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4일 수요일

민주당 우클릭 논쟁이 놓치고 있는 것들


이글은 미디어스 2013-04-23일자 기사 '민주당 우클릭 논쟁이 놓치고 있는 것들'을 퍼왔습니다.
정녕 ‘샤워실의 바보’는 누구인가

▲ 23일자 중앙일보 6면 기사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이 만들어낸 ‘샤워실의 바보(fool in shower)’라는 말이 있다. 샤워실에서 찬물을 틀면 차갑다고 레버를 극단적으로 반대로 돌리고, 뜨거운 물이 나오면 다시 극단적으로 반대로 돌려 끝내 원하는 온도로 샤워하지 못하는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에 반대하여 정부의 통화량과 금리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이 ‘샤워실의 바보’가 하는 행위와 똑같다고 주장했다. 
물론 밀턴 프리드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당의 거듭되는 ‘좌클릭’, ‘우클릭’ 논쟁들을 보다 보면 프리드만과는 다른 의미에서 ‘샤워실의 바보’가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시계를 2004년으로 돌려보자. ‘탄핵 역풍’으로 인해 총선에서 처음으로 원내 다수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총선 이후부터 ‘우클릭’ 행보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분양가 원가 공개 반대는 내 소신”이라면서 기존의 입장을 뒤집었고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당노선을 ‘실용주의’로 가져가자고 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던 임종인의 표현을 따른다면 “2002년 당시 노무현의 공약보다 이회창의 공약에 가까운” 정책 운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2007년 대선에서 참패했다. ‘잃어버린 600만표’라는 탄식이 나올만큼 참혹한 패배였다. 정책적으로는 ‘우클릭’을 했지만, 새누리당은 “반기업정서를 지닌 좌파들의 세금폭탄”이라고 비난했고 그게 먹혀들어 유권자들은 ‘좌클릭’에 반대하면서 새누리당을 찍었다. 정책 지향과 그 효과, 선거 홍보는 별개의 영역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참여정부는 당시 유행하던 신자유주의 조류에 편승한 경제정책을 펼쳤고 복지예산을 늘리며 빈곤층 및 차상위계층의 삶을 ‘커버’하려고 했지만 복지예산을 늘리는 것엔 애로사항이 많았고 집권기간 내내 양극화는 심해졌다. 보기 드물게 짜임새 있는 정책 제안이었던 ‘비전 2030’은 버려졌고 한미FTA만 그들의 유산으로 남았다. 
 
결국 ‘우파 노선의 실패’를 ‘좌파로 인지된 정치세력’이 책임져야 하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았고 이명박 정부는 ‘우클릭’을 하겠다며 더한 극단으로 치달았다. ‘부자감세’의 책임은 온전히 이명박 정부가 져야 하지만 한편으로 민주정부 십 년 동안 좀 더 진보적인 사회경제정책을 펼쳤다면 보수정부의 ‘우클릭’이 저 정도 수준은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패배한 이후에도 민주당은 ‘우클릭’을 했다. 중도층을 공략하려면 ‘우클릭’이 해답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손학규 대표가 ‘잃어버린 600만표’와 ‘중도층 공략’을 내세웠지만 이인영 의원 등이 ‘진보적 포지션’이 필요하다며 나름의 브레이크를 걸었다. 아마 민주당이 이때부터 주욱 ‘우클릭’을 했다면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보다도 오른쪽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그리 흘러가지 않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무상급식을 내걸면서 엉겁결에 승리했다. ‘우클릭’이 아니라 ‘좌클릭’이 중도층을 공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겨질 가능성이 보이자 민주당은 화끈하게 왼쪽으로 왔다. 정동영 의원 등이 강력하게 주장하여 2011년엔 ‘보편적 복지’가 아예 강령으로 포함되었다. 2012년 총선 직전에는 트위터 여론을 수렴하여 제주 구럼비마을 발파 현장에 한명숙 대표와 정동영 의원 등이 내려가는 등 ‘좌클릭’이 정점에 달했다. 
 
2012년 총선과 2012년 대선이 패배했으니 그 전략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강령 개정을 주창하는 이들이 말하는 것에도 전혀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가령 “국민은 사회경제적 문제에서는 진보를 바라고 안보문제에서는 보수를 바란다”와 같은 발언들이 그렇다. 
 
