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IN 2012-11-07일자 기사 '충신 필립, 효자 시형'을 퍼왔습니다.
MB 5년,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의 권세가들은 아직까지 삼강오륜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뭇 백성들이 모두 본보기로 삼더라. 그중에서도 특히 ‘군신유의’와 ‘부자유친’의 덕이 두텁다 하였다.
제一장 군신유의(君臣有義): 필립 공은 유신(維新) 왕국의 충실한 가신이라. 선왕이 남긴 재산 정수성을 지켜 유년에 부모를 잃은 가녀린 후계자 ‘아 그네 스’ 공주를 보필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었다. 30년 수상한 세월이 흘러, 유신 왕국의 부활이 눈앞에 다가오던 시점이었다. 공주를 반대하는 자들이 그간 필립 공이 지켜온 성의 기원과 명분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공주와의 연(緣)을 부인하며 필립 공 혼자 온몸으로 공격을 받아내며 버텼지만 세인들 의심은 나날이 짙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공주님의 왕궁행 여정에 노잣돈을 보태드리려던 계획이 탄로 난 필립 공은 크나큰 궁지에 몰렸다. 세속을 버리고 초야로 들어갈 것을 권하는 공주의 명마저 어기고 필립 공은 끝까지 성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한번 섬긴 군주와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고 뭇 백성들 모두 눈물겹다 하더라.
제二장 부자유친(父子有親): 제17대 대통령 이명박과 그의 자(子) 시형 군 사이의 정(情)은 예부터 모르는 자가 없었다. 서방의 아란타(阿蘭陀)국에서 건너온 축구 무인(武人) 히딩크 장수를 영접하는 자리에도 그를 흠모하던 아들을 위해 친히 자리를 마련해줬다는 설화, 시형 군이 부친을 위해 무거운 엽전 꾸러미를 이고 경주에서 한성까지 500리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렸다는 풍설이 특히 널리 퍼졌더라.
재임 말기 사헌부(司憲府)가 감찰하던 ‘내곡동 사저’ 사건의 진상이 오리무중(五里霧中)인 속에서도 부자유친의 도덕만은 널리 칭송받았다. 백성들이 당시 유행하던 민요 가락 ‘아빠와 아들’에 노랫말을 얹어 불렀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아빠: 아들, 우리 이사 갈까?
아들: 무슨 돈으로?
아빠: 큰아버지한테 빌려와.
아들: 심부름 잘하면 나한테 물려줘?
아빠: 검찰에 물어보고.
뚜비뚜바~뚜비뚜바~뚜비뚜바~”
변진경 기자 | alm242@sisain.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