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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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한겨레21 2013-04-01일자 제954호 기사 '‘솔라 분데스리가’를 아십니까?'를 퍼왔습니다.
[특집] 시민 에너지협동조합이 재생에너지 발전 주도하는 독일, 태양에너지 발전량 겨루는 ‘솔라 분데스리가’도 있어… 공동주택, 마을회관, 축구장 등 곳곳에 시민발전소 있는 프라이부르크를 가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뒤 2년. 과연 옆 나라 한국은 그동안 어떤 교훈을 얻은 걸까.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은 정부의 원전 정책을 보면, 별다른 깨달음이 없는 듯하다. (한겨레21)은 최근 지방자치단체장 연구모임인 ‘목민관클럽’과 ‘탈핵-에너지전환을 위한 자치단체장 모임’과 함께 대표적인 유럽의 탈핵 국가인 오스트리아·독일의 재생에너지 현장을 취재했다. 무던한 한국과 달리 후쿠시마 사고를 되짚고 재생에너지 확산을 고민하는 이들 나라의 모습을 전한다. _편집자

» 독일 프라이부르크 도심 동쪽에 위치한 프로축구팀 SC프라이부르크의 전용구장 ‘메가 솔라 스타디움’(바데노바 경기장)의 모습. 경기장 지붕에는 1993년 이 지역 시민 100여 명이 투자한 돈으로 만든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있다. 솔라파브릭 제공


지난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도시는 어디일까. 도르트문트? 뮌헨? 정답은 글뤼싱이다. 여기서 말하는 ‘분데스리가’는 독일 프로축구 리그가 아니다. 독일 전역에서 태양에너지 발전량을 겨루는 ‘솔라 분데스리가’(Solar Bundesliga)이기 때문이다.

독일 신재생에너지 정보포털 자료를 보면, 2010년 독일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의 40%를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 4대 전력회사의 비중은 6.5%에 그친다. 그 견인차는 바로 독일의 협동조합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 40% 개인 소유

솔라 분데스리가는 독일 환경지원협회(Deutsche Umwelthilfe e.V.) 등이 2003년부터 인터넷(solarbundesliga.de)에서 공개하고 있는 이른바 ‘태양에너지 발전경쟁 리그’다. 솔라 분데스리가에서는 독일 전 지역을 대상으로 태양광·태양열 발전량을 평가하고 그 순위를 매기는 작업을 한다. 영예의 1위 자리에 오르는 도시에는 상도 준다. 점수를 매기는 과정은 이렇다. 주민 1인당 생산하는 태양광은 1W에 1점(500kW 이상은 100점)을 준다. 태양열도 1W당 1점을 준다. 이 점수를 산출 공식에 대입하면 도시별 합산 점수가 나온다. 지난해 ‘챔피언’인 글뤼싱은 덴마크 국경과 가까운 독일 북부에 자리잡은 작은 시골 마을이다. 글뤼싱은 태양광 1670.3점, 태양열 1만4651.4점을 땄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열기를 짐작해볼 만한 점수다.
독일 연방정부의 자료를 보면, 2011년 전체 발전량 가운데 재생에너지가 차지한 비율은 18.7%였다. 9년 안에 가동을 멈추기로 한 핵발전소의 발전량은 17.8%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은 2022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35%까지 끌어올리려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한 투자가 몇몇 대형 전력업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독일 신재생에너지 정보포털 자료를 보면, 2010년 독일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의 40%를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 4대 전력회사의 비중은 6.5%에 그친다. 그 견인차는 바로 독일의 협동조합이다. 시민들이 일정 금액의 출자금을 모아 만든 협동조합이 태양력·풍력 등 다양한 형태의 시민발전소를 세워 전기를 판매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으로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한 이른바 ‘에너지협동조합’ 형태는 독일에서는 이미 지난 5년 동안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에너지협동조합을 향한 열기는 독일 협동조합들의 연맹인 ‘독일협동조합협회’(Genosenschaften in Deutschland)의 지난해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2011년 독일 전역에서 결성한 협동조합 272곳 가운데 50%가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협동조합이었다. 형태도 다양해 풍력, 바이오가스, 그리고 스마트그리드 시설을 활용한 열병합 협동조합도 만들고 있다. 독일협동조합협회는 “전체적으로 재생에너지 관련 협동조합은 약 600곳인데 매해 160곳씩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는 시민발전소는 지난 3월14일 찾은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스위스·프랑스를 마주하고 있는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도시인 이곳은 유럽의 대표적 환경도시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인구 22만 명인 프라이부르크는 2003년부터 3년 연속 솔라 분데스리가 대도시 부문에서 1위를 지켰을 만큼 태양에너지 등 재생에너지 보급에 앞선 도시이기도 하다.

