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IN 2012-11-20일자 기사 '안철수의 정치력, 또 한번 시험대에'를 퍼왔습니다.
안철수 후보의 정치력은 늘 진화했다. 야권 단일화에 대한 피로감이 생길 무렵, 안 후보가 나서서 흐름을 주도했다. 그러나 단일화 협상 중단에 대한 피로감은 심각하다. 그는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야권 후보 단일화와 관련한 박근혜 캠프의 기본 전략은 이랬다.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가 되면 ‘친노 프레임’으로 깨고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가 되면 ‘정치 아마추어 프레임’으로 깬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에 대한 이 ‘정치 아마추어 프레임’이 먹힐지는 의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하면서 대선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한 안 후보는 1년 이상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으로 정치력을 증명했다.
도 안 후보의 정치력은 인정했다. 11월7일자 “‘정치 고수’ 안철수”라는 제목의 데스크칼럼(신정록 정치부 부장대우)에서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대선 후보 중 존재감으로 치면 안철수가 단연 1등인 것 같다. 후보 단일화가 급한 문재인은 안철수로부터 ‘구체제’ ‘기득권’으로 몰리면서도 제대로 항변조차 못했다. 박근혜는 이슈의 블랙홀인 단일화에 포박당해 다른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시중의 화제는 단연 안철수다”라고 평가했다.

ⓒ뉴시스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10월7일 정책 비전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타이밍 좋게 여론을 유리하도록 만들어
안 후보의 정치력에 대한 정치평론가들의 평가도 대체로 일치한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콘텐츠는 준비가 덜 되었지만 정치력은 생각보다 노회하다. 타이밍을 잡는 감각, 기선 싸움, 어젠다 세팅 능력, 여론을 유리하게 만드는 기술이 상당히 좋다”라고 평가했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이철희 소장은 “기존 정치 문법으로 보면 아마추어로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의외로 강단을 갖고 자기중심을 잘 지키고 있다. 특히 타이밍 감각이 좋다. 과거 제3후보의 거품 인기와 비교하면 상당히 양호하다”라고 분석했다.
일선 정치부 기자들도 안철수 후보가 ‘정치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것 같다’라고 평가한다. 학습능력이 좋은 안 후보가 정치도 빨리 배웠다는 것이다. ‘마크맨’ 기자는 결혼식까지 찾아다니며 챙기고, 기자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친근감을 표시하는 등 ‘감성정치’에도 능하다는 것이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라거나 “건너온 다리를 불태워버렸다” 같은 감성적인 표현으로 지지자를 들뜨게 만들 줄도 아는 그를 더 이상 정치 초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처럼 안철수 후보의 정치력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건 대체로 11월5일 전남대 강연에서 단일화를 예고하고 11월6일 문재인 후보와 만나 단일화에 합의하면서다. 당초 11월10일 공약을 발표하고 이후에 단일화 관련 협의를 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안 후보에 대한 ‘피로증’이 점점 높아가던 차였다. 그런데 안 후보가 전격적으로 단일화 일정을 앞당기면서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했고, 이후 모두 안 후보 입만 바라보는 형국이 되었다.
이즈음 정세는 야권 후보 단일화의 분수령이 될 호남 민심이 안철수 후보 쪽에서 문재인 후보 쪽으로 옮아가는 상황이었다. 안 후보의 단일화 선언은 이 쏠림을 막고 계속해서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노림수로 읽혔다. 안 후보는 정책 협상이나 단일화 규칙 협상과 별개로 새정치공동선언을 한다는 조건을 앞세워 ‘안철수식 정치쇄신을 받아들인 민주당과 연합한다’라는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갔다.
11월5일 이후 문재인 캠프에서는 ‘안철수의 생각’을 읽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11월6일 단일화를 위한 문재인·안철수 단독 면담 현장에서 만난 문재인 후보의 한 측근은 “사전 조율 없이 두 후보가 바로 만나자고 제의해서 당황했다. 이런 것이 CEO형 리더십인가 싶었다. 계약 당사자인 대표끼리 만나서 결정하면 되니 아랫사람들이 만나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CEO형 리더십’이 여론시장의 흐름을 읽는 탁월한 ‘타이밍 감각’으로 연결되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놓는다. 안 후보는 특히 상대방이 주목받을 시점에 큰 이슈를 제기해 관심을 빼앗아오는 데 능하다. 트윗양·검색량 등 ‘빅데이터’ 자료를 보면 안 후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폭발했던 시기가 7월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하고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되었을 때, 8월 ‘안철수 룸살롱 출입 논란’이 불거졌을 때, 9월 초 ‘안철수 사퇴 압박’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리고 9월 중순 출마선언을 했을 때와 9월 말 ‘부동산 다운계약서 의혹’과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다.

