름의 쇼를 펼칠 것이다. 새누리당의 물귀신 작전으로 논의의 진전을 보지 못하면 또다른 미봉책으로 매듭지으려 할 수도 있다. 최악에는 올림픽 배드민턴 경기 고의패배와 같은 무의미한 ‘쇼’가 펼쳐질 수도 있다. 서로 이해의 대립을 넘어서기 힘들다는 변명으로 뱀꼬리 같은 피날레로 귀결되지 않을까 매우 우려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에게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혼신을 다하는 연기를 펼쳐야 한다. 그것이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이 입을 모아 역설한 새로운 정치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전망과 우려는 그동안 불량한 배우들이 보여준 행태를 전제로 한 것이다. 19대 국회가 표방한 새로운 면모가 공염불이 되지 않으려면 시금석이라 할 수 있는 방송공정성 특위에서 밀도 있는 논의를 전개하고, 내실 있는 결과물을 내놓야 한다.
새누리당 위원들에게 주문한다. 방송의 공정성은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조건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질서에 우선하는 정치적 이득은 없다. 설령 지엽적인 이익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반민주적인 것이다. 각 당의 이해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게임의 룰이 논의의 기준이 돼야 한다. 민주당 역시 나약한 변명을 내세우기 전에 최선을 다해 전략을 세우고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 방송공정성 특위에 모든 정치력을 집중해야 한다. 자당에 이로운 일이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에 쇼의 성격이 없을 수는 없지만 개콘 수준의 말초적이고 일시적인 쇼여서는 안된다. 특위 내에서 웃기지도 않고 의미도 없는 블랙코미디가 펼쳐지지 않기를, 전에 없던 진짜 멋진 정치쇼로 모든 우려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주기를, 모든 특위 위원들에게 진심으로 당부한다. 



이영만/언론노조 정책국장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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