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5일 월요일

"사장님, 직원들 SNS 감시하지 마세요!"


이글은 미디어스 2013-03-25일자 기사 '"사장님, 직원들 SNS 감시하지 마세요!"'를 퍼왔습니다.
[이용석의 노동자로 살며 읽기]프라이버시와 감시사회의 문제


회사 상사가 부하직원 SNS를 보는 건 감시일까?
나는 지금껏 SNS에서 딱 두 명을 블락 혹은 차단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 인사, 노무, 관리, 회계를 담당하는 경영지원부장이다. 트위터에서 내가 회사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대표이사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면, 경영지원부장이 관심글로 두는 게 아닌가. 헌데 내 글만 그러는 게 아니라 다른 직원들 트위터, 심지어 팔로우도 안 한 직원들 트위터도 회사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가 있으면 관심글에 담아두었다. 회사 책 홍보하는 트윗은 놔두고 회사 흉보는 것만 관심글에 담는 게 기분이 안 좋았다. 심지어 “내일은 퇴사자 OOO과 약속있는디” 같은 멘션도 관심글에 담아두었다.
그래서 트위터 블락하고 페이스북 차단했다. 뭐 블락해도 보려고 맘먹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거 알지만, 블락해버렸다. 또 한 명은 방금 위에서 말한 경영지원 부장과 굉장히 친한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다니던 회사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다른 회사 대표이기도 하다. 이 사람은 나를 팔로우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경영지원부장을 블락한 다음부터, 경영지원부장이 관심글로 두었을만한 글들을 자기 관심글에 두는 게 아닌가. 그 전까지는 내 글을 관심글에 둔 적도 리트윗 한 적도 거의 없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블락해 버렸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노동조합을 만들 때, 왜 꼭 지금 노동조합을 만들어야하는 사람이 짜증나서 내 블로그에 이른바 시기상조론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썼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선수협 만들 때,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제 주장할 때 등장했던 시기상조론에 빗대어 시기상조는 결국 권력의 편이라고 썼다. 그리고 나서 얼마 뒤 회사 회식자리에서 우연히 상무이사 옆에 앉았는데, 상무이사가 공개적인 곳에다 회사 이야기를 쓴 건 잘못이라고 했다. 나는 내 블로그는 공개적인 곳이 아니며, 내가 쓴 글은 고유명사가 하나도 안 들어갔고 공개적인 곳에 쓰더라도 아무 문제가 될 게 없는 글이었다고 대답했다.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고, 내가 이명박 정권이 언론 통제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하니까 상무이사가 자기를 이명박과 비교했다며 화를 내면서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위 두 사건에서 나는 무척 기분이 나빴다. 회사 간부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블로그나 트위터가 완벽하게 사적인 공간도 아니고,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찾아와볼 수 있는 거라서, 회사 사람들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그렇더라도 실제로 내가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기분이 상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 567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가 7호선의 모든 전동차 객실 내부에 설치한 CCTV ⓒ 연합뉴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감시에 대해서는 아주 고전적인 감시를 제외하곤 이해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한홍구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국가 정보기관이 도청을 하거나 미행을 하는 것 같은 행동들 말이다. 혹은 CCTV나 전자주민증처럼 감시사회의 상징이 된 것들 정도에 내 상상력은 머물러 있었다. 병역거부로 감옥에 있을 때, 교도관들이 복도를 걸어다니며 눈으로, 사무실에 앉아서 CCTV로 감시한 것. 내가 당한 감시를 떠올리면 딱 이정도가 떠오를 뿐이었다. 그런데 회사 다니면서는 겪은 위의 두 일 덕분에 감시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감시사회'를 읽게 됐다.
감시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감시의 주체가 주로 국가권력이었다면, 갈수록 기업이나 사적인 권력을 통한 감시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무슨 문제점을 초래할 수 있는지 '감시사회'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우리가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입력하는 정보를 통해, 우리의 소비 패턴이나 정치 성향을 분석해 맞춤형 마케팅을 한다는 것을 얼핏 알고는 있었는데,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온몸이 으스스해졌다. 내 욕망은 나만 온전히 아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족도 애인도 친구도 완벽하게는 알 수 없는 내 욕망을 기업이 분석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기업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분석에서 끝나지 않고, 내 행동을 조작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감시사회에서 침해당하는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이야기들도 흥미로웠다.
