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11-22일자 기사 '그가 새누리당사 앞에서장준하 유골 전시한 이유'를 퍼왔습니다.

ⓒ이승빈 기자 조각가 오종선은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중앙당사 앞에서 故장준하 선생의 유골을 주제로 '장준하전'을 열었다.
유신시절 실족사로 알려진 故 장준하 선생에 대한 검시가 37년 만에 이뤄졌다. 명백한 타살이었다. 하지만 당시 장준하 선생의 죽음은 갖가지 의혹만 남긴 채 실족사로 정리되고 말았다. 장준하 선생은 1960년대부터 1975년까지 37번의 체포와 9번의 투옥을 무릅쓰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싸웠던 정치 라이벌이었다.
새누리당사 앞에서는 장준하 선생의 두개골을 전시하는 '장준하전'이 열렸다. 장준하 선생 의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오종선 작가(45)가 마련한 거리 전시회였다. 오 작가가 실제 유골의 120% 크기로 형상화시킨 장준하 선생의 두개골은 과연 다가올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 까. 장준하전을 마련한 오종선 작가를 만나 그의 예술관을 들어보았다.
“제 관심은 세상에 있다. 미술이 할 역할이 아주 많다고 본다”
오종선 작가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사건은 2007년 대선 하루전날 일간지 1면을 장식한 '떡값전' 퍼포먼스다. 이 퍼포먼스는 2.5톤 화물차 8대가 인쇄된 만원 지폐를 짐칸에 붙이고 서울 전역을 순회한 뒤 검찰청 앞에 집결하는 행사. 그는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삼성 비자금의 검찰수수 사건을 풍자하기 위해 이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오종선 작가 오종선 작가 떡값 전
오종선 작가의 현실 참여활동은 미디어법 개정논란이 뜨거웠던 2009년 '민심전'으로 이어졌다. 오 작가의 3번째 개인전인 '민심전'은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대한 의견을 시민들이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보내면 그 내용이 그대로 출력되도록 하는 이색 퍼포먼스였다.
시민들은 "제발 미디어악법 꼭 막아냅시다. 우리의 미래를 이탈리아나 멕시코처럼 만들지 맙시다","언론악법 날치기 절대무효!","미디어 악법 완전 철폐" 등 자신들의 의견을 그대로 전했다.
이밖에도 그는 여러 동료들과 함께 각종 집회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동료들이 많지 않아 주로 홀로 작업을 해왔다. 미술을 통해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미술을 통해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말할 수는 없었다. 아름다움만을 추구해서는 세상에 도움이 안된다. 내 관심은 세상에 있다. 미술이 할 역할이 아주 많다고 본다. 아무도 하지 않기에 즐겁다. 남이 안하는 짓은 좀 더 즐겁다."
조선대 이철규 열사의 익사체 사진 한장이 엄청난 영향
오종선 작가가 사회참여적인 작품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이철규 열사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으로 수배를 받던 이철규 열사가 광주 수원지 상류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뒤 흉측하게 일그러진 그의 얼굴 사진이 광주 시내 곳곳에 나붙었다. 이철규 열사의 몸에서 수갑을 채운 흔적이 발견돼 수사당국의 고문, 치사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이철규 열사의 시신 사진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후 그는 다양하면서도 기상천외한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화염병을 오브제로 사용해보기도 하는 '눈에 띄는' 학생이 됐다.
그는 4학년 때 소주병 60개에 천을 꽂아둔 설치작품을 구상한 적이 있다. 제목은 '꽃들'이었다. 2학기 전 작품으로 내 놓았지만 막상 당일 작품이 없어져 버리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전시회 전날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긴 누군가가 치워버렸던 것이다. 오 작가는 "작품을 철거한다는 것은 폭력적이다"며 억울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홍익대 대학원에 진학해 '참흙'이라는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91년 강경대 열사의 죽음으로 분신정국이 도래했을 때는 강경대 부조 작업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후 그는 97년 제2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통일미술제- 518묘역'에도 작품을 출품했다.

ⓒ이승빈 기자 조각가 오종선
이정희 대선후보의 남편인 심재환 변호사와의 인연은?
오종선 작가는 대학졸업 후 매향리 미군기지를 반대하는 내용의 작업을 했다. 80kg짜리 화장실 모형을 통해 가장 사적인 공간조차 미군의 눈에 노출되어있다는 의미를 표현했다. 2000년 통일미술제 매향리전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도 순회전시를 하다 철거당하는 불운을 맞아야 했다. 한 아파트에 보관해 놓았던 작품을 보고 경비가 경찰서에 신고를 한 것이다. 당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 승소하기도 했지만 스스로가 생각해도 잘 만들었던 예술작품은 손에 쥘 수 없었다.
2년간의 소송기간 동안 오종선 작가는 심재환 변호사의 도움을 얻게 됐다. 이때의 인연을 계기로 오종선 작가는 2007년 대선정국에서 떡값전을 열 때도 심재환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학생 때부터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가'를 고민해왔던 오종선 작가는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죽은 아이를 껴안는 장면을 작품으로 형상화 시킨 적도 있다.
“미술가들도 정치와 사회를 공부해야”
2005년에는 제1회 개인전 '詩, 조각을 만나다'에서 김정환 시인의 '칼잠예수'라는 시를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칼잠예수' 형상은 십자가 위에 노숙인이 누어있는 모습이다.
이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 오종선 작가는 심각하게 긴 방황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생활비도 벌어야 했고, 가족들의 기대도 맞춰야 했지만 그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확신이 강하지 못했다. 미술 자체를 그만두어야 할지에서부터 일반적인 작품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
실제로 홍대 대학원에 재학할 때는 후배들 사이에서 '재미'가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고, 보이는 것만 집중하는 것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미술 하는 사람들이 왜 정치와 사회,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후배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떡값전'으로 일간지 1면을 장식했어도 일부 후배들은 작업의 내용과 본질이 아니라 신문에 났다는 것 자체에만 집중했다. 시사나 정치를 알아야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미술학도들은 외적 아름다움만을 추구했다.
예술은 내용과 형식인데 형식에만 빠지면 3류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오종선 작가의 생각이다.

ⓒ이승빈 기자 조각가 오종선
또한 오종선 작가는 회화와 달리 조각은 성취도에서도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최근 '장준하전'까지 열게 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현대미술이 가야할 바가 무엇인지 스스로 해답을 찾아나가고 있는 오종선 작가는 단순히 미술이 무언가를 재현해내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장준하선생의 유골 모형이 민미협(민족미술인협회)에서 주관하는 전시회장 같은 곳이 아니라 새누리당사 앞에서 전시되는 것의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미술관이라는 미술권력의 틀을 벗어던지고 미술이 밖으로 나와, 평론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종선 작가는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작가들로 영국의 뱅크시나 미국의 게릴라 걸스라는 창작집단을 손꼽았다.
뱅크시는 남자 경찰관 2명이 키스하는 실물크기의 이미지를 비롯해 공공장소에 행해지는 반권위주의적인 예술가로 유명하다. 남성권위주의나 미국사회를 풍자하는 작품을 주로 다루는 게릴라 걸스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작가들이다.
떡값전, 민심전, 장준하전 같은 현실 참여작품을 내 놓는 작가들을 우리는 얼마나 더 자주 만날 수 있을까. 오종선 작가도 자신과 같이 미술의 한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예술가가 많이 나오길 바라고 있다.
한편, 최근 장준하선생 암살의혹규명 대책위는 진실규명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과 함께 전국순회에 돌입했다.

ⓒ오종선 작가 오종선 작가 민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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