ⓒ안철수연구소 제공 안철수연구소 대표 시절의 안철수 후보. 전문가들은 안 후보의 CEO형 리더십이 여론시장의 흐름을 읽는 데 탁월하게 연결된다고 평가한다.
문재인 캠프에서는 이 가운데 안철수 후보 측이 시점을 결정할 수 있었던 이슈의 경우에는 은근히 문 후보를 견제하는 카드로 활용했다고 불평한다. 안 후보가 방송에 출연하고 책을 출간한 시점은 문 후보 지지율이 반등하던 시점이었고, 새누리당 정준길 공보위원의 사퇴 압박을 폭로한 시점은 문 후보가 민주통합당 광주 경선에서 승리하던 시점이었으나 관심이 안 후보에게 쏠려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민주통합당 경선에 승리해 수락 연설을 한 것이 9월16일인데 사흘 후인 9월19일 안 후보가 출마선언을 해서 문 후보가 ‘컨벤션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는 것도 문 캠프의 불만이다. 문재인 캠프에서는 이런 안 후보 측의 보이지 않는 견제가 ‘문재인 주저앉히기’라고 의심한다.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압도하기 위해 문 후보가 주장하는 ‘정권교체 프레임’과 차별화되는 ‘정치교체 프레임’을 내세웠다. 이 프레임은 단일화 협상에 나설 때도 최우선에 두어 ‘새정치공동선언’을 협상의 중심으로 삼았고, 단일화 협상을 잠정 중단할 때도 구실로 내세운 것은 바로 구태정치 청산이었다.
‘새정치’를 위해 안철수 캠프에서 내놓은 ‘국회의원 정수 100명 줄이기’ 등의 정치 쇄신안은 정치학자와 언론으로부터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의 결합’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안철수 캠프는 전문가 평가와 달리 일반 국민은 자신들의 쇄신안을 지지한다며 버텼다. 그리고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곤 했다.
안철수 후보가 남긴 두 가지 피로감
정치권의 셈법이나 언론의 평가에 구속받지 않고 국민만 바라보며 달리는 안철수식 정치는 그동안 유효했다. 지지율은 유지되었고 안 후보는 정국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안 후보가 단일화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가 협상 중단을 반복하는 와중에 오히려 기반이 흔들리는 모양새다(24쪽 기사 참조).
역대 대선에서 11월은 제3후보의 무덤이었다. 200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 후보가, 1997년 대선에서 이인제 후보가 11월에 대세 하락을 경험했다. 선거가 가까워 올수록 제3후보의 지지율은 빠지고 거대 양당 후보에게 지지율이 쏠렸다.
세간의 관심은 그래서 11월 들어 흔들리는 안 후보 지지율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역대 대선에서 나타난 ‘계절풍’의 영향력이 재현되는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안철수 후보는 지지자들에게 두 가지 피로감을 안겼다. 하나는 출마에 대한 피로감이다. 많은 지지자들이 그의 출마선언을 기다렸지만 그는 총선에도 개입하지 않다가 새누리당 경선과 민주통합당 경선이 끝난 9월19일에야 출마선언을 했다. 다음은 단일화 피로감이다. 야권 지지자들이 단일화 협상에 나설 것을 종용했지만 안 후보는 11월5일에야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두 가지 피로감은 그가 출마선언을 함으로써, 단일화 협상에 나섬으로써 해소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일화 협상 중단에 대한 피로감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 이 피로감은 시간이 갈수록 강도가 더해지고 재협상에 나선다고 해서 완벽히 해소되기도 힘들다. 안철수 캠프도 이 때문인지 단일화 협상 중단 선언 이후 분주히 움직였다. 11월14일 잠정 중단을 선언한 안 후보가 15일 오전 기자들과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한겨레) (경향신문) (중앙일보)와 연속으로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16일에도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후보 측이 당 혁신에 대한 의지를 보이면 만나겠다”라며 ‘선 민주당 혁신, 후 후보 회동’을 제안했다. 협상 중단을 선언하고도 이슈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동분서주한 셈이다.

ⓒ뉴시스 11월6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왼쪽)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오른쪽)가 서울광장에서 열린 전국 수산인 한마음 대회에 참석했다.
야권 지지자들 냉소적 반응 더 많아
그러나 무난하고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단일화를 원했던 야권 지지자들은 상당히 뿔이 난 분위기다. 트위터에서는 안 후보에 대해 ‘떼 부리는 부잣집 막내 도련님 같다’고 비난하는 식의 냉소적인 반응이 더 많이 올라온다. 안철수 캠프에서 “겉의 말과 속의 행동이 다르다”라며 문재인 후보의 ‘큰형님 리더십’을 공격하고 있지만,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문재인 후보는 오히려 ‘받아주기만 하는 큰형님’ 이미지에 ‘엄한 큰형님’ 이미지를 더 얹었다. 11월16일 오마이뉴스의 인터넷 생방송 인터뷰에 나온 문재인 후보는 “백원우 전 의원이 (안 후보 쪽 협상팀 멤버인) 이태규 미래기획실장의 선거공보물(아래 상자 기사 참조)에 대해 비판한 페이스북 문제도 즉각 해결했고, (전 청와대 비서관인) 윤건영씨가 협상팀에 배석하는 데 대해 친노라는 문제 제기가 있다고 해서 그 부분도 배석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했다. 김기식 의원이 합의 안 된 내용을 말했다고 해서 그것도 조치를 취했다. 다 된 거다”라며 엄하게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캠프는 안철수 캠프에서 문제 제기한 부분은 다 조치했으니 민주당을 구태정치로 모는 것은 중단하라고 맞서고 있다.
문 캠프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 지지층의 위기의식이 작동하고 있다. 40대, 화이트칼라, 호남. 이 계층에서 추세가 상당히 좋다. 문재인과 안철수를 왔다 갔다 하는 스윙층(부동층)도 움직이고 있다. 광주 20∼30대에 강고한 지지층이 버티고는 있지만 호남도 이제 거의 넘어왔다”라고 기대 섞인 분석을 내놓았다. 조만간 단일화 잠정중단 사태에 대한 민심이 담긴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정국은 더욱 요동칠 것이다.
고재열·장일호·김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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