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4일 토요일

검사들 “조직 만신창이, 총장 뭐하나” 내부통신망 500여건 익명의 글 폭주


이글은 경향신문 2012-11-24일자 기사 '검사들 “조직 만신창이, 총장 뭐하나” 내부통신망 500여건 익명의 글 폭주'를 퍼왔습니다.

ㆍ안일한 수뇌부 또 ‘자체 개혁’ 추진ㆍ“책임 회피 땐 외부 개혁 불가피해”

김광준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사건에 이어 검사가 피의자와 성관계를 가진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검찰의 위상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지금 상황이 1993년 빠찡꼬(슬롯머신) 업계의 대부 정덕진씨의 비호세력으로 전·현직 검찰 간부들이 지목됐을 때와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종철 당시 검찰총장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한상대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 중에는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검사의 성추문 사태에 책임을 지고 해당 지검장만 이날 물러났다. 금품수수 혐의로 부장검사가 구속됐을 때도 한 총장은 책임을 회피했다. 이에 대해 검찰 안팎에서 비난 여론이 거세다.

■ 검찰 내부서도 수뇌부 책임론 비등

서울동부지검장 사의 석동현 서울동부지검장이 23일 현직 검사와 여성 피의자의 부적절한 성관계 파문에 대해 감독 소홀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뒤 서울 광진구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검사들 사이에선 “조직이 이렇게 만신창이가 됐는데 도대체 총장이 무얼 하고 있느냐” “검찰 수뇌부가 위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서울지역 검찰청의 한 중견 간부는 “이쯤 되면 총장은 물론 고검장들도 다 옷 벗어야 하는 거 아니냐.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 무슨 대책을 내놓은들 국민들이 신뢰하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간부는 “검찰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이 지금 수뇌부인데, 그 사람들이 무슨 대책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며 “어떻게 아무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느냐”고 말했다. 한 평검사는 “수뇌부에 대한 기대를 이미 접었다”며 “언론이 호되게 비판해달라”고 말했다.

검찰 내부통신망에는 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상설특검 도입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등 각종 검찰개혁안에 대한 주장까지 포함하면 2주 동안 500여건의 글이 익명게시판에 올라왔다.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검찰에서 이처럼 불만이 공개적으로 표출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일각에선 검찰 수뇌부에 대한 비판적 흐름이 평검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검찰 수뇌부의 사태 인식은 안일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외과적 수술’을 거부하고 자체적인 문화 개선과 감찰 강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헛구호’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은 위기에 몰릴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내부에서 만든 개혁안을 내놨지만 실제 성과는 미미했다”며 “이번에는 필시 수뇌부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 않으면 외부에 의한 개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 개혁 대상인 수뇌부가 개혁안을 만드는 모순

검찰의 자체적인 개혁 논의가 검찰 안팎에서 냉소와 불신의 대상이 되는 것은 검찰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 다름 아닌 현재의 수뇌부라는 인식 때문이다. 개혁의 대상인 수뇌부가 개혁 논의를 주도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부지 의혹 수사다. 검찰은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을 수사한 뒤 피고발인 7명을 전원 무혐의 처분했다.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는 부르지도 않고 서면조사로 끝냈다. 여기에는 한 총장의 의중이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반면 이광범 특별검사팀은 시형씨의 편법 증여와 청와대 경호처 간부들의 배임 혐의를 밝혀냈다. 검찰은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봐주기 수사’ ‘짜맞추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2일 계열사 펀드 투자금 수백억원을 빼내 자신의 선물투자에 쓴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최 회장의 죄질이 나쁘다”면서도 양형기준표상 권고 형량의 하한선에 맞춰 구형했다. 검찰 안팎에선 한 총장과 최 회장의 친분이 작용해 ‘봐주기 구형’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2008년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가 건설업자로부터 사건 청탁과 함께 그랜저 승용차 등 금품을 받아 문제가 됐다. 이듬해 4월 고발장이 접수됐지만 검찰은 1년3개월 뒤인 2010년 7월 “청탁이 아닌 차용관계”라며 무혐의 처분했다.

몇 달 뒤 국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노환균 법무연수원장은 “무죄라고 판단돼 기소할 수 없었다. 재수사는 없다.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11월 강찬우 특임검사팀은 재수사를 벌여 해당 검사를 구속했다.

그러나 노 연수원장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노 연수원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때 지휘한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는 올해 재수사를 통해 부실수사였음이 입증되기도 했다. 노 연수원장은 지난 22일 열린 전국 고검장 회의에서 “지금 국민은 검찰에 대해 신뢰를 거둔 정도에 머물지 않고 분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 수습검사 성추문 책임 석동현 동부지검장 사의

이날 현직 검사와 여성 피의자의 부적절한 성관계와 관련해 석동현 서울동부지검장이 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석 지검장은 “동부지검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태에 관해 청의 관리자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사직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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