프라이버시가 거대 권력에 의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하면서도 단편적인 주장을 넘어 복잡하고 다층적인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 CCTV에 대한 최철웅의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흥미로웠다. CCTV를 바라보는 인권의 시각은 ‘자유프라이버시권의 침해’인데 최철웅은 프라이버시나 시민권적인 측면보다 계급적 불평등으로 CCTV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안보나 치안은 사회 공공재인데, 이것이 상품화 되면서 비싼 CCTV를 살 능력이 되는 동네부터 설치가 된다. 범죄라는 게 풍선 효과가 있어서 강남구에 CCTV가 많이 생기면, 결국 도둑들이 다른 지역으로 가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범죄에 노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또한 CCTV는 하층민의 소소한 범죄만을 겨냥한다고 지적한다. CCTV가 잡을 수 있는 (CCTV의 범죄 예방 효과는 논외로 치자면) 범죄는 길거리 도난이나 폭력 같은 유형일 뿐, 기업인들이나 정치인들의 권력형 범죄는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흥미를 끌었던 이야기는 엄기호가 제기한 프라이버시권의 상업화에 관한 문제의식이다. 누군가 블로그나 SNS에 올린 글이나 사진을, 다른 이가 허락을 받지 않고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분명 프라이버시 침해다. 그런데 이 해결이 갈수록, 소유권을 주장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 정보를 쓰려거든 내 허락을 받아라”는 태도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소유권 문제로 접근하다보면, 결국 감시나 통제와 관련된 이야기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엄기호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 주장이 소유권이나 지적재산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되는 것을 경계하며, ‘프라이버시를 사라질 권리, 보이지 않을 권리, 물러날 권리로 새롭게 사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시와 프라이버시에 대한 이해가 한층 복잡해진 까닭은 CCTV 같은 감시 기술의 발달도 있겠지만, 웹을 기반으로 한 개인 매체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 아닐까? 한홍구의 말마따나 옛날 정보기관은 개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을 가장 궁금해 했는데, 요새는 사람들이 자기가 산 책이나 읽은 책을 블로그나 SNS에 올리니, 검색 한 번이면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요새 누구와 자주 만나는지, 어디를 가는지 따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일부러 감시를 해야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지금은 사람들이 스스로 알려주니 감시의 방법도, 감시의 의미도, 달라진 게 분명하다.
그래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논란이, 그리고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진 논란이 바로 SNS를 둘러싼 논란이다. 회사들이 직원들의 SNS 글을 보고 그 내용을 간섭하거나 혹은 회사에 비판적인 글이 있다고 징계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글 초반에 밝힌 내 경험도 여기에 해당하는데, 회사 상사들이 알려주지도 않은 내 블로그 글을 몰래 보는 것이 감시고, 글을 보고나서 나에게 한 마디 하는 것이 통제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상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SNS는 공개된 공간이며 공적인 공간이라는 것이다. 사실 SNS는 공적인 공간이기도 하고, 사적인 공간의 경계가 애매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 간에 이런 서로 다른 해석이 생기는 거라 생각한다. 최철웅도 SNS의 경우는 감시라기보다는 달라진 소통 방식의 결과라고 이야기 한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SNS에서 회사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글을 정기적으로 살펴보거나, 살펴본 것을 바탕으로 어떤 식으로든 아랫사람에게 SNS 글을 언급하는 것은 감시가 맞다. 차단을 해 놨거나 블락 걸어놓은 것을 일부러 와서 보는 건 당연히 감시겠지만, 들어와서 보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 어느 직원은 대표이사가 그 직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OOO가 전세계인이 보는 트위터에 회사 욕을 하고 있다. 계속 이러면 내 임기 중에 부득이하게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한 뒤, 회사 경영진과 친한 사람을 다 블락해야만 했다.
이런 일을 겪게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 글을 검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최철웅이 말한 것처럼 ‘피감시자인 주체를 통제하거나 훈육하는 효과’인 것이다. 과거의 감시처럼 피감시자의 일상 정보를 얻기 위함은 아니지만, 권력은 감시를 통해서 효과를 얻는다. 내가 감시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권력 관계에 있다.
사실 사전적인 의미로 감시는 그리 나쁜 게 아니다. 한홍구의 말처럼, 감시는 민주주의에서 꼭 필요하다. 국민이 국가 권력을 감시하고, 노동자가 경영진을 감시해야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권력을 가진 쪽에서 그렇지 않은 쪽을 감시할 때다. 국가가 국민을, 기업이 소비자들을, 회사가 노동자를 감시하는 것이 문제다. 효율적인 통제를 위해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하고 싶어하는 게 권력의 속성이라고 홍성수는 말한다. 엄기호는 불안이 감시와 통제를 부른다고 말한다. 권력은 불안을 이용하고, 사람들은 안전하기 위해 자기 권리를 자발적으로 반납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어찌됐든, 감시는 권력과 뗄 수 없는 관계다. 감시 기술이 아무리 스마트해지더라도, 사람들이 관계 맺는 방식이 아무리 달라지더라도 감시는 결국 권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민간인까지 감시하는 대한민국 정부도, 편리함을 미끼로 내 욕망을 감시하는 거대 기업들도, 내 트위터 보며 관심글로 자꾸 담아두던 경영지원 부장도 다들 나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이들이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한 마디다. “사장님, 이사님, 실장님, 부장님들! 부하직원 SNS 들여다보면서 뭐라뭐라하지 마세요. 우리를 감시하지 마세요!”

이용석 / 출판노동자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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