핵발전소 반대에서 출발한 대안운동

프라이부르크가 재생에너지 보급에 앞선 배경에는 40여 년 전 겪었던 핵발전소 건설 논란이 있다. 이날 프라이부르크시 오페라홀에서 만난 디터 뵈르너 프라이부르크시 환경보호국장은 당시의 변화를 ‘빅뱅’(Big-bang)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1970년대 서독 정부는 프라이부르크 외곽의 빌이라는 곳에 20번째 핵발전소를 지으려 했습니다. 독일 남서부를 책임지는 대규모 에너지 공급원을 만들려 한 것입니다. 계획이 발표되자 대학생·자영업자 등 지역 주민들이 크게 반발했습니다. 결국 시민의 저항으로 정부가 핵발전소 건설을 백지화했어요. 환경의 중요성을 느낀 시민들이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죠.” 그 뒤 독일에는 녹색당이 등장했다.
그러나 프라이부르크의 반대를 서독의 다른 지역에서는 그저 님비(NIMBY)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프라이부르크에서는 온실가스를 줄이고 환경친화적인 에너지를 사용해 에너지 자립을 달성하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뵈르너 국장은 “당시에는 정치적 이유로 내려진 결정이었지만, 이를 꾸준히 연구한 결과 지금은 (재생에너지로 자립하는) 기술적 해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프라이부르크는 ‘프라이언호프 태양에너지 시스템연구소’(ISE) 등 각종 태양광 관련 연구시설과 업체가 모여 있는 연구·개발(R&D) 도시다. 지금은 뮌헨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태양광산업 박람회인 국제태양에너지전시회(Intersolar)를 처음 시작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처럼 프라이부르크가 태양에너지 연구에서 가장 앞선 도시가 된 건, 주민의 참여를 열어둔 시민발전소 육성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시민발전소의 형태는 프라이부르크 도심에서 약 4km 남서쪽으로 떨어진 보방 지역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보방은 옛 프랑스군 주둔지에 시민들이 주택협동조합을 결성해 자체적으로 설계한 마을로 유명하다. 그 설계를 밑바탕으로 에너지 자립이 이뤄지고 있었다.

보방과 같은 특수한 경우뿐만 아니라 프라이부르크 곳곳에서 협동조합 형태의 재생에너지 투자가 이뤄진다. 도심 동쪽에 있 는 이 지역의 프로축구팀 SC프라이부르크의 전용구장 ‘메가 솔라 스타디움’이 대표적인 예다. 2만5천 명을 수용하는 이 축 구장은 1954년에 지어졌다. 현재 이 경기장의 지붕에는 태양광 패널이 올라가 있다

» 2002년 옛 보방 단지 건너편에 들어선 ‘플러스 에너지’(Plus Energy) 단지의 모습. 최소한의 에너지만 쓰는 패시브하우스로 지어진 이 마을은 태양광 시설로 전기를 자급하고 있다(왼쪽). 보방을 지나는 도로와 ‘플러스 에너지’ 단지 사이에서 방음막 역할을 하는 상업주거시설의 모습. 이곳에도 태양광 시설을 올려 전기를 얻고 있다. 한겨레 김성환 기자

“은행보다 나은 연리 5%”

