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8일 목요일

'전쟁 불사'와 '정부 무능'을 넘어서야 '북한'이 보인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3-03-28일자 기사 ''전쟁 불사'와 '정부 무능'을 넘어서야 '북한'이 보인다'를 퍼왔습니다.
[비평]대전환 이룬 동아일보의 북한 보도, 지금 언론에게 주어진 몫은?

북한의 ‘징후’가 심상치 않다. 물론, 위기는 언제나 상황을 과장하기 마련이고 실체에 비해 과장된 해석을 낳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조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북한은 이틀 사이 천안함 3주기에 맞춰 ‘전투태세 1호’를 발령했고, 개성공단의 국제화 추진이 확정된 날 ‘남북 간 군 통신선 단절’을 선언했다.
북한의 이런 행위는 2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우선, 한국정부와는 대화할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기류는 이번 조치의 의미를 규정한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의 성명에서 보다 확연해진다. 군 통신선을 단절하며 조선중앙통신은 “북남 사이의 대화와 협력을 위해 개설된 북남 군 통신은 이미 의미를 상실했다”고 규정했다. 남한과의 대화가 현 시점에서 크게 의미 있지 않음을 최대치의 ‘공세’로 표명한 것이다. 이미 ‘군사적 대응’을 천명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를 ‘괴뢰당국’이라고 표현하며 이런 비난을 쏟아 붓는다는 건, 북한이 박근혜 정부에 대해 아무런 신뢰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박근혜 정부를 현 상황의 당사자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말의 다름 아니다.

▲ 28일자 동아일보 1면. 동아가 '조중동'으로 묶인 이래 대북 문제에 대한 가장 큰 전환을 이룬 헤드라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북한의 일련의 ‘제스처’가 누굴 대상으로 한 어떤 의미의 행위냐는 질문이 남는다. 이와 관련해 국내 언론은 제대로 된 ‘포커스’를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언론이 ‘1호 전투근무태세’가 무엇인지 제대로 추정하지 못하며, 한국 사회가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이런 조치를 내놓은 까닭이 무엇인지에 대해 특별한 감각을 발휘하지도 영민한 분석을 내놓지도 못한 형편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기감을 고조하는 기사들을 남발하고 있지만, 정작 발생한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분석력과 심층성도 갖지 못한 채 ‘그러려니’의 추정만 해대고 있는 셈이다.
물론, ‘1호 전투근무태세’가 처음 있는 생소한 조치여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에 신중하게 접근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조치의 맥락, 북한이 계속 강도를 높여 제스처를 하고 있는 배후적 의미에 접근하기 위한 노력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이에 대한 보도 역시 산발적 나열에 그치고 있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의 행위 동기를 “미국과의 직접 대화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좀 과격하게 말하는 이들은 아예 “핵 비즈니스”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 문제에 정통한 시사인의 남문희 대기자 같은 이는 일련의 상황이 “아버지 시대에서 아들 시대로 넘어오면서 게임의 패턴을 바꾸고자 하는 북한 지도부 내 새로운 두뇌집단의 움직임”이라며 “현재 북한 측이 보이는 공세적인 움직임들은 이들의 전략 목표에 따라 기계적일 정도로 정확하게 움직이는 패턴을 보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 동아일보 3면. 조선일보가 전쟁 불사론을 펴며 정부의 무른 대응을 질타한 날, 한국이 주도해 대화의 공간을 열어야 한단 주장을 동아일보에서 보는 것은 생경한 일이다.

