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1일 일요일

이주의 트윗, ‘88만원 세대’ 그리고 6년 후


이글은 한겨레21 2013-04-01일자 제954호 기사 '이주의 트윗, ‘88만원 세대’ 그리고 6년 후'를 퍼왔습니다.

혐오와 희망 공허한 진동
눈부시게 성공하고 참담하게 실패한 (88만원 세대)
입맛에 맞춰 20대를 ‘수꼴’로 부르거나 ‘희망’으로 찬미한 이들

(8만원 세대)를 출간한 지 6년이 되어간 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실크 세대 사태’ 가 먼저 떠오른다. 실크 세대란 ‘실크로드 세 대’의 줄임말로 ‘88만원 세대’ 담론이 한창 유 행하던 2008년 말~2009년 초 무렵 (조선 일보)와 변희재씨가 띄우던 세대론이다. ‘88 만원 세대’라는 말 대신 ‘실크 세대’를 써야 하며, 이른바 ‘486세대’를 사회적으로 고립시 켜야 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었다. 이들이 노리는 정치적 효과가 무엇인지는 명약관화 했기에 나는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필자와 (88만원 세대)를 함께 썼던 우석 훈씨가 갑자기 (한겨레) 지면을 통해 변희 재와 실크 세대론을 지지한다는 글을 발표 한 것이다. 어떤 세대는 유능한데 어떤 세대 는 무능하다는 식의 유사 인종주의적 시각 으로 특정 세대를 배제하자고 선동하는 실 크 세대론은, 청년 세대가 처한 불안정 노동 의 현실을 모든 세대가 연대해 바꾸자고 주 장하는 88만원 세대론과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양립 불가능하다. 나는 곧바 로 우석훈씨의 주장을 반박하고 (88만원 세대)는 결코 (조선일보)류 세대론과 함께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공저자로서의 인연 도 거기서 사실상 끝났다.
6년이 지나 곰곰 생각해보면 애초에 우석 훈씨가 생각한 세대론은 나의 세대론과는 달랐던 것 같다. 그의 세대론은 특정 세대 에게 선과 악의 낙인을 찍어 한껏 치켜세우 거나 세상에 둘도 없는 말종인 양 비난하는 것으로 비판을 대체해버린다는 점에서, (조 선일보)류 세대론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 이다. 우씨뿐만 아니라 많은 진보적 지식인 들이 그랬다. 촛불시위, 선거 등 중요한 정 치적 국면에서 ‘20대가 보수화되어서 그렇 다’는 식으로 20대 혐오론을 공공연히 유포 했다. 반면 2011년 4·27 재·보궐 선거 직후 에는 20대가 ‘수꼴’이라 욕하던 이들이 돌변 해 20대 찬가를 불러댔다. 진보개혁 진영에 유리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 이후 6년 동안 청년 세대에 대한 담 론은 그저 20대 혐오론과 희망론이라는 공 허한 판타지의 양극을 메트로놈처럼 오갔 을 뿐이다. 반면 2009년 대졸 초임 삭감 사 태처럼 청년 세대 전체의 삶을 국가와 기업 집단이 유린하는 중대한 사건이 터졌을 때, 툭하면 “20대의 고단한 삶”을 걱정하며 본 인의 진보성을 과시하던 이들은 대체 어디 에 있었는가.
최근 우석훈씨는 “20대가 책을 읽고도 싸우지 않아서 실망했다”며 돌연 (88만원 세대)를 절판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한 명 의 저자인 나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말이 다. 20대를 도매금으로 묶어 비난하며 절판 의 핑계로 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 만, 고민 끝에 나는 절판에 동의했다. 20대 가 그 책을 읽고 행동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88만원 세대)라는 책의 사회적 역할이 이 제는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88만 원 세대)는 눈부시게 성공했고 참담하게 실 패했다. 애당초 ‘한 방’에 해결될 문제가 아 니었다. 88만원 세대론을 넘어서 더 깊은 고 민과 성찰이 필요한 때다.

