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5일 금요일

“이런 곳에 아이들이 남아 있다니 끔찍하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3-14일자 기사 '“이런 곳에 아이들이 남아 있다니 끔찍하다”'를 퍼왔습니다.
[기고] 원전사고 2년, 日후쿠시마 피해자가 체르노빌에서 찾은 진실 (상)

2년 전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자들이 일본의 ‘미래’를 찾기 위해 1986년 원전폭발사고가 있었던 우르라이나 체르노빌을 찾아 원전사고의 심각성을 취재했다. 이 내용은 지난 10일 OBS에서 ( 0.23 μSV - 후쿠시마의 미래 )라는 이름으로 방영됐다. 해당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이홍기PD는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을 오가며 현장을 담았다. 미디어오늘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2년을 맞아 2번에 걸쳐 그의 취재기를 싣는다. (편집자 주)

지난 3월 11일은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지 2년째 되는 날이었다. 세계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었던 원전 사고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취재팀이 들춰본 일본의 속살은 심각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따뜻한 모닝커피를 마시는 대신 집안의 방사능을 측정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삶.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방사능 걱정 없는 아주 먼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아기 엄마들. 가설주택단지의 컨테이너 박스에 살며 구호품으로 연명하고 있는 피난민들. 야생동물이 휘젓고 다닐 만큼 폐허가 된 고향 땅…그러나 더 큰 문제가 내재되어 있었다.
호세이 대학 철학과의 마키노 에이지 교수는 일본은 지금 침몰 중이라고 한탄했다. 원전 사고는 사고 그 자체 보다 후유증이 더욱 무섭고 심각했다. 그 점을 걱정한 17명의 일본 시민들이 별난 조사단을 만들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후쿠시마의 미래, 그것이 알고 싶어 체르노빌을 찾아간 것이다.

지난 2011년 3월 11일 11시 1분 일본 후쿠시마 해역에서 강도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에 이어 쓰나미가 덮쳐 후쿠시마 제1원전은 연쇄 폭발했다. 당시 사망자 수는 12,000명 실종자는 15,000명 이상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원전에서 30km 떨어진 권역(미나미소마시)은 2년이 지난 지금도 피난 갔던 주민 중에 2만 명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빈집과 상점들이 한두 군데가 아니고 주민들의 걱정 또한 많아보였다. 시청 앞에 놓인 공기 중의 방사선량을 측정하는 측정기의 수치가 일본이 정한 기준치인 0.23마이크로시버트보다 높은 0.31마이크로시버트를 나타내고 있었다.
시 외각 지역에서는 제염작업이 한창이었다. 오염된 땅을 긁어내고 그 위에 깨끗한 흙을 덮는 원시적인 작업이 고작이다. 미나미소마시의 1/3은 아직도 사람이 살 수 없는 경계구역으로 매우 위험한 지역에 속한다. 수거한 흙은 가까이 가면 피폭 될 수도 있는 물질이다. 그런데도 오염지역에서 수거한 흙은 다른 지역에 버릴 수 없게 되어있다. 그래서 미나미소마에선 근처 산 속에 임시 저장소를 마련했다.

취재팀은 좀 더 안까지 들어가 보기로 했지만, 원전에서 10km 떨어진 지점은 경비가 심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제염작업은 도처에 어려움이 따랐다. 도쿄 대학의 고다마 다츠히코 교수는 “후쿠시마는 향후 30년에서 50년에 걸쳐 방사능 오염제거작업을 해야 합니다. 저희 계산으로는 집 한 채 오염 제거하는 데 평균 5백만엔은 든다고 판단하지만, 정부에서는 70만엔만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도 함께 살기 위해서는 5백만엔이 들더라도 제대로 깨끗하게 방사능 물질을 제거하는 것이 정부와 도쿄전력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미나미소마에 있는 한 보육원 정문에 있는 선량계에서는 거의 기준치보다 낮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 지역주민 요시다씨는 이러한 수치는 오염제거작업을 하지 않으면 이 지역에서 나올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10m쯤 떨어진 곳에서 정문보다 3배 이상 높은 0.56이 나왔다. 이렇게 오염 된 지역은 곳곳에 퍼져 있었다.
요시다씨는 말했다. “여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닙니다. 실제로 도쿄전력의 원전 내부라면 풀 페이스 마스크 (방독면)을 써야할 정도의 방사선량입니다. 맙소사, 이런 곳에 아이들이 남아있다니 끔찍하네요.”
그렇다면 미나미소마의 산모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출산을 눈앞에 둔 산모를 산부인과에서 만났다. 주위에선 아이를 포기하라 했지만 그녀는 아기를 갖고 싶어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미나미소마의 시민들은 실낱같은 희망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있었다.
40년 넘게 방사능 피해를 연구한 오사카 대학의 명예교수인 노무라 타이세이박사를 만났다. 방사능 피해의 유전여부는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지만 노무라 타이세이 박사는 쥐 실험을 통해서 방사능에 피폭되면 후손에게 암이나 기형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증명했다.

