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1일 일요일

이석기·김재연의 머리를 열어보겠다?


이글은 한겨레21 2013-04-01일자 제954호 기사 '이석기·김재연의 머리를 열어보겠다?'를 퍼왔습니다.
[정치] ‘종북몰이’ 연대 국회 발의된 ‘자격심사안’, 부정경선에 한정하겠다지만 ‘사상 검증’ 의도 다분… 보수의 ‘우리 편 아니면 무조건 종북’ 프레임에 걸린 논란의 끝은 어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3월22일 이석기·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국회 자격심사안을 공동발의했다. 두 당에서 15명씩 의원이 참여했다. 민주당에서는 의원들이 서명을 꺼려 원내대표단 15명이 총대를 멨다. 자격심사의 법적·정치적 근거가 취약하다는 비판이 많은데도, 두 당은 지난해 6월 이후 세 차례나 시도한 끝에 이 문제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로 가져갔다. 두 당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 이석기·김재연 의원은 ‘종북 논란’을 계속 불 지피기에 맞춤한 대상이다. 민주당은 “종북 비호당”이라는 보수 세력의 압박에 눌려 오히려 새누리당을 거든다. ‘어차피 통과는 안 될 것’이라며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는 건 물론이다. 통합진보당은 “철 지난 종북몰이”라고 반발하지만, 예민한 대북 관련 질문에 답변하지 않거나 북한을 두둔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대중적 오해’를 계속 쌓는다. 이 과정에서 ‘종북 프레임’은 재생산된다.
“새누리당이 4대강, 국정원 직원 댓글 의혹 국정조사 등을 받으면서 이걸 달라고 요구한 거다. 지난해 6월 개원 협상 때 합의했던 게 발단이다. 우리가 (합의 이행을) 계속 거부하니까 새누리당은 종북 세력을 비호한다며 정치 공세를 폈고, 그에 대한 부담이 컸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3월17일 합의문에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과 관련한 자격심사를 하기로 못박았고, 검찰이 두 의원에 대해 기소조차 하지 못한 만큼, 이석기·김재연 의원도 이참에 클리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새누리당과 ‘주고받기’를 했고, 그 이유는 ‘종북 비호’란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지만, 자격심사는 ‘종북 논란’과 관련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 이석기·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국회의 자격심사는 타당한가. 두 의원은 3월18일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과 관련해 자신들에 대한 자격심사안을 다루기로 합의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김정은·북한을 공공연히 두둔하는 세력…”