박권일 계간 편집위원

» ‘88만원 세대’의 이름으로 벌어진 운동은 있었지만, 아직까지 ‘88만원 세대’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했다. 2010년 4월 서울 노량진역 광장에서 2030세대의 정치세력화 운동을 벌이는 모습. 한겨레 자료

멘토야 사기꾼이야
‘거짓 멘토링’으로 고소득 올리는 멘토들
차라리 그들에게 갈 돈을 사회구조 개선에 쓰자


“그러니까 남자들은 여자를 멀리하고 자 위를 하는 게 낫습니다.” 클럽에서 자신을 유 혹해오는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다가 돈을 뜯 긴 뒤 여성을 멀리하게 된 미국 래퍼 고 투팍 (2PAC)이 남긴 말이다. 모든 여성이 사기꾼 은 아닐 텐데, 너무 호되게 당했나보다. 여성 을 상대로 마음의 문을 단단히 걸어잠근 걸 보니 말이다. 좀 성급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 역시 마음을 닫은 대상이 있기에 그 심정 을 알 것도 같다. 일부 ‘사기꾼 스멜(smell) 멘 토’들 때문에 언짢았던 나는, 멘토를 자청하 거나 남들이 멘토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들 모 두에게 마음의 문을 닫기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생각하는 ‘사기꾼 스멜 멘토’는 현 체 제의 문제를 축소하거나 외면하는 이들이다. 이를테면 노력하면 다 할 수 있다는 사람들. 물론 어려운 환경에서 어마어마한 노력을 해 비범한 성취를 이룬 사람도 있지만 이는 극 소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른바 ‘성공’을 이 루는 것이 아니라 그럭저럭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저성장 시대다. 점점 ‘괜찮은 일자리’가 줄고 있다. 괜찮은 일자리를 갖지 못하면 내 내 긴 노동시간에 적은 임금만을 받으며 착 취당할 거라는, 그나마도 몇십 년 못하고 잘 릴 거라는 불안감. 이 때문에 괜찮은 일자리 를 갖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고 모두가 죽어 라 노력하니 스펙 과잉 시대가 되고, 들인 돈 은 많은데 본전도 못 찾는 이가 늘어나고.
2007년 발간된 책 (88만원 세대)는 이 런 구조적 문제를 생생히 보여줬고, 그 생생 함 덕인지 청년 현실을 얘기할 때마다 ‘88만 원 세대’라는 용어를 빈번하게 쓰게 됐다. 이 제는 거의 클리셰다. 이 용어가 진부해진 만 큼 청년들이 처한 환경이 어렵다는 건 정설 이 됐고 정치권에서도 청년 걱정을 좀더 하 게 된 것 같다. 그런데도 삶의 불안정성은 여 전하다.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불안하니 찾 나보다. 멘토들 찾아가 얘기 듣고 힐링을 받 거나 꿈을 꾸거나 하며 희망과 위안을 구하 나보다. 그리고 멘토에게 힘 얻어 열심히 자 신을 채찍질하며 다시 달려간다. 가자! 모두 가 향하는 그곳으로! 거기에 뛰어들어 월 88 만원 벌 동안(혹은 ‘열정페이’라는 미명하에 그보다 못 벌 동안) 멘토님들은 연 10억원씩 버실 테다.
누가 멘토에게 10억원을 주는가. 기업에 서 주최하는 강연회에 참석한 멘토는 회당 몇백만원씩 번다 ‘카더라’. 청년들 역시 코 묻 은 돈으로 멘토들이 내는 책을 사준다. 차라 리 그 비용이 사회구조를 개선하는 데 더 쓰 였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투팍의 말을 빌리 자면, ‘청년들은 멘토를 멀리하고 ‘자위’를 하 는 게 낫습니다’. 청년 당사‘자’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위로하자는 말이다. ‘자외’도 좋다. ‘자’발적으로 ‘외’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 울이자. 서로가 서로의 외로움을 덜어주자. 또한 ‘자위’와 ‘자외’가 축적되면 체제의 모순 을 고발하는 자료가 될 수도 있다. 이를 정책 입안자 면전에 함께 내던지자. 그러니까 모두 제가 만드는 (월간잉여)에 투고를….

최서윤 (월간잉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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