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2일 월요일

투표시간 연장 논쟁, 핵심은 국민의 참정권 보장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1-11일자 기사 '투표시간 연장 논쟁, 핵심은 국민의 참정권 보장'을 퍼왔습니다.
[장행훈 칼럼]

투표시간 연장 여부가 대선 막판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그런데 6일 시작된 미국 대통령선거를 보면 30여개 주가 유권자들에게 선거일 10일 내지 20일전 투표를 허용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공화당 후보도 이미 보름 전에 투표를 마쳤다. 대의(代議)민주주의 체제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시간 때문에 자신의 대표를 뽑는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조기(早期)투표제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투표시간을 불과 몇 시간 연장하자는데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가 반대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가 지난달 28일 “투표시간 연장 국민행동”출범식에 참석해서 “국민은 21세기인데 선거시간은 70년대에 멈췄다”고 한 말이 딱 맞다. 우리 헌법은 제24조에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권은 국민주권을 선언하는 헌법 하에서는 국민의 가장 주요한 기본권의 하나이며 타 권리에 비하여 우월적 지위를 갖는 것이다“(김철수 대표집필 (헌법), 212-213쪽). 투표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라는 말이다. 이 권리가 침해되거나 억제받지 않도록 국가가 보장해 줘야 하는 권리다. 

박근혜 후보는 투표시간을 한번 연장하는데 1백억원의 추가비용이 든다며 연장에 반대하고 새누리당은 선거일을 눈앞에 두고 투표일을 바꾸면 갑자기 많은 사람을 서야 하기 때문에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비용이나 사무적인 어려움 탓으로 국민더러 중요한 기본권인 참정권을 포기하라는 말인가?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후보가 어떻게 민주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실정은 유권자가 투표할 의지가 있는데도 직장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투표하러 가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 공휴일인데도 정상 출근한 직장인이 전체의 절반에 달했다. 8백40만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64%가 투표시간 때문에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우리나라 투표율은 경제개발기구(OECD)회원국 평균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위기다. 그렇다면 이 위기를 탈피하기 위해서 투표시간을 우선 2시간만이라도 연장해 보자는 것이 정도일 것 같은데 새누리당과 박근폐 후보는 반대하고 있다.

솔직히 이유는 빤하다. 박근혜 후보의 지지층인 보수 고령자들은 항상 투표율이 높다. 진보 쪽 후보를 찍을 위험이 없는 “충실한” 유권자들이다. 투표율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투표율을 올리자는 말은 젊은 2030층을 겨냥한 것인데 이들은 대다수가 야당 후보 지지자들이다. 투표권이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라는 말은 박 후보에게는 실익이 없는 공허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반대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새누리당의 사촌뻘 되는 공화당이 비슷한 행태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박빙의 득표차로 승패가 결정나는 스윙 스테이트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오하이오주(州) 공화당정부의 행동이 대표적이다.  오하이오주는 2004년 대선 때 너무 많은 투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 긴 줄을 서야 했고 그래서 무수한 사람들이 투표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건이 벌어졌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선거일 전 3일간 투표를 할 수 있는 조기투표제를 도입하게 됐다. 그 덕에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오바마가 오하이오주 선거인단 18표를 확보해 백악관의 주인이 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 때문인지 주 정부와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은 금년 초 선거법을 개정했다. 군인과 그 가족은 종전처럼 선거일 3일간 조기투표를 할 수 있으나 일반유권자에게는 조기투표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오바마 재선선거운동본부와 민주당이 이 조치가 “참정권은 모든 유권자에게 동등하게 허용해야 한다”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연방지방법원에 그 무효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법원이 오바마 쪽 주장을 수용했다. 피터 이코노머스 판사는 “시민은 다른 시민과 동등한 기초 위에서 헌법적으로 보장된 선거권을 갖는다”고 판결했다. 투표권이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라는 것을 연방법원이 확인해 준 판결이었다. 연방고등법원의 판결도 같았다.

미국 언론은 공화당정부가 조기투표법을 개정한 동기 자체를 순수하게 보지 않았다. 군인가족은 공화당 성향이지만 조기투표에서 배제된 일반유권자는 주로 빈곤층 흑인 소수민족 고령층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투표 참여는 민주당에 유리하고 공화당에는 불리한 것이다. 그래서 조기투표법을 개정했으리라는 것이다. 존 허스테드 국무장관은 10월9일 마침내 사건을 연방대법원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미국 최고법원도 “조기투표(차별적으로 인정한 조치)를 인정해 달라는 신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한 문장으로 각하해버렸다. 

선거법 전문가인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의 리차드 헤이슨 교수는 “법원의 결정이 백악관의 주인공이 누가 될 것인지 결정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 전망했다. 투표율은 미국 정치에서도 꼼수의 대상이고 대통령의 당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미국법원은 투표권이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우리가 투표시간 연장을 다룰 때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교훈이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 hap36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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