그러나 종북 논란은 이미 불붙었다.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3월22일 국회 본회의에서 “우리 국회 안에 김정은과 북한을 공공연히 두둔하고 있는 세력이 있다. 애국가도 부르지 않는 종북 세력이 공공연하게 활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민주당은 자신들의 도움(야권 연대)으로 국회에 들어온 통합진보당이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행태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공식적으로 밝히라”고 압박했다.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가결된다. 민주당은 처리할 생각은 없다는 태도이지만, 스스로 ‘종북 프레임’의 덫에 들어간 꼴이다.
두 의원을 상대로 ‘사상 검증’을 하겠다는 새누리당의 의도는 노골적이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종북 논란의 핵심에 있는 두 분인데, 대한민국 심장부까지 종북 주사파 세력이 들어갔다는 데 대해 국민들이 크게 걱정하고 있다”(3월20일 YTN 라디오)고 말했다. 자격심사안을 다룰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이군현 의원은 “어떤 정치인의 견해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에 위배된다고 생각되면 국회에서 논의될 것”(3월19일 CBS 라디오)이라고 말했다. 표현은 점잖지만 의도는 다르지 않아 보인다. 두 의원이 종북인지 아닌지 따져 의원직을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머리를 열어보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요구를 민주당이 수용한 것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씨는 “나는 이 문제를 특정 정당, 특정 의원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지 않다. 이게 어디 민주당과는 무관할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내 눈에는 민주당에도 빌미만 있으면 색깔론 앞에서 정치 생명을 위협당할 의원이 여럿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을 정치적 이유로 자격심사하는 선례를 남긴다는 점에서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는 우리 정치사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당의 합의 이틀 전인 3월15일 임수경 민주당 의원의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배정을 둘러싼 설전을 보면, 이런 우려가 현실화하지 말란 법도 없어 보인다. 이철우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국회 정론관 브리핑에서 “민주당은 친북좌파의 중심에 서 있는 임수경 의원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으로 보임했다”고 공격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동네 시장골목 술자리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을 국회 정론관에서 마이크를 잡고 공식적으로 한다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라며 격분했다.
민주당 안에서도 이번 자격심사 합의는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영환 의원은 “우리가 그분들의 정치적 소신에 대해 반대하는 것과, 여야가 합의해서 징계에 착수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기본권에 관련된 문제인데, 우리 당이 그런 문제에 나서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종북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는 두 의원의 태도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정치 보복, 마녀사냥이라고 반발하면서 종북 논란에 대해서는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태도인데, 대중 정치인이라면 대중의 불신에 대해 정확한 입장을 밝히는 데 인색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부정경선 문제가 자격심사 대상이 될까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경선 문제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김기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검찰 수사 결과 두 의원이 비례대표 2번, 3번 후보로 등재된 비례대표 득표 순서는 허위 부정투표에 의해 작성된 명부라는 게 명백하게 확인됐다. 그런 면에서 두 의원은 자격을 갖추지 못해 당선 효력이 없으며, 자격심사를 통해 배제해야 한다는 판단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는 “사법기관의 유죄 인정과 무관하게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자율권이다. 두 의원이 억울한 사정이 있다면 심사 과정에서 충분히 소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알아서 하라’는 태도다. 두 당의 이런 태도는 부정경선 사태 이후 통합진보당에 대한 대중의 정치적 신뢰가 무너진 상황인 만큼 정치적으로 불리할 게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이석기·김재연 의원 등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비례대표 경선 자체에 부정·부실이 있으니 경선으로 뽑힌 의원 모두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는 비당권파의 주장을 “특정 정파 죽이기 음모”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하고, 두 의원에 대한 제명안이 부결되면서 당이 둘로 쪼개진 바 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수사 결과 발표 때 “인터넷 투표에서 광범한 대리·중복 투표가 있었다”며 업무방해혐의 등으로 20명을 구속 기소하고 44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전체 기소자 가운데 이석기 의원 쪽 관련자가 가장 많았고 김재연 의원 비서도 포함돼 있었지만, 두 의원의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비례대표 부정경선 문제가 자격심사 대상이 되느냐도 불명확하다. 헌법상 자격심사 청구 사유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법에는 “의원이 다른 의원의 자격에 대해 이의가 있을 때에는 30인 이상의 연서로 자격심사를 의장에게 청구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이의가 있을 때’라는 조항도 모호하고 주관적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정치적 찬반의 입장을 떠나 일이 이렇게 추진돼선 안 된다. 비례대표 선출은 기본적으로 정당 내부의 문제이기 때문에 국회 차원의 개입은 신중해야 하고, 자격심사를 추진하더라도 (사법부의) 최종판결이 난 이후에 하는 게 바람직하다. 자격심사가 남용되면 국회 다수파가 국민이 선출한 소수당 의원을 손쉽게 제명시키는 구실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법학)도 “통합진보당 노선에 동의하지 않고, 지난 비례대표 경선 당시 관련 후보들은 모두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후순위자가 계승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두 의원은 유죄판결은 물론 검찰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자격심사 과정은 두의원에 대한 사상 검증 작업을 수반할 것임이 분명하다. 두 의원에 대한 심사는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으로 이뤄져야 하지 위헌 소지가 다분한 자격심사와 사상 검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일부 극우, 빨갱이 용어 ‘복원’ 주장도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종북 프레임의 덫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보수 세력은 ‘우리 편 아니면 무조건 종북’이라는 극단적 프레임으로 활용하고 있다. 심지어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극우보수 매체인 (조갑제닷컴)이 지난 6월 펴낸 (종북백과사전)을 들고 다닌다. 이 책은 한명숙·이해찬 전 국무총리,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문재인 민주당 의원,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을 종북으로 규정했다. 아나운서 출신인 정미홍씨는 지난 1월 트위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등을 지목해 “종북 성향의 자치단체장들을 모두 기억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퇴출시켜야 한다”고 했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아티스트 낸시랭까지 종북이라고 공격했다. 보수단체 집회에서 ‘빨갱이’ ‘친북좌파’ 대신 ‘종북’이 쓰인지 오래다. 일부 극우 인사들은 빨갱이란 용어의 ‘복원’을 주장하기도 한다. 극우 논객 지만원씨는 지난해 5월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빨갱이와 종북 세력은 어떻게 다른가? 빨갱이에는 역사가 있지만 종북 세력이라는 말에는 역사가 없다. 빨갱이라는 단어는 1946년 후반부터 북한에 진주한 소련 당국의 연출에 따라 남한에서 폭동·파업·살인·방화 등을 일삼던 남한 폭력배 및 이단자들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었다. (중략) 하지만 종북 세력이라는 말은 김대중 이후 빨갱이를 차마 빨갱이라 부르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 그 강도를 한 단계 낮추고 순화하여 지어낸 대체 용어였다. 그래서 종북 세력이라는 말에는 역사가 없고 기개와 힘이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실제로 종북이라는 용어가 진보 진영 내부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처음 사용된 것은 2001년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통합 논쟁 때다. 당시 사회당은 민주노동당의 통합 제안에 반대하면서 “민중의 요구보다 조선노동당의 외교정책을 우위에 놓는 종북 세력과는 당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회당은 ‘친북’이라는 표현 대신 ‘종북’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친북 세력에는 종북 세력, 즉 조선노동당 추종세력 말고도 북한과 친해지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무줄 개념을 쓸어내는 게 정치 개혁”

종북이란 말이 대중의 관심 영역에 들어온 것은 2006년 민주노동당 일심회 사건 때다. 당시 조승수 의원은 당내 자주파 일부를 종북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통합진보당에서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가 터지자, 보수언론들은 당권파를 종북 세력이라고 칭했다. 이후 종북 프레임은 보수 세력에게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을 받아온 빨갱이란 용어를 대체하는 새롭고 강력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김대호 소장은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지적 수준을 떨어뜨리는 개념이 대표적으로 종북·빨갱이·친노 등인데, 사실은 개념 규정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고무줄 개념을 쓸어내는 게 정치 개혁의 첫 번째”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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