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1일 수요일

전두환 '사면'과 '용서'는 정당한 것이었나?


이글은 미디어스 2012-11-20일자 기사 '전두환 '사면'과 '용서'는 정당한 것이었나?'를 퍼왔습니다.
[법으로 본 미디어]영화 '26년'으로 본 '사면'과 '용서'의 권리

때로는 따뜻하게 우리의 마음을 파고들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때로는 우리 사회의 부끄럽고 어두운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만화가 강풀. 그의 만화 (26년)이 영화로 제작되어 11월 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만화는 1980년 5·18로 인해 아버지, 어머니를 잃고 한스러운 세월을 보내야 했던 주인공들이 5.18의 주범인 전두환이 재판을 받고도 사면되자 힘을 모아 전두환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 11월 29일 개봉하는 영화 '26년' 포스터. 한혜진, 진구, 임슬옹, 배수빈, 이경영 등이 출연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 역할은 배우 장광이 맡았다.

우리는 만화 (26년)의 5·18항쟁이 뿐만 아니라 친일파, 제주 4·3 사건, 군부독재 등 청산해야 할 과거사가 유난히 많다. 그러나 청산을 제대로 논하기 전에 늘 ‘용서와 화해’라는 관용이 목소리가 우위를 점하며 과거사 청산은 매번 꼬리를 내리곤 했다. 만화 (26년)의 상황 또한 마찬가지였다.
만화 (26년) 주인공들의 울분을 치솟게 했던 사면은 국가원수가 자신의 권한으로 범죄인이 받은 형벌 전부 또는 일부를 면제하거나 형벌로 상실된 자격을 회복시켜 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의 경우도 사면으로 형 선고 효력을 상실시키는 경우, 형의 집행만을 감면시키는 경우, 복권하는 경우 등을 사면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범죄인에 자비를 베푸는 사면은 얼핏 ‘용서, 관용’이라는 선의의 실천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사면에는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소가 존재한다. 군주국가시대 군주가 제왕적 특권을 행사하여 죄인에게 자비 베풀던 제도가 사면의 기원이다. 권력자가 백성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권력자가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하는 시혜적 행위라는 점에서는 법치주의를 지향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다지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근대 시민혁명을 통해 일궈낸 민주주의는 ‘절대왕정’이라는 세습 독재 권력을 힘겹게 몰아낸 끝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1인에게 집중된 권력구조에서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삼권으로 권력을 나누고 삼권이 서로 감시하고 통제하도록 했다.
복지국가를 이상 모델로 삼고 있는 현대국가에서는 위와 같은 엄격한 삼권 분립제도가 행정부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나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범위 내에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한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사법부가 공정한 재판을 거쳐 피고인에게 내린 형벌을 행정부 또는 대통령이 함부로 면제하거나 감형하는 사면제도는 사법부의 결정을 뒤엎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민주주의 원리에 반할 소지가 많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한동안 사면제도 자체를 폐지한 적도 있다.
형사정책상 피고인이 충분한 반성을 하고 사회 일원으로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했음에도 계속해서 피고인에게 형벌의 족쇄를 채워 두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일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지역, 이념, 계층 간 갈등으로 사회가 분열되어 있는 경우, 갈등을 봉합하고 한 국가, 한 민족의 일원이라는 일체감을 되살리기 위해서 사면제도가 필요한 때도 분명 존재한다. 이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면제도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아직도 많은 이들은 그를 '학살자'라고 부른다. 그러한 평가 이전에 그는 진정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적이 없다. 그에 대한 사면은 정당한 것이었을까? ⓒ뉴스1

그러나 이러한 사면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사면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광복절을 비롯한 각종 경축일, 정권 교체 기념으로 대통령이 자주 사면 시행하는 우리와 달리 같은 대륙법계인 독일은 사면에 대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 1945년부터 2005년까지 약 60년 동안 단 4차례만 사면을 단행했다.
선진 법치국가인 핀란드는 헌법에 “대통령은 특별한 경우 대법원에 자문해 사면해야 한다”는 조항을 뒀을 정도로 사면제도를 인정하되 행정부가 사법부의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사면 제도는 눈여겨 볼만하다. 프랑스 또한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데 특히 부정부패 공직자와 선거법 위반 사범, 테러와 정치적 차별을 저지른 사람, 15세 미만 미성년자를 때린 폭행범, 마약·밀수 사범, 불법낙태 사범 등과 같이 국가와 사회의 기본가치를 침해한 범법자들에 대해선 사면·복권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처럼 오늘날 사면 제도는 필요성이 인정되어 존치하고 있지만 권력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매우 제한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사면법을 보면 사면절차가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등 전반적으로 행정부에서 주도하여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통령이 이를 남용할 경우 이를 제한할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만화 (26년)의 상황처럼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정치적인 사면권 행사할 때 이를 저지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내란죄의 범인으로서 수많은 국민의 목숨을 빼앗은 전두환과 같은 자가 너무도 쉽게 사면될 수 있는 것이다.
전두환을 비롯한 5·18 관련 당사자들을 법정에 세우는 일은 특별법을 별도로 제정해야 할 정도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법조인, 재야인사, 국민들의 염원과 노력으로 겨우 이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었고 마침내 사법부의 공정한 재판 아래 그들이 저지른 과거를 제대로 청산할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그들의 범죄, 그들의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여 그들이 국민으로부터 불법적으로 취득한 재산을 환수하기도 전에 ‘화해와 용서’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에 대한 법원 판결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그들은 ‘용서’ 받았다. 그러나 묻고 싶다. 그들을 용서할 권리는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우리는 사면을 대통령의 특권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원리에 반하는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은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여 문민정부에서는 8차례, 국민의 정부에서는 6차례, 참여정부에서 7차례(2007년 기준)나 사면법 개정 논의가 있었으나 번번이 무산되었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만화 (26년)의 전두환처럼 이러한 정치적 사면의 대상자들이 과연 사면 받을 자격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국가와 사회의 기본가치를 침해한 자들로서 프랑스법에 의하면 사면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그에 앞서 정치적 사면을 받은 자들이 피해자가, 대통령이 자비를 베풀어야 할 만큼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 송혜교가 주연을 맡았던 이정향 감독의 2011년작 '오늘', 너무 쉽게 용서해서 미안해...란 카피가 인상적이다.

송혜교 주연의 (오늘)이라는 영화를 보면, 진정한 ‘용서’는 용서하는 자, 용서받을 자 모두가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향해 다가서려고 노력할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모가 아이의 잘못을 용서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용서는 용서받을 자가 스스로 철저하게 자신의 과오를 반성한 다음 용서할 사람에게 눈물로써 간절히 용서를 구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용서’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우리의 ‘사면’은 용서받을 자의 이러한 뉘우침과 반성이 있었는지, 그들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권리자인 피해자에게 눈물로써 용서를 먼저 구한 적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용서받을 자로부터 철저한 반성도, 진심어린 호소도 없었던 과거사에 얽힌 사면을 반대한다.  

성춘일 변호사는 제51회 사법시험을 합격, 41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현재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41기 동료 여성변호사들과 함께 설립한 합동법률사무소 여송에서 일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사법위원회와 민생경제위원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아 청소년폭력예방재단과 서울변협이 함께 하는 청소녀지킴이 변호사단 상담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성춘일 변호사 / 합동법률사무소 여송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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