남 대기자는 긴장 국면을 고조하고 있는 북한의 목적이 결국 “‘지금처럼은 못 살겠다’는 것”이라며 “이란과 미국을 상대로 벌이는 핵 비즈니스는 북한 지도부가 경제회생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벌이는 일종의 보급투쟁”이라고 결론지었다. 다양한 소식통을 인용한 남 대기자의 분석은 명쾌하다. 이 시각은 북한 행위의 동기와 목적 그리고 우리의 대처법에 상당한 시사점을 남긴다. 북한은 원하는 것은 ‘평화협정’이고, 이를 위해선 그 당사자가 한국도 중국도 아닌 미국이 직접 나서야 한단 점을 계속 ‘공략’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그보다 더 직접적인 국지전의 위협을 가하고 있음에도 아직 무대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김정은이 하고 싶은 건 미국과의 ‘권투’인데, 미국은 아버지 김정일과 했던 대로 UN과 주변국을 활용한 ‘체스 게임’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한국 언론이 지금 시점에서 논의에 붙이고 쟁점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이 대목이다. 북한의 의도를 심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냉철한 시각을 바탕으로 현재의 국면을 평화적으로 해결, 관리해낼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정부에게 ‘압박’하는 언론 행위다. 하지만 지금 국내 언론의 방향은 조선과 중앙을 위시로 한 보수 언론은 ‘북한 발 전쟁위기’를 강조하는 익숙한 레퍼토리 이상의 기사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진보언론은 실상을 비교적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긴 하지만 파급력이 정부를 움직이는 데까지 미치지 못함을 알기 때문인지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형편이다.

▲ 동아가 전향적 대북 관계를 위해 지금 해야할 일을 제시한 날, 조선은 통일부가 헛일을 한단 비판을 사설로 썼다.

이런 상황에서 28일자 동아일보의 보도는 매우 돋보인다. 28일자 동아는 1면 헤드라인을 “중 나서게 하고, 미를 이끌고, 북 일깨워라”로 뽑았다. ‘한국을 뺀 북-미 대화는 없다’는 미국의 입장에 “한국 주도의 전방위 외교”로 화답하란 방향 제시이다. 북핵 문제를 한국 주도 외교로 풀어야 한다는 동아의 ‘전환’은 동아가 조중동으로 묶인 이래 대북 문제에 대해  가장 큰 폭의 ‘도약’을 한 기념비적인 기사가 아닐까 싶다. 같은 날, 조선일보가 “북이 ‘핵 선제 타격’을 운운한 날, 통일부가 남북교류를 들고 나왔다”고 질타한 것에 비하면 동아의 이런 보도가 얼마나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동아는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기 위해 중국과 목표를 공유해 중국을 움직여야 한다”며 ‘미국이 대북협상에 지친 때에 한국이 나서 대화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미 편중 우려를 씻을 중국통이 필요하고, 미국 매파에 빌미를 주기 않기 위한 신뢰프로세스 단계 진행“을 거듭 촉구했다.      앞으로 시리즈로 진행될 동아의 이 보도가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에게 어떤 ‘영감’을 제시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현 국면에서 ‘전쟁불사론’을 외치거나 ‘정부 무능론’을 설파하는 양 극단의 진영 논리에 비해 훨씬 유의미하고 세련되며 정확한 분석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과거 보수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던 이는 (미디어스)기자에게 현 상황을 설명하며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북한이 워싱턴을 통해 미국과 협의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며 “미국은 북한이 전쟁을 하려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알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당장 대화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북한의 위협이 겨냥하고 있는 것을 당장 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앞선, 남문희 대기자의 지적이나 한국이 대화의 공간을 열어야 한다는 동아일보의 기사와 일치하는 문제의식이다.
북한을 도저히 속을 알 수 없는 이들이라고 패는 것은 쉽고, 빠르며 광범위하게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언론이 이런 1차원 적인 ‘선전’에만 매달린다면 당장의 조회수에는 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 문제를 푸는 ‘사회적 뇌 회로’로는 전혀 기능할 수 없다. 북한의 행위는 이해 불가능한 맹목적 전쟁 집착이 아니며 오히려 뚜렷한 목적을 지닌 설계된 행동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파적 시각과 진영 논리를 넘어 이를 어떻게 보도에 담아갈 것인지가 지금 언론에게 주어진 몫으로 보인다. 동아일보의 28일자 기획은 그 몫의 단초를 보여줬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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