노무라 타이세이 박사는 방사능 피해의 후유증이 오랜 시간 후에야 나타난 점을 잊지 말라고 충고했다. “원자 폭탄의 경우는 별개로 하고 방사능 피폭에 의한 패해의 95%가 암입니다. 잊어버렸을 때쯤 발견합니다. 당장은 아닙니다. 지금 그것을 인식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습니다. 그 점을 주민들에게 인식시켜야 합니다. 미량이니까 괜찮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수십 년 후가 될 것입니다.”
2년이 지난 이 지역은 여전히 쑥대밭이었다. 20km권역이내 지역은 경계구역으로 해당 지역 주민 약 30만명은 피난(추정)하여 현재까지 거주 금지 구역으로 선포되어 있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죽음의 땅은 멧돼지 등 야생동물이 휘젓고 다닐 만큼 폐허가 되었다. 취재팀은 좀 더 안까지 들어가 보기로 했으나 원전에서 10km 떨어진 지점은 경비가 삼엄하여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해안가에서 멀지않은 ‘신치’라는 곳의 가설 주택단지를 찾았다. 현재 250명의 신치 주민들이 피난을 나와 임시로 살고 있는 곳이다. 이들은 500세대 정도의 마을이 쓰나미로 모두 휩쓸려가 집을 잃은 사람들이다. 원래 이들은 거친 바다와 싸우며 그물을 당기던 강인한 어부들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바다에 나가 쓰나미로 인해 발생한 쓰레기를 수거 하는게 고작이란다.

250명의 주민들이 피난을 나와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신치 가설주택단지.

지진과 쓰나미와 원전사고는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차디찬 겨울, 부족한 게 많은 피난 생활이지만 그들은 이웃을 배려하며 함께 고통을 극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안정한 피난 생활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복구와 재건 제일 중요한 점은 내 집을 마련해 자립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2년 이 다되어가는 지금도 전혀 엄두도 못 내고 이전할 땅 조차 준비되지 않아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큰 걱정입니다.”(요코야마 다가시, 신치 가설주택단지 주민)
원전이 폭발한지 열흘 후 후쿠시마의 검은 먼지는 비바람을 타고 날아와 200km나 떨어진 치바현에 내렸다. 그때부터 치바현도 방사능 공포에 휩싸였다. 치바현에 사는 주부 시바타 씨는 원전 사고 이후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오고 있다. 시청이 측정한 방사능 오염 수치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다.
그녀의 집 앞 4차선도로와 인도사이의 경계지역을 가리키며 “여기가 트위터에서 많이 알려진 소위 검은 물질이 축척되어있던 곳 이예요. 선량 4.5마이크로 시버트였어요. 딱 이 부분만 그래요. 50cm만 떨어져도 선량이 뚝 떨어져요. 이 부분에만 집적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곳이 시로이 시에서는 다반사예요.”
어린이 놀이터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고문이 붙어 있었지만 방치 된 거나 다름없었다. 선량이 높기 때문에 블루시트를 덮어 두고 놀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원전이 폭발 2년. 많은 시민들은 애써 그날의 공포를 잊고 싶어 하며 서로 그 주제의 대화조차 꺼려했다. 그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어린아이를 가진 엄마들은 사정이 달랐다. 치바현 시로이 시에 사는 엄마들을 만났다. 그들의 고민은 한결같았다. 경제적인 여유만 있다면 아주 멀리 방사능 없는 아주 깨끗한 지역으로 이사 가고 싶어 했다.
“방사능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어딘지 모르게 망가진 것 같아요. 그런 속에서도 그럭저럭 아이들은 자라겠지만 앞으로 병에 걸리거나 암이 생기면 방사능 때문인가 하고 책임을 느낄 것 같아요. 영원히 이것은 계속될 거라고 봅니다.”(이토 나오미, 시로이 시 주민)
“정부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항상 들어요. 우리 주민들 스스로가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진실을 말해주길 바랍니다.”(하세가와, 시로이 시 주민)

그래서 뜻이 통하는 사람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17명의 평범한 일본시민들이 별난 조사팀을 만들었다. 전국각지에서 모인 대부분 초면의 사람들이다. 후쿠시마에서 온 츠치야마 씨와(생활협동조합 전무) 시바타 씨(치바현 시로이시 주민)도 휴가를 내서 참가했다.
이번 조사팀을 이끄는 단장은 오랫동안 일본에서 생활환경과 식품안전 운동을 벌이고 있는 고와카 준이치(식품과 생활안전기금 대표 사이타마현)씨다. 조사단은 원전 인근의 폐허가 된 마을이나 원전내부 그리고 피난한 주민들을 취재하기로 했다.

헬기로 상공에서 총 500톤에 이르는 모래와 점토 등이 투입돼 에워싼 체르노빌원전 4호기 석관.

체르노빌과 같은 수준인 ‘레벨 7’의 심각한 사태를 일으킨 후쿠시마 제 1원전 사고에서 방출된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는 장래에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 인가? 조사단은 이를 위해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했던 우크라이나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곳에서 일본이 배워야할 것을 배우기로 했다.
체르노빌 원전 4호기에서 사고가 일어난 것은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4분. 원자로내부 핵분열반응의 제어가 불가능해진 결과 원자로가 폭주, 멜트다운(노심융해)이 일어나 폭발했다. 원자로는 격내 용기가 없는 흑연감속 경수로냉각형(RBMK)이며, 핵분열을 효율화하는 감속재로서 흑연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해 대량의 방사능이 대기 중에 방출되었다.
이를 막기 위해 헬기로 상공에서 총 500톤에 이르는 모래와 점토 등이 투입되었고, 4호기를 에워싼 ‘석관’이 206일간의 공사로 1986년 11월에 완성됐지만 그 내부에는 여전히 250톤의 방사능물질이 남아있다. (하편에서 계속)

이홍기·독립PD |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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