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3일 금요일

MB 5년의 외침 ‘가자, 비정규직으로’


이글은 시사IN 2012-11-22일자 기사 'MB 5년의 외침 ‘가자, 비정규직으로’'를 퍼왔습니다.
이명박 시대에는 노동시장 양극화도 심해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커지고 정리해고가 거의 상시화됐다. 노동시간을 단축해 생기는 빈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자는 방안도 나왔다.

이명박 정부의 출발은 노무현 정권의 실패와 맞닿아 있다.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사회 양극화를 초래했다. 이에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는 ‘성장’을 약속했다. 성장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일자리와 좀 더 나은 삶, 분배의 확대를 약속했던 것이다. 그 유명한 ‘747 공약’이 등장했고, 국민은 이명박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기업 프렌들리(friendly)’에 걸맞게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상시화했다. 그 시작을 알렸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그렇게 5년을 보내고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명박 시대는 ‘양극화 심화’의 시대였다. 아주 얌전한 표현이 ‘심화’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아주 ‘개판’이 되었다. 노동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첫째, 격차가 심해졌다. 대기업과 중소 영세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의 양극화는 물론이고 세대별 간격도 훨씬 심해졌다. 지역별 격차 역시 커졌다. 둘째, 일자리 증가는 둔화 또는 정체되었다. 그나마 늘어난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이거나 노동자들이 이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비전형적인’ 일자리였다. 셋째, 상향 이동이 차단되었다. 한번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면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수많은 ‘스펙’을 쌓아도 비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맴돌 뿐, 대기업 정규직으로 이동하는 길은 거의 차단되었다.

ⓒ뉴시스 2007년 8월7일 ‘대한민국747후원회 총회’에 참석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그의 경제성장 공약은 물거품이 되었다.

정규직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인력 조정은 거의 상시화되었다. 여기서 밀려난 노동자들은 조그마한 가게라도 차려서 ‘사장님’이 되지만 자영업자의 생존 연한은 채 4년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일자리를 찾아보니, 이 일을 어쩌나! 단시간 아니면 임시·파견·용역 일자리뿐이다. 이명박 정부는 사회 서비스, 개인 서비스, 사업 서비스 부문의 ‘상용’ 일자리가 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또한 형편없는 임금 수준에 노동권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질 떨어지는 비정규 일자리’일 뿐이다.

노동계의 양보만 요구한 타협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부터 좋은 말을 많이 했다. ‘투쟁의 시대를 끝내고 동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과격한 투쟁은 결국 자멸을 가져온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지역) 노·사·민·정 협의체’를 구성하고 사회협약을 맺어 지역 단위로 노사협력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하지만 ‘동반의 시대’는 시작도 해보지 않고 막을 내렸다. 첫 번째 시도는 2009년 2월 만들어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였다. 한국노총과 경총이 합의하면서 발족하긴 했지만, 민주노총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 비상대책회의가 발족 선언문에서 “개별 주체의 이익보다 국가 전체를 생각하는 대승적 견지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겠다”라며, 사실상 노동계의 양보 혹은 요구 자제를 먼저 요청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시도였던 지역 노·사·민·정 협의체도 좌초했다. “지역 노사관계 정도에 따라 지방교부세를 차등 지원하고, 노사상생 우수 지자체에 특목고·대학·공장 설립 규제를 완화하겠다”라고 했다. 이는 민주노총이 참여할 명분을 박탈한 처사였다. 

반쪽짜리 ‘동반’의 모양새 속에서 정부는 매우 후진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을 휘둘렀다. 쌍용자동차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좌절의 시대’를 만들었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자 정부는 사태 해결보다는 파업 진압에 발 벗고 나섰다. 심지어 쌍용차 측이 폭력적 행동을 자행할 때 공모한 정황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마침내 헬기까지 동원해 파업을 진압하면서 과거 권위주의 정부보다 더 심한 행태를 드러냈다.

ⓒ시사IN 자료 2011년 6월29일 시민단체들이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민생파탄 이명박 정권 심판 범국민대회’를 개최했다.

복수노조와 타임오프 제도(유급 노조활동 시간 제한제)는 나라 안 노사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었다. 한나라당과 정책 연대를 선언했던 한국노총조차 2009년 10월15일 “(정책 연대 파트너에 대한) 명백한 배신행위이자 노조 말살 행위”라고 규정하며 정책 연대 파기와 연내 총파업을 결의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을 강행하더니 개별 사업장 노사관계에 깊숙이 개입했다. 개별 사업장에서 맺은 타임오프에 대해서 일일이 확인해 벌금을 물리고 시정을 강요한 것이다. 개별 노사관계에서조차 이명박 정부는 기업 편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복수노조 제도 매개로 노조 탄압

2011년을 전후해 이명박 정부는 약간의 정책 변화를 시도한다. 금융위기가 유럽 채무위기로 떠오르자 경제 연착륙을 고려하면서 사회 전반에서 조정에 나선 것이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을 받아들인 것이 대표 사례라고 할 것이다(물론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의 힘이 더 크게 작용했다). 그러면서 노동을 향해 회심의 카드 두 개를 뽑아들었다. 하나는 ‘복수노조 전면 시행’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시간 단축’이다. ‘노동자의 자유의지’와 ‘일과 가정의 병행’이라는 수사도 등장했다. 그러나 이 또한 기존 노동조합에 대한 공세와 양보를 전제로 하는, 반노동자적인 정책임이 드러나고 만다.

