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3-03-19일자 기사 '진보언론의 보수언론 따라 하기'를 퍼왔습니다.
언론과 권력 (84)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지낸 변호사 문재인은 2011년에 펴낸 자서전에서, 대통령직을 떠나 봉하마을에서 평민으로 살던 노무현이 검찰의 강압적 수사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하던 시기의 언론에 관해 이렇게 기록했다.
검찰과 언론이 한통속이 돼 벌이는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은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 대통령을 아예 파렴치범으로 몰아갔다. 검찰에서는 홍만표 수사기획관이 아침저녁으로 공식 브리핑을 했다. 중수부장 이하 검사들도 언론에 수사상황을 모두 흘렸다. 심지어 검찰관계자라는 이름의 속칭 ‘빨대’가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보탰다.
뇌물로 받은 1억 원짜리 시계를 논두렁에 갖다 버렸다는 ‘논두렁 시계’ 소설이 단적인 예이다. 사법처리가 여의치 않으니 언론을 통한 망신주기 압박으로 굴복을 받아내려는 것 같았다. 언론은 기꺼이 그 공범이 됐다.
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진보라는 언론들이었다. 기사는 보수언론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칼럼이나 사설이 어찌 그리 사람의 살점을 후벼 파는 것 같은지, 무서울 정도였다. (···) 그렇게 날카로운 흉기처럼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자신의 글에 대해 반성한 것을 보지 못했고, 글쓰기를 자제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문재인의 운명], 399~400쪽)
한국 사회에서는 언론을 양분하는 방식이 굳어져 있다.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통념이 바로 그것이다. 보수의 대표는 조선·중앙·동아일보이고, 문화·세계·국민일보가 같은 계열로 분류된다. 서울신문은 실질적으로 정부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권의 성격에 따라 진보와 보수 사이를 오고 갈 수 있다.
진보적 신문으로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꼽는 데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한겨레는 1988년 5월 창간 당시부터 ‘대중적 정론지’를 표방하면서 진보적 보도와 논평에 주력해왔다. 경향신문은 1998년 4월 한화그룹에서 독립해서 사원주주제를 택한 이래 지면 제작에 적지 않은 혼란을 겪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 한겨레와 비슷한 진보언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겨레와 경향이 언제나 진보의 정도를 걸은 것은 아니다. 위에 인용한 글에서 문재인이 지적한 사실이 대표적인 보기이다. 그 경위를 살펴보자.
2008년 2월 25일 이명박이 제1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5개월째인 7월 들어 국세청은 노무현과 가까이 지내던 기업인 박연차가 회장으로 있던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같은 해 11월 세종캐피털 등 대부업체 5~6곳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서 박연차 본인을 비롯한 노무현의 친형 노건평, 전 청와대 민정수석 박정규, 국회의원 이광재,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상문이 구속되었다.
2009년 4월 11일에는 노무현의 부인 권양숙이, 12일에는 아들 노건호가, 5월 11일에는 딸 노정연 부부가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4월 30일에는 노무현이 조사를 받기 위해 봉하마을을 나서 서울 대검 청사로 갔다.
얽히고설킨 박연차 게이트에서 권양숙과 자녀들이 관련된 부분에 관해 노무현은 4월 7일 ‘사과문’을 발표했다.
저와 제 주변의 돈 문제로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리고 있습니다.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더욱이 지금껏 저를 지지하고 신뢰를 표 해주신 분들께는 더욱 면목이 없습니다.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 미리 사실을 밝힙니다. 지금 정상문 비서관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정 비서관이 자신이 한 일로 진술하지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그 혐의는 정 비서관의 것이 아니고 저희들의 것입니다.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입니다.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
조카사위 연철호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에 관하여도 해명을 드립니다. 저는 퇴임 후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조치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특별히 호의적인 동기가 개입한 것으로 보였습니다만, 성격상 투자이고, 저의 직무가 끝난 후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설명하고 투자를 받았고, 실제로 투자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사과정에서 사실대로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권양숙이 어떤 방식으로든 빚을 갚고 자녀를 돕기 위해 박연차한테서 3억 원이라는 큰돈을 받은 사실을 노무현이 퇴임 후에 알았다고 인정한 이상, 그것이 법에 어긋나는 금품수수인지는 법정에서 가려야 마땅한 일이었다. 그리고 조카사위 연철호가 박연차의 돈 500만 달러를 투자 용도로 받았다면 노무현이 대통령 재임 시기에 권력을 이용해서 박연차에게 압력을 가했는지도 증거를 통해 밝혀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검찰은 노무현의 주변을 샅샅이 수사하면서 그 일가는 물론이고 정치적 동조자들과 친지들이 모두 부도덕하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데 중점을 두었다. 검찰의 그런 ‘작전’을 충실하게 대행한 것은 바로 언론이었다. 검찰은 주로 박연차의 진술 내용을 토대로 언론에 정보를 흘렸다. 흔히 ‘빨대’라고 불리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2009년 3월 31일 자 기사(‘박연차, 작년 2월 말 500만 달러 노건평 맏사위에게 송금’)에서 “박 회장은 지난해 12월 대검 중수부 조사 과정에서 노무현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하면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포괄적 뇌물수수죄로 처벌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고 예측했다. 이 신문은 4월 2일 “500만 달러에 관해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몫으로 건네진 돈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고 볼 수 있는 증거를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위의 보도만을 놓고 보더라도 검찰과 동아일보는 중대한 위법행위를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노무현은 형사피고인이 아니라 단순한 시민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위와 같은 정보를 언론에 제공한 검찰은 ‘피의사실 공표죄’를 저질렀음이 명백하다. 형법 제126조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사람이나 감독·보조하는 사람이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공판 청구) 전에 공표’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인의 기자에게 고지(告知)하는 때도 공표가 된다.
