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1-02일자 기사 '[김종철 칼럼]남녀평등을 부정하는 새누리당의 흑백논리'를 퍼왔습니다.
[김종철 칼럼]남녀평등을 부정하는 새누리당의 흑백논리
요즈음 ‘여성대통령론’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떠들썩하다. 새누리당이 지난 10월 하순부터 적극적으로 띄우기 시작한 주장 때문이다. 그 당의 총괄선거대책본부장 김무성은 10월 31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선대본부 회의에서 “한국에서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탄생한다는 가장 큰 의미는 정치 쇄신”이라며 “최근 야당이 제기한 여성대통령 논란은 여성을 기존 통념에 집어넣는 성차별적 발상이고 흑백논리”라고 비판했다. 민주통합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여성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11월 1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후보는 여성을 비롯한 약자들을 살리고 포용하는 삶을 살지 않았고, 그런 투쟁의 현장에도 있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여성대통령론'을 강조하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
새누리당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여성대통령이야 말로 ‘구세주(메시아)’가 되리라는 듯이 홍보를 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1948년 8월 15일 이래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은 모두가 남성이었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 가운데 박정희는 새누리당의 ‘원조’인 민주공화당을 만든 사람이고,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노태우의 민주자유당, 김영삼의 신한국당은 그 정당의 인적 기반을 고스라니 이어받은 집단들이었다. 현직 대통령 역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후보로 17대 대선에서 당선되었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남성대통령들이 집권하던 시기에 국정 운영을 잘못해서 오늘날 나라가 이 모양이 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김무성은 2002년 7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이회창의 비서실장이던 때 한 발언을 까맣게 잊어버렸는가? 그는 김대중 정부가 이화여대 총장 출신인 여성 장상을 국무총리로 임명하려고 하던 무렵 “국방을 잘 모르는 여성이 중책을 맡을 수 있겠느냐”며 반대했다. 그런데 요즈음 그가 ‘여성대통령’으로 당선시키려는 박근혜는 국방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2007년 대통령선거 때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몰아붙이면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보수정당이 다시 정권을 찾아간 이래 4년 8개월 동안 나라는 어떻게 되었는가? 대통령 자신이 ‘내곡동 사저’ 의혹을 비롯한 갖은 추문에 휩싸이고 그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경쟁하듯이 사법처리 당한 일들이 모두 ‘남성대통령’ 탓일까? 그 기간에 집권당 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박근혜는 오늘날 나라가 부정·부패의 수렁에 빠지고 사회적 약자들이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와 차별에 시달리고 있는 데 대해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말인가?
나는 ‘여성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거나 ‘여성은 남성보다 정치적 식견이나 행정 능력이 모자라서 국정을 책임질 수 없다’는 뜻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도 통합진보당의 이정희도 진보정의당의 심상정도 유권자 다수가 인정하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혜라는 여성이 대통령이 되어야만 노르웨이, 핀란드, 아일랜드처럼 ‘탄탄한 복지제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새누리당 총괄선대위원장의 주장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근자에 경제가 어려워진 아일랜드를 제외하고, 노르웨이와 핀란드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국정책임자와 정당, 그리고 국민들이 힘을 모아 ‘선진적 복지체제’를 이룬 것이지 ‘걸출한 여성’ 혼자서 그런 업적을 낳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물며 새누리당 대선 후보 박근혜는 여성이기 이전에 어떤 인물인가? 그는 박정희의 집권 후반기인 1974년 8월부터 1979년 10월까지 ‘퍼스트레이디’라는 공식 직함을 가지고 일하면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은 물론이고 정치적으로 탄압받고 경제적으로 수탈을 당하던 국민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난 8월 새누리당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뒤에야 1975년 4월 ‘사법살인’을 당한 인혁당 사람들의 아내들과 자녀들을 찾아가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1970년 11월 박정희 정권의 야만적 노동정책과 참혹한 노동현실에 항의하면서 스스로 몸을 불사른 전태일의 어머니가 살아 있던 때 단 한 번도 위로의 말을 전하지 않았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소선 어머니’가 41년 동안 가슴에 품은 한을 여성으로서 어루만지려고 한 적이 없는 박근혜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100% 국민대통합’을 이루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 대다수를 외면하는 국민대통합이란 허황한 구호에 불과하다.
박근혜가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되려면 사랑과 관심을 쏟아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부터 명확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최근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문재인과 무소속 후보 안철수가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투표시간 연장을 막무가내로 반대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 캠프의 공보단장 이정현은 지난 10월 30일 오전 “지구상 230여 개 나라 중에서 투표일을 공휴일로 지정해서 투표율을 높이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박근혜도 그날 오후에 열린 ‘100만 정보방송통신인과 함께하는 초청 간담회’에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중앙선관위 공보과 주무관은 “필리핀은 선거 때마다 선거일 이전 2개월 전에 대통령령으로 ‘이번에 실시하는 선거는 특별공휴일로 선언한다’고 지정·공고한다”고 밝혔다. 박근혜가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투표 시간 연장에 기꺼이 동의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시급을 받고 일하는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성 가운데 밤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은 오후 6시 이전에 투표장에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요한 대통령선거에서 자신의 한 표가 사표(死票)가 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의 초점이 ‘여성이냐 남성이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 뒷걸음질을 거듭한 민주주의와 서민경제를 소생시키고, 파탄에 빠진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며, 비인간적 경쟁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들이 줄을 잇는 교육현장을 ‘인간화’할 수 있는 후보가 누구인지를 가려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박근혜 여성대통령론’은 이런 점을 도외시한 채 지금은 여성이 대통령이 되어야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황당한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경쟁자인 남성 후보들을 얕잡아보고 비하하는 차별론인 동시에 흑백논리일 뿐이다.
김종철(언론인) |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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