예컨대 기업들은 복수노조 제도를 매개로 노동조합을 사실상 탄압했다. 기업 측이 복수노조 설립을 주도하는가 하면 소수 노조에 대해서는 교섭권 단일화를 명분으로 교섭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민주노총 탈퇴를 조건으로 협상을 ‘허용’하는 경우까지 있다니 무슨 말을 더 할까. 그뿐 아니라 정부는 기업 측의 ‘노동자 공격’을 부추겼다. 유성기업과 SJM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경찰의 비호 아래 컨택터스가 폭력을 휘두르고, 노동부 비호 아래 창조컨설팅이 노조 파괴에 나섰다. 컨택터스와 창조컨설팅 인가를 취소하고, 대표노무사 자격을 3년간 정지하겠다고 정부는 밝혔지만 노조 파업을 불법·불온시하고, 무파업과 협조적 상태만을 ‘선진적’이라고 보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이명박 정부에서 노동시장이 얼마나 엉망이 되었는지 고백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4년 고용노동 정책 주요 성과와 향후 과제’라는 문건에서다. 여기서 고용노동부는 고용 회복 추세에도 불구하고 청년·고령자·여성 등 취약 계층을 위한 일자리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2009년 현재 우리나라의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25.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6.3%보다 9.4%포인트나 높다.

이를 해결하겠다며 고용노동부가 내건 대책이 바로 ‘노동시간 단축’이다. ‘부족한 일자리’와 ‘근로 빈곤’의 이면에 장시간 노동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드디어’ 발견한 것이다. 아주 훌륭한 발견이다. 그래서 노사정위원회는 연간 노동시장 규제방안을 제출했고, 고용노동부와 일각에서는 ‘시간외 노동’을 휴일근로까지 포함해 규제하는 방안도 제출했다. 그런데 이와 함께 나온 ‘대책’이 기가 막힌다. 바로 ‘단시간·임시직의 확대·활용’과 ‘변형근로시간제 확대’다. 노동시간을 줄여서 생기는 일자리를 비정규 일자리로 쓰겠다는 발상이다. ‘기업 프렌들리’만은 버리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경영상 위기는 아니지만 위기를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정리해고가 단행되고 심지어 ‘징계해고보다 정리해고가 더 쉽다’는 탄식이 나오는 상황에서, 노동조건을 더 불안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 대한 추가 지원을 시행한 것은 복지 측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일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정부 지원을 확대했지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가입률이나 적용률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산재보험에 대한 요건과 감시를 강화하면서 노동현장에서 산재보험을 적용받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삼성전자 백혈병 집단 발생과 자동차 사업장 발암물질 검출 등 산업안전을 위협하는 매우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 정부는 거의 모르쇠로 일관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자는 호소가 이제 분노로 치닫는데도 정부는 재벌(삼성)의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다.

최저임금 역대 정권 최저 인상률

최근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지역사회에서 공공의 역할이나 공동체적 기능보다 수익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결국에는 민간자본의 배를 채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직업훈련과 취업지원·알선이 대표적이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하던 일조차 민간으로 위탁하면서 훈련과 알선의 공적 체계는 약해지고 이들 분야에 진출한 민간자본의 배만 불리고 있다. 근로 빈곤,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재정 지원과 일자리 정책도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취업과 창업을 성과지표로 제시하면서 실질적 자립과 자활보다는 성과주의적인 행정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시민사회와 노동조합이 협력해야 할 부분인데, 이조차 민간자본 혹은 기득권층에 위탁하면서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노동복지에서 가장 퇴행적인 부분은 최저임금 제도이다. 올해도 법정 시한을 넘기고서야 가까스로 인상률이 정해졌지만,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계의 반발을 묵살한 채 반쪽짜리 위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최저임금 상승률은 눈에 띄게 하락했다.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이래 이명박 정부(2008~2011년)의 연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5%로 역대 정부 중 가장 낮다.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 역시 유연성과 (비정규) 일자리 확대라는 친기업적 가치를 실현하느라 일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면 똑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인식부터 완전히 바꿔야 한다. 기업이 있어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인식은 이제 사람이 행복해야 기업도 지속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그토록 유연성을 원한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자본(기업)이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시간을 연간 1800시간 이내로 단축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대가 말이다. 그런 대가도 없이 노동에 고통을 전가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체제는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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