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일 금요일

언론의 정치 편향보다 더 무서운 건 '정치의 분리'


이글은 미디어스 2012-11-01일자 기사 '언론의 정치 편향보다 더 무서운 건 '정치의 분리''를 퍼왔습니다.
[대선보도, 비평으로 뚫다] 삶에서 분리된 정치와 언론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대통령 선거와 같은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보도에는 늘 객관성, 공정성 논란이 따라다닌다. 저널리즘의 객관성을 말할 때마다 전통적으로 언급되어 온 것들은 웨스터슈탈(J. Westerstahl)이 말한 4가지 요소, 즉 진실성, 관련성, 균형성, 중립성이었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은 언론이 지켜야 할 규범적인 태도이지 정치라는 장(field)에서 언론이 처한 존재론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규범 자체의 기계적 준수가 언론에게 또 다른 정치적 행위자로서의 의도와 영향력을 은폐하거나 면죄부를 줄 때이다.

정치적 행위자로서의 언론

▲ 영화 트루먼쇼

객관성이란 말과 같은 어원을 갖는 대상화(objectification)를 떠올리면 알 수 있듯, 언론의 객관성이란 언론을 정치적 사안에서부터 일상의 사소한 일까지 벌어지는 우리 삶의 장으로부터 냉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존재임을 전제하고 있다. 여기에 걸맞는 가장 이상적인 언론의 처소는 아마도 영화 에 나온 ‘루나 방송국’처럼 달나라가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언론이 냉정한 자리를 유지해야 하는 토론회의 사회를 볼 때조차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단순히 특정한 정파와의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함만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언론의 정치적 영향력은 정치적 동기라기보다 시장 경쟁의 장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경제적 동기에서 비롯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정치적 행위자로서의 언론이란 존재를 인정한다면, 문제는 언론의 정치적 영향력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행해져야 하는가의 물음이다.

2007년과 지금, 대선보도의 과잉?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해 보자. 요즘 황망하기 그지없는 대선관련 TV 뉴스를 보노라면 지난 2007년 대선에는 어땠는가가 궁금해진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지난 일주일 간(10월 23일~10월 30일)의 방송 3사 뉴스와 같은 기간 2007년 방송 3사의 대선 관련 뉴스보도 횟수를 비교해 봤다. 여기에 관련 보도의 중요성을 어떻게 부여했는지 보기 위해 상위 아이템 10건 안에 포함된 대선 관련 아이템의 수를 별도로 구분해 보았다.

▲ 괄호 안의 숫자는 상위 리포트 10건 안에 포함된 대선관련 리포트의 횟수

단지 일주일간의 보도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기간에 앞서 정수장학회와 NLL 관련 보도가 수없이 쏟아져 나왔음을 염두에 두면 올해 대선관련 보도는 언론 스스로가 상당한 우선 순위를 두며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07년 당시 74건의 아이템 중 상위 10위에 포함된 대선 아이템은 43개였지만, 올해 같은 기간 동안에는 70건 중에 57건이 상위 10위에 포함되고 있다. 이를 두고 대선 관련 보도의 ‘과잉’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MBC는 예외다). 그러나 2007년 대선 당시 이맘때 즈음 방송 3사 모두 대선 보도보다 더 중요하게 다룬 아이템은 전군표 국세청장 뇌물수수사건, 이라크 파병 연장 논란, 고유가 등의 이슈였다. 지금은 어떤가. 대선 관련 이슈 이외에 일주일 동안 일관되게 강조된 아이템은 전무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 10월 31일 KBS 9시뉴스와 SBS 8뉴스 헤드라인

삶에서 분리된 정치와 언론

대선과 같은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언론의 집중된 보도는 역설적으로 ‘정치적인 것’의 범위를 지극히 협소하게 만든다. 특히 대선 관련 뉴스가 정치인들의 행보와 공방에만 초점을 맞출 때 우리 삶의 문제 중 정치와 연관된 많은 사안들은 유보되고 잊혀 진다. 구미 불산 유출 사건과 같은 공동체의 위기나 현대차 비정규직, 콜텍 노동자들의 해고 합헌 판결 등 사회의 다양한 요구들이 분출하는 장은 어느새 사회문제, 노동문제만으로 치부되고 정치는 이에 관심을 둘지언정 누가 당선될 것인지의 문제보다는 나중의 순위로 미뤄진다. 흔히 말하는 정치적 무관심, 냉담함이란 바로 이런 정치적인 것의 범주를 정하고 우리 삶의 많은 문제들과 분리시킬 때 벌어진다. 언론의 정치적 편향보다 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바로 이런 정치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분리에 있는 셈이다.
결국 정치적 행위자로서의 언론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공공성을 위한 언론의 보도란 단순한 객관성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제도정치의 가장 큰 이벤트가 벌어지는 대선과 같은 시기에 우리 삶의 어떤 문제들이 정치로 풀어갈 수 있는지의 요구와, 그런 문제들을 지금의 정치가 감당할 수 있는지의 물음을 던지는 보다 적극적인 개입(engagement)이 바로 언론의 공적 역할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2007년과 2012년, 단지 5년 사이에 우리 언론의 공적 역할은 얼마나 나아졌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아니, 질문을 달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언론의 공적 역할은 얼마나 빈곤해 졌는가로 말이다.

김동원 /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  |  media@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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