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2일 금요일

박근혜 대통령의 언론관 ‘밀봉 브리핑’


이글은 시사IN 2013-03-13일자 기사 '박근혜 대통령의 언론관 ‘밀봉 브리핑’'을 퍼왔습니다.
발표 내용의 속사정을 전해주거나 단점을 지적하는 ‘입’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점점 멀어진다. 박 대통령은 공식 결정사항을 단순 전달하는 정도로 언론 기능을 한정하려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는 대단히 방어적이다. ‘메시지 통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대언론 창구의 기능을 ‘공식 메시지 전달’로 한정한다. ‘보안’이 최대 키워드가 되었고, 출범도 하기 전에 ‘밀봉 정권’이라는 별명부터 달았다. 

“어떤 촉새가 나불거려 가지고.”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지난해, 비대위원 명단이 몇몇 언론에 미리 풀린 것을 두고 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후 친박 핵심 그룹의 입은 그야말로 꽁꽁 얼어붙었다.  

‘촉새 경보’는 인수위 기간에 특히 위력을 떨쳤다. 굵직한 정책 개편안이나 총리·장관급 인사와 관련한 사전 취재는 씨가 말랐다. 지난해 12월27일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인수위원장 등 인수위 인선을 발표하면서 “나도 지금 본다”라며 밀봉 봉투에서 명단을 꺼내 읽었다. 박 대통령의 코드에 맞춘 ‘충성 과시용’ 퍼포먼스라는 해석이 나왔다. 

ⓒ시사IN 이명익 박 대통령은 언론의 검증 기능에 적잖은 불편함을 드러냈다. 사진은 지난해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모습.

“발표된 대로 하시면 된다.” 인수위 시절 출입기자 사이에서 회자되곤 했던 윤창중 대변인의 입버릇이었다. ‘백그라운드 브리핑’(취재진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공식 발표한 내용의 결정 배경과 과정을 비공식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예 실종되거나, 하더라도 영양가 없기로 악명이 높았다. 언론은 독자적인 검증과 취재를 진행하는 권력 감시기관이 아니라 받아쓰기 기관 취급을 받았다. ‘박근혜 타임’이라는 말도 유행했다. 인수위의 거의 모든 공식 발표가 오후 4시에 이뤄졌다. 일간지 마감시간과 방송 리포트 제작시간이 빠듯한 시간대다. 단순 사실 전달 외에 검증 취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밀봉’의 절정은 정부 출범 직전이었다. 출범을 앞두고 새 정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청와대 비서관 인선을 공식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숫자가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수석 바로 아래 직급인 비서관은 정부 각 부처와 수석실을 연결해 주는 핵심 포스트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일괄 발표를 해오던 관례를 별다른 이유 없이 뒤집었다.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문고리 권력’ 논란을 빚었던 ‘보좌관 3인방’은 모두 비서관 발령을 받았지만 언론 검증은 비켜갔다. 

박 대통령의 정치 궤적을 보면, 지금 보여주는 언론과의 관계 설정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2007년 대선 경선에서 발 벗고 뛰었던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경선이 끝나고 제법 시간이 지난 후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사견을 전제로 박 대통령의 단점 몇 가지를 지적한 적이 있다고 한다.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정치인과 기자 사이의 일상적인 대화였다. 하지만 이후 그는 친박계 핵심 그룹에서 멀어졌다. 지난 대선에서도 그는 별다른 구실을 맡지 못했다. 

18대 국회에서 박근혜 의원의 대변인 노릇을 해온 이정현 전 의원은 사석에서도 ‘박근혜’에 대한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법이 없었다. ‘백그라운드 브리핑’도 찬양 일색이었다. 기자들에게 속사정을 짚어주는 대변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전 의원은 두터운 신임을 얻었고 박근혜 청와대의 초대 정무수석으로 입성했다. 역시 공식 브리핑 위주로만 언론 응대를 했던 조윤선 대변인은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반면 박근혜표 공보 라인 치고는 비교적 ‘백그라운드 브리핑’이 있었던 한 대변인은 어느 순간부터 “사실상 물을 먹었다”라는 말이 들려오더니, 대선 이후에도 별다른 역할을 맡지 못하고 있다. 