옛 보방 단지 건너편에는 2002년에 들어선 ‘플러스 에너지’(Plus Energy) 단지가 있다. 59가구가 사는 건물로, 우리나라의 연립주택 형태를 닮았다. 이곳은 열손실을 최소화한 ‘패시브하우스’로 지었는데 모든 건물의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프라이부르크 등 독일 지역의 신재생에너지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한스 외르크 슈반더 이노베이션아카데미협회 대표는 “주택을 분양할 때 태양광 시설을 집과 함께 분양했다. 100㎡ 거주자는 전기료를 전혀 내지 않으며 매달 300유로(약 72만원)의 이익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방의 옛 주거단지 안에 있는 마을회관 ‘하우스057’과 마을 입구에 있는 주차장 시설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이곳 주민들은 자신이 투자한 태양에너지 시설로 전기를 얻고 나머지로는 이익을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방이라는 큰 마을 전체가 시민발전소 형태로 운영되는 셈이다.
보방과 같은 특수한 경우뿐만 아니라 프라이부르크 곳곳에서 협동조합 형태의 재생에너지 투자가 이뤄진다. 도심 동쪽에 있는 이 지역의 프로축구팀 SC프라이부르크의 전용구장 ‘메가 솔라 스타디움’(바데노바 경기장)이 대표적인 예다. 2만5천 명을 수용하는 이 축구장은 1954년에 지어졌다. 현재 이 경기장의 지붕에는 태양광 패널이 올라가 있다.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경기장 전력을 돌리고 나머지는 판매하는 식이다. 위르겐 하르트비히 프라이부르크미래연구소장은 “1993년 독일 최초의 시민발전소 형태로 만들어진 이곳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지사를 포함한 100여 명의 시민과 시민협동조합으로 이뤄진 지역 금융협동조합도 투자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SC프라이부르크의 분데스리가 성적이 좋아 1년치 시즌 입장권을 구하기 힘들었는데, 시민발전소 참가자들에게 시즌권 구입 우선권을 주자 큰 인기를 끌었다고 했다. “전력업체가 큰돈을 들여 경기장에 투자했다면 이렇게 주목받지 못했을 겁니다. 축구를 보러온 관객이 태양에너지 시설을 보면서 나타난 홍보 효과가 컸으니까요. 프라이부르크에서 나타난 아래에서부터 위로의 변화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라이부르크 북동쪽 풍력발전소와 박람회장 지붕의 태양광 시설, 흑림(Schwarzwald)으로 향하는 국도 터널 위 태양광발전기도 시민발전소 형태다. “이곳에 투자하면 열과 전기를 공짜로 받을 수 있고 은행보다 좀더 나은 이익을 얻을 수도 있죠. 대부분 투자금 대비 연 5%의 이익을 얻고 있거든요.”
좀더 전문적인 형태의 에너지협동조합도 프라이부르크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바로 ‘시민햇빛협동조합’(Solargeno)이다. 2006년 지역 활동가인 부르크하르트 플리거가 만든 이 협동조합은 프라이부르크를 주요 활동 영역으로 시작해 현재 프라이부르크와 부르슈타트, 다름슈타트, 란다우, 피싱겐 등 5곳에서 시민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130명의 회원이 1010계좌(약 10만유로)를 출자했는데 소방서 옥상과 학교 옥상 등을 임대해 운영하는 형식이다. 프라이부르크에선 지난해 9월 알파인스키 연습장 체육관 위에 태양광 시설을 얹었다. 협동조합이 소유한 발전시설로 순간 최대 전력을 589kW까지 얻을 수 있다.
독일에서 에너지협동조합 형태가 처음 등장한 건 1999년 ‘그린피스 에너지협동조합’(Greenpeace Energy eG)이 출범하면서부터다. 그러나 단순한 협동조합의 문화로만 재생에너지에 대한 활발한 시민 참여를 설명하기 힘들다. 가장 강력한 유인책은 2000년에 제정된 재생에너지법(EEG)이다. 전력 생산 부문에서 수력·풍력·태양광·지열·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고 이를 지원하는 법적 바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우리나라의 발전차액지원제도(FIT)처럼 같은 전력이라도 재생에너지 사용에 우선권을 주며, 20년간 발전차액(기준 가격과 전력거래 가격의 차액)을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 시민발전소에서 만든 전기가 발전차액을 받아 이익을 볼 수 있고 재생에너지에 대한 더 많은 투자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대표적 이동 수단인 전차(트램)의 모습. 프라이부르크시는 값싼 정기 승차권을 만들어서 시민들이 자연스레 자동차 이용을 줄여 온실가스 절감에 동참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한겨레 김성환 기자

