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IN 2013-03-26일자 기사 'MB 낙하산 자리에 박근혜 낙하산 투하?'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수위 때의 말을 뒤집고 낙하산을 대거 투입할 태세다. MB 낙하산이 기관장으로 있거나 평가가 안 좋은 곳들이다. 감찰기관을 동원하는 방식도 MB와 비슷하다.
2008년 2월26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 다음 날. 한국거래소(KRX) 신임 이사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열렸다. 후보는 9명. 추천위원회는 3명으로 압축했다. 거래소 경영지원본부장을 지낸 이정환 후보를 낙점했다. 그는 그해 3월21일 임기 3년이 보장된 이사장에 올랐다.
취임한 지 열흘 뒤, 느닷없이 금감원이 2007년 종합검사 결과를 꺼내 골프접대비 등의 경비지출이 과도하다며 거래소에 대해 징계 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두 달 뒤인 5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가 들이닥쳤다. 이사장실까지 압수수색한 검찰은 그해 8월까지 비리 의혹을 강도 높게 조사했다. 하지만 검찰은 형사처분 대상자를 단 한 명도 찾지 못했다.
결국 이정환 이사장은 2009년 10월 물러났다. 그는 퇴임사에서 “임기 내내 사퇴 압박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왜 임기 내내 사퇴 압박에 시달렸을까? 후보추천위원회가 이사장 후보를 9명에서 3명으로 압축한 과정에 답이 있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 금융권 4대 천황으로 불리게 되는 이팔성 당시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현 우리금융 회장)가 3명에도 끼지 못하고 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낙하산 인사가 먹히지 않고 불시착하자,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다. 낙하산 불시착을 ‘공직기강 해이’ ‘통치권 불안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검찰·감사원 등을 동원해 감사와 수사를 병행하며 공공기관장 물갈이에 나섰다.
요즘 5년 전 한국거래소 사태 악몽을 떠올리는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물갈이 쓰나미 경보가 울리면서다. 인수위 시절만 해도 안심했다. 박근혜 당선자는 지난해 12월25일 “공기업 등에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선임해 보낸다는데 잘못된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앞으로 낙하산 인사를 막겠다는 인수위 정책도 발표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3월11일 박근혜 대통령이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산하 기관 물갈이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청와대 입성 뒤 말이 바뀌었다. 박 대통령은 3월11일 첫 국무회의에서 “각 부처 산하 기관장과 공공기관장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장 물갈이 경보가 울린 것이다. 준정부기관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말한 ‘국정철학 공유’에 주목했다. 이 관계자는 “국정철학을 공유한 인사란, 결국 캠프 사람이거나 자기 사람이다. 또다시 낙하산을 내려 보내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라고 싸늘하게 평가했다.
청와대가 인사권을 쥔 곳은 공기업 30곳, 준정부기관 87곳, 기타 공공기관 178곳 등 295곳이다. 공기업 30곳과 준정부기관 87곳은 대통령이 직접 인사권을 행사하고, 기타 공공기관 178곳은 각 부처 수장이 제청권을 행사하는 등 인사 방식이 다르다. 그러나 2008년 한국거래소 사태처럼 사실상 정부 입김이 작용하는 공공기관의 장·감사·임원 등의 자리는 6000여 곳에 이른다.
강만수·어윤대·이팔성 교체 대상 거론
현재 공기업·공공기관 쪽에서는 ‘물갈이 쓰나미’의 진로를 가늠하느라 여념이 없다. 진로를 가늠할 수 있는 곳은 먼저 서울 송파구 조세연구원에 마련된 공공기관평가단 사무국이다. 올해 평가 대상인 117개 공공기관이 2012년 경영실적 자료를 제출하고 있다. 매년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경영평가이지만, 때가 때인지라 이번 평가 결과가 살생부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공기업 로비를 막기 위해 이번에는 처음으로 159명에 달하는 평가단을 비공개로 진행한다.
관가나 공기업 쪽에서는 1차 물갈이 대상으로 MB 정부 낙하산이 기관장으로 있거나 지난해 경영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은 곳을 꼽는다. 현재 MB 정부 대못 인사로 분류되는 이들은 금융권에서는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산하 13개 공공기관과 5대 금융사 등 모두 26곳 가운데 19곳에 포진해 있다. MB 4대 천황 가운데 한 명인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은퇴했지만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임기 2014년 3월), 어윤대 KB금융 회장(임기 2013년 7월),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임기 2014년 3월)은 현직이다. 노조로부터 MB 낙하산이라며 출근 저지를 당했던 신동규 농협지주 회장도 임기가 내년 6월까지다. 금융권은 이들의 거취가 최대 관심사다.
금융권 외에 MB 낙하산 인사는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을 비롯해 ‘한반도 운하 연구회’ 회장을 지낸 장석효 한국도로공사 사장, 현대도시개발 사장 출신 김선규 대한주택보증 사장, 감사원 출신인 정창영 코레일 사장, 한반도 대운하 특별위원회 특보 출신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현대건설 출신 정승일 지역난방공사 사장, 현대건설 출신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등이다. 이들도 잔여 임기와 무관하게 ‘국정철학 공유’라는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난 인사로 찍혀 있다.
여기에 지난해 공공기관 평가에서 낙제점인 D 등급과 E 등급을 받은 대한석탄공사, 한국석유공사 등 13곳과 기관장 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았던 공공기관이 1차 물갈이 대상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공공기관 평가라는 객관적인 지표도 정권 초반기 물갈이 근거로는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2011년 경실련의 이명박 정부 공공기관장 임명 분석 자료를 보면, 기관평가 점수와 별개로 기관장 교체가 이뤄졌다. 예를 들면 MB맨들이 수장으로 있었던 부산항만공사와 한국지역난방공사의 기관평가는 공기업 가운데 최하위였지만 연임되었고, 이 기관보다 평가가 우수했던 한국전력공사 등은 기관장이 교체되었다.
‘MB 낙하산’에서 ‘박근혜 낙하산’으로 브랜드만 바뀌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새 정부 1호 공공기관장 임명에서 현실화되었다. 예술의전당 사장에 고학찬 윤당아트홀 관장이 임명됐는데, 문화예술계에서는 당장 낙하산 인사 1호로 규정했다. 고 사장은 방송계 출신이고 공연계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낙하산 1호 투입에 맞춰, 국무총리실·행정안전부·감사원은 공직기강 해이를 막겠다며 전방위 감찰에 들어갔다.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은 35명 직원을 총동원해 조사에 들어갔고, 행안부도 감찰인력 250명을 모두 투입했다. 2008년 공공기관 물갈이 물꼬를 튼 감사원도 이번에 공직감찰본부 소속 감찰인력 85명을 전부 투입해 특별점검에 나섰다. 2008년 덮쳤던 공공기관 물갈이 쓰나미 행태가 ‘이명박근혜’ 교체기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고제규 기자 |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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