민주당은 한국 현대사를 평가하는 문제, 대북정책이나 북한인권 등 안보문제, ‘민주정부 10년’을 평가하는 문제 등에서 국민의 눈높이를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 내 486운동권들이 과거 운동할 때에나, 혹은 독립적 진보정당 운동을 하는 인사와 마찬가지로 도덕적 우월의식을 가지고 유권자를 대한다는 것이 유권자들의 ‘의심’이다. 
 
민주당은 그 의심을 풀어주려는 길로 나아가야 하며, 대선 정국에서도 그랬다면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수구세력에 대한 투항’만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가령 박정희 시기와 전두환 시기를 구별해서 평가하는 것, 박정희의 60년대와 70년대를 구별해서 판단하는 것은 독재정권의 시대적 역할과 그 공과를 세련되게 변별하면서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 훌륭한 방편이다. 
 
박정희의 60년대가 민중의 열망을 일부나마 대변했음을 인정해야 그의 70년대가 그릇된 정세판단과 권력욕에 의한 것임을 준엄하게 질타할 수 있고 산업화에 대한 민주화 세력의 공로도 힘주어 얘기할 수 있다. 문재인 후보가 박정희 묘소에 일단 참배한 후 박근혜 후보의 ‘사과’를 압박했다면 박근혜 후보는 더욱 궁지에 몰렸을 것이고 안철수 후보가 박정희 묘소에 참배하면서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드러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래야만이 훗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박정희는 몰라도 전두환의 국립묘지 안장은 안 된다는 논리가 큰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사회경제적 문제에서의 진보적 정책은 대선 패배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된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담론이 핵심의제로 떠오른 선거는 서민층의 삶에 대한 피로도가 극심해졌음을 드러낸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실현가능한 정책을 내세웠느냐, 정책에 대한 집행의지가 있느냐는 것이었는데 이 지점에서 민주당은 유권자들에게 (새누리당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한미FTA 재검토를 생략하고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는 것은 합당한 일일까? 
 
박근혜 정부 시기 서민층의 삶이 더욱 피폐해질 것이라 예상한다면, 증세 없이는 박근혜 정부의 대선공약조차 실현이 불가능할 거라고 예상한다면, 민주당이 가야 할 길은 오히려 역방향일 수 있다. 2011년 민주당 강령 수준의 복지담론이 너무 부담스럽다면, ‘박근혜 정부의 대선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수준의 증세 제안’과 같은 역발상도 고려해봄직하다. 
 
2천 년대 중반 이후 민주당의 ‘위기’는 좌클릭이나 우클릭의 문제가 아니라 수권정당으로서의 역량을 대중에게 증명해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샤워실의 바보’를 벗어나려면 강령을 좌회전하냐 우회전하냐를 떠나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비해 실현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서민적 정책제안 행보를 해야 한다. 
 
결국 ‘좌클릭’과 ‘중도층 공략’은 모순되는 목표도 아니요, 따로 놀아야 할 목표도 아닌 것이다. 따로 놀아야 할 것이 아닌 것을 굳이 분리해내는 이유는 민주당을 혁신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파갈등에서 상대편을 비방하고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함일 것이다. 민주당은 사회경제적 문제에선 진보성을 견지할 필요가 있고 안보문제나 역사관 문제에선 국민의 눈높이를 맞춰야 할 필요가 있는데 '주류'라는 486들은 전자는 추구하지만 후자는 거부하고 있고 '비주류'라는 반노들은 후자를 추구하면서 전자에 대해서도 '우클릭'을 하자고 한다. 지켜보는 이들 입장에선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어영부영하는 사이 안철수가 ‘여의도 나들목’으로 진입 중이다. 물론 그의 ‘2차 공습’이 역량부족으로 인해 ‘미풍’으로 끝날 가능성도 높지만, ‘경쟁자’의 무능함에 안주해서야 2017년 대선에서도 희망을 찾기 어렵다. 정당 장악에 대한 권력욕이 그토록 충만한 사람들이 정권 장악에 대한 권력욕은 어째서 가지지 못하는가. 이왕 권력욕을 가질 거면 멀리 내다봤으면 한다.

한윤형 기자  |  a_hriman@hotmail.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