오히려 발전차액 제도 없앤 한국

그러나 독일과 반대로, 우리나라는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에 따라 2001년부터 운영해오던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2010년 전력 생산자가 일정 비율의 신재생에너지를 의무적으로 공급하도록 하는 공급의무화제도(RPS)로 바꿨다. 결국 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은 대형 전력업체 중심의 재생에너지 투자가 이뤄지는 구조로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최근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가정·지역공동체 등 10kW 이하의 재생에너지 시설에만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적용하는 제도(Micro-FIT)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이대로는 시민 중심의 재생에너지 확산이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솔라 분데스리가’와 비견할 만한 ‘솔라 K리그’가 화려하게 열리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프라이부르크(독일)=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이제 서광이 비치기 시작해

국내 에너지협동조합 현황

우리나라에 ‘에너지협동조합’이라는 말이 등장한 건 불과 석 달 전이다. 지난해 12월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면서 에너지협동조합 출범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세울 수 있도록 설립 기준이 완화됐고 자본금 제한 규정도 없어지는 등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현재 출범을 선언한 에너지협동조합은 이른바 ‘햇빛발전소’라고 부르는 태양광발전 시설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예가 30만 명의 조합원과 21개 생활협동조합이 모여 있는 한살림연합이다. 한살림연합은 지난해 12월25일 ‘한살림햇빛협동조합’을 세웠다. 기존 조합원이 있는 덕에 1386명이 참여해 모두 13억원의 출자금으로 에너지협동조합을 출범시킬 수 있었다. 한살림햇빛협동조합는 오는 7월부터 경기도 안성의 한살림물류센터 지붕 위에 470k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운영한다.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우리동네햇빛발전협동조합’은 서울 강북구 미아동 삼각산고교 학생·교사 등 구성원과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에너지협동조합이다. 조합원 180여 명이 모인 이 협동조합은 학교 옥상에 20k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했다.
사실 에너지협동조합이 등장하기 전에도 ‘시민발전소’는 이미 존재했다. 전북 부안 등용마을 주민들이 세운 부안시민발전소나 경기도 시흥시청 옥상에 세운 시흥시민햇빛발전소 등도 잘 알려진 시민발전소 중 하나다.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설비에 투자했거나, 시민들의 돈을 모아 세운 주식회사 형태였다. 실제로 시흥시민햇빛발전소는 70여 명의 주주가 1천만원 규모의 투자금을 낸 ‘주식회사’다.
그러나 최근 시민발전소가 부침을 겪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높은 초기 비용과 임대료 때문이다. 현재 발전용량 1kW에 설치 비용으로 약 250만원이 드는데 일정 규모의 발전시설을 갖추기 위한 출자자를 모으기가 쉽지 않다. 또 도심에서는 임대료 문제 때문에 학교나 공공기관 건물을 활용하는데, 이조차 생각보다 비용이 높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 발전회사가 총발전량의 일부를 신재생에너지 전력으로 공급하도록 한 ‘공급의무화제도’(RPS)에 따라 시민발전소의 전기를 사들이지만, 높은 초기 비용을 반영하지 않은 요금이라 큰 수익이 나지 않는 경우 시민발전소 설비를 방치하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에너지협동조합 등의 시민 참여 열기를 식게 만드는 구조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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