공보 라인은 ‘외부 수혈’이나 ‘보은 인사’

대선 국면이 되자 박근혜 캠프 공보 기능의 취약점이 지적되었다. 무엇보다 ‘물량’이 문제였다. ‘공식 창구’ 하나로 공보 경로를 통일하는 ‘박근혜 스타일’ 탓에 친박계에 공보 인력풀이 충분하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는 친이계 대변인들을 대거 투입해 대응했다. 박선규·안형환·정옥임·조해진 등 대표적인 ‘친이계의 입’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캠프에 합류했다. 

친이계 출신으로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던 한 대변인의 평가는 이렇다. “확실히 친이계에서 대변인을 할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내부 사정을 두고는 사소한 것이라도 입조심을 하는 분위기가 크다. 그러다 보니 상대를 때리는 말은 더 공격적이 되더라. 할 게 그거밖에 없거든.” 그는 또, 친이계 중에서도 유독 공보 라인만 박근혜 캠프에 대거 합류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략·조직·재정 같은 핵심 부서에는 친이계를 받아줄 수가 없지. 하지만 박근혜 공보팀은 (속 깊은 브리핑이 사실상 금기여서) 굳이 코어 그룹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종의 ‘기능직’이다. 친이계를 받아들이는 데 별 부담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박 대통령의 대변인 인선 스타일을 보면 그녀가 가진 언론관이 잘 드러난다. 첫째, 박 대통령은 대변인이 언론에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 공식 결정사항만 전달하는 것을 분명히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대변인들은 언론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밀봉 브리핑’을 할 수밖에 없다. 공론장의 검증 기능은 취약해지지만 대변인 개인에게는 인사권자의 신임을 얻는 길이다. ‘밀봉’을 정권의 별명으로까지 만들어버리며 숱한 논란을 낳았던 윤창중 대변인은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 대변인으로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둘째, 공식 결정사항 전달로만 대변인의 구실을 한정하면서, 공보 라인은 비교적 ‘외부 수혈’과 ‘보은 인사’의 장으로 쓰이기가 쉬워진다. 대선 기간 중 화해 모양새를 갖춘 친이계 영입은 공보 라인에 집중되어 있었다. 보수색 강한 칼럼을 써온 윤창중 대변인 인선은 지나친 중도화에 불안감을 느낀 강경 보수층 달래기 성격도 있었다는 분석이다.

종합해 보면, 박 대통령은 공론장의 검증 앞에 정부를 노출시키기를 극도로 꺼리고, 공식 결정사항을 단순 전달하는 정도로 언론 기능을 한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대선 국면과 인수위 인선 등에서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을 때면 ‘언론 탓’을 하는 정서도 몇 차례 노출했다. 이는 전임 이명박 정부와 스타일이 크게 다르다. 최시중·이동관·신재민 등 언론계 출신 최측근으로 진용을 짜고 ‘언론 장악’이라는 평을 듣는 개입 정책을 썼던 MB 정부와 비교하면 ‘메신저’의 위상과 기능이 대폭 축소된 모델이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원체험은, 청와대가 정부는 물론 입법부와 사법부, 기업과 언론을 모두 틀어쥐고 국가 자원을 일사불란하게 동원하던 시절에 형성되었다. 정부와 언론의 긴장이 결과적으로 사회를 더 건강하게 해준다는 관점이 취약하다. 

“언론사가 대선주자 인터뷰를 보도하는 것은 국민과 공익을 위한 것이지 자사의 이익이나 대선주자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밀봉 정권으로 출범한 박근혜 대통령이 듣기 싫은 말일 수 있지만, 이 말의 ‘저작권자’ 역시 박근혜다. 경쟁자 이명박 후보에 한 발 뒤지고 있던 2006년 12월에 했던 말인데, 2008년 이후 ‘원톱’ 자리에 올라선 이후로는 이 말에 걸맞은 언론관을 보여준 적이 없다시피 하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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