박연차 게이트를 중심으로 노무현 일가와 친지들을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인간들로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검찰과 언론은 ‘무죄 추정의 원칙’과 ‘피의사실공표죄’를 철저히 무시했다. 구체적인 사례 몇 가지를 보기로 하자.
(조선일보) 2009년 4월 10일 자 기사(‘노 전 대통령 몫으로 100만 달러 돈 가방 줬다’)는 “정 전 비서관이 이 돈을 실제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단정했다. 같은 날짜 (동아일보) 기사(‘검, 노 600만 달러 뇌물수수 혐의 형사처벌’)는 검찰이 노무현을 사법처리 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했다.
(동아일보)는 이튿날, “노, ‘100만 달러 보내라’ 직접 전화··· 청와대로 박연차 불러 ‘고맙다’ 인사”라는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나중에 밝혀졌듯이 이 기사는 순전한 ‘작문’이었다.
(중앙일보) 4월 10일 자는 ‘검찰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서 노무현의 조카사위 연철호가 박연차한테서 500만 달러를 받아 설립한 ‘타나도 인베스트먼트’의 대주주는 노무현의 아들 노건호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단독으로 보도했다.
조·중·동을 비롯한 대다수 신문은 이렇게 일방적인 보도를 쏟아내면서 노무현 본인과 그 일가를 ‘파렴치범’으로 모는 ‘경쟁’을 벌였다.
조선·중앙·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그렇다 치고 ‘진보’를 표방하는 한겨레와 경향도 비슷한 보도행태를 되풀이했다. 검찰의 ‘빨대’가 뿜어내는 박연차 게이트 관련 피의사실들을 보수언론처럼 받아쓰던 (한겨레)는 노무현이 4월 7일 ‘사과문’을 발표하자 9일 자 사설에서 ‘한 오라기의 진정성도 인정받을 수 없었다’고 단언하면서 노골적으로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노 전 대통령이 보이는 태도는 구차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다. 검찰이 발표하기 전에 앞질러 ‘자백’과 ‘사과’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 내용은 오히려 ‘면피용’에 가깝다. (···)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남김없이 고해성사하고 석고대죄해야 한다.”
(경향신문)은 4월 12일 자 사설에서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으나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던 노 전대통령의 위선을 보는 것 같아 말문이 막힌다”고 비난했다.
“자기 패는 감추고 상대가 공격해 오기를 기다렸다가 반격을 가하는 게임이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여전히 그 속내가 궁금하다. (···) 노 전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방어와 해명’이 아니라 진정성 담긴 고백이다.”
앞에 소개했듯이, 노무현은 ‘사과문’에서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는 정상문 비서관의 것이 아니라’ ‘저의 집(권양숙)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국민에게 사과했다. 모든 언론의 기사나 논설처럼 그 자신이 그 돈을 받아서 쓴 것이 아님을 명확히 밝혔던 것이다. 그런데 한겨레와 경향의 사설은 그의 사과를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석고대죄’와 ‘진정성 담긴 고백’을 요구했다.
당시 한겨레와 경향의 사설을 읽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이것은 조·중·동의 사설이 아닌지’ 하고 의심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아래 인용하는 두 사설을 보고 어느 신문의 것인지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만지지 말아야 할 돈을 만지면 그것이 똥이 되는 것이다. 그 똥을 먹고 자신의 얼굴에 처바르고 온몸 전체에 뒤집어쓴 사람들이 지난 시절,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고 그 부인이었으며 아들이었고 활개치며 내로라하는 얼굴들이었다니·····.”
“노 전 대통령 부부가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하며 ‘어디 한 번 증거 찾아봐라, 아마 쉽지 않을 걸?’ 하며 버티는 꼴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연상케 한다.”
앞엣것은 (중앙일보) 4월 11일 자 사설, 뒤엣것은 (경향신문) 4월 21일 자 사설의 한 대목이다.
4월 22일 노무현은 ‘사람세상 홈페이지를 닫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라는 글에서 “이제 제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사법절차 하나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4월 30일 대검 중수부로 조사를 받으러 떠났다. 그러나 중앙 일간지들의 중추적 필자들은 그 이전에 칼럼을 통해 그에게 ‘파렴치범’이라는 유죄 선고를 내려버렸다.
“참여정부의 실정으로 서민들이 가난해지는 동안 노무현 패밀리는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 절망 속에 빠진 서민을 내버려두고 자기들은 옥상으로 피신해 헬기를 타고 안전지대로 탈출하려 했다. (···) 노무현 정권의 재앙은 5년의 실패를 넘는다. 다음 5년은 물론, 또 다음 5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당선은 재앙의 시작이었다고 해야 옳다.” ([경향신문] 4월 16일 자, 정치·국제 에디터 이대근)
“‘전직의 명예’가 무너진 마당에 사법절차에나 매달리겠다니 인간이 불쌍하다는 생각뿐이다. (···) 노무현 게이트에 얽힌 돈의 성격과 액수를 보면, 그야말로 잡범 수준이다. 정치자금도 아니고 그저 노후자금인 것 같고 가족의 ‘생계형’ 뇌물수수 수준이다. 그래서 더 창피하다. 2~3류 기업에서 얻어 쓰고 세금에서 훔쳐간 것이 더 부끄럽다.” ([조선일보] 4월 27일 자, 고문 김대중)
경향신문의 칼럼은, 1975년 4월 말 북베트남에 패한 남베트남 대통령 구엔 반 티우가 대통령 관저 옥상에서 가족과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달아난 사실을 빗대어 노무현을 비난했다. 조선일보의 칼럼은 노무현을 아예 ‘잡범’으로 몰아붙였다.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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