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IN 2013-03-18일자 기사 '안철수와 민주당 ‘한판 붙자’'를 퍼왔습니다.
안철수는 왜 노원병을 택했을까? 안철수 세력은 민주당이 아니면서 새누리당을 이길 수 있는 대표 선수가 되려 한다. 안철수의 블루오션이 수도권과 호남인 이유다.
안철수가 돌아온다. 예상보다 빠르다. 안철수 대선캠프에서 공동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송호창 의원(무소속)은 3월3일 기자회견을 열고 “안철수 전 교수가 4월24일 서울 노원병 재선거에 출마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귀국일은 3월11일. 이로써 안 전 교수는 대선 이후 3개월여 만에 정치 일선에 복귀한다.
출마 선언으로 정국은 요동쳤다. 민주당의 반응은 특히 복잡하다. 노원병 무공천, 공천 후 단일화, 독자 완주, 안철수 영입까지 백가쟁명이다. 진보정의당은 입을 모아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이 지역구를 잃은 당사자인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안 전 교수의 출마를 ‘골목상권까지 침투하는 재벌’에 비유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논평조차 내지 않았다. 일단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3월11일 미국에서 귀국한 안철수 전 교수가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즉각 “안철수는 왜?”라는 질문이 주르륵 따라붙었다. 그는 왜 10월이 아니라 4월을 선택했나? 왜 부산 영도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수월한 서울 노원병인가? 선거 전략은 야권 연대일까 독자 돌파일까? 그가 금배지를 달 수 있다면, 다음 행보는 신당 창당일까 당분간 무소속일까?
안철수 측 인사들은 말을 아낀다. 대표적인 것이 신당 창당론이다. “신당론은 너무 앞서 나간 얘기다. 지금은 정말로 정해진 게 없다.” 안철수 측 핵심 인사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캠프 출신인 정연정 교수(배재대)가 신당 창당을 공언한 것을 두고는 “정 교수는 대선 때에도 적극적 신당론자였다. 신당은 합의된 입장이 아니라 개인 관측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조심스럽다.
중요한 단서는 송호창 의원에게서 나왔다. 송 의원은 안철수 출마 기자회견 이틀 후인 3월5일 보도자료에 의미심장한 문장을 집어넣었다. “지금까지 야권은 대안과 비전이 아닌 반여 단일화에 모든 것을 건 ‘반대의 연합’을 했다.” 더 이상 이런 정치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송 의원은 사실상 안 전 교수의 대언론 창구 구실을 한다.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송 의원은 후보 단일화를 두고 “일종의 담합이다. 담합이 시장을 왜곡시키듯 단일화도 정치 질서를 왜곡시킨다”라고 규정했다(송호창, “단일화는 일종의 담합이다” 인터뷰 기사 참조).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야권에서 나온 가장 수위 높은 단일화 회의론이다.내년 지방선거가 야권 내부투쟁의 장
이는 안철수 신세력(신당이든 아니든)의 기본 방향을 보여준다. 이제 반(反)새누리 연합은 절대적인 명제가 아니다. 당분간 핵심 경쟁 대상은 민주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야권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는, “민주당은 마음에 안 들지만, 새누리당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표는 준다”라는 정서가 만만치 않다. 진입장벽이 높은 단순다수제 선거제도 덕분에, 민주당은 반새누리 진영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야권 지지층은 민주당에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분노를 축적했다. 이 ‘새누리당에 반대하고 민주당에 분노한 유권자층’은 2002년 노무현, 2004년 민주노동당, 2007년 문국현을 거쳐 2012년 안철수를 띄워 올린 핵심 동력이기도 했다.
민주당이 아니면서 새누리당을 이길 수 있는 세력으로 인정받는 것. 여기가 안철수 신세력의 블루오션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분간은 ‘협력’보다는 ‘경쟁’의 시기가 될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가 많다.
선거 사이클이 절묘하다. 가장 가까운 전국선거는 2014년 지방선거다.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등 여러 차원의 선거가 중첩되는 데다가, 지방의회 선거에서는 중대선거구제가 적용된다. 한 선거구에서 당선자가 둘 이상 나온다. 범야권 세력이 내부 경쟁을 펼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선거다.
반면 그 다음 전국선거인 2016년 총선은 간결하다. 선거구마다 최다 득표자만이 살아남는 단순다수제 선거다. 따라서 ‘반새누리 단일 대오’를 요구하는 야권 지지층의 압력도 커진다. 야권 내부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기 힘든 선거다. 이듬해인 2017년에 치를 대선에서는 더욱 불가능하다.
그런 만큼 내부 경쟁의 공간이 열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 기간은 ‘단일화’가 부차적인 전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방선거를 전후해 ‘반새누리 대표선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 등 광역단체장 후보로 나설 만한 민주당 인물들에게 안철수 측이 러브콜을 보낸다는 말도 들린다.
부산 영도 출마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
안철수 측 핵심 인사는 “독점에 안주하는 민주당에도 자극이 필요하다. 경쟁을 해야 상호 발전도 있다”라며 최전선으로 두 곳을 지목했다. 호남과 수도권. 호남은 민주당의 최대 지지 기반인 동시에,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크게 누적된 지역이기도 하다. 새누리당 기반이 없다시피 하므로, 안철수 신세력이 민주당과 일대일 경쟁을 벌이기 좋다. 수도권은 ‘새누리당을 이길 수 있는 세력’임을 증명하기 위해 필히 잡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안 전 교수가 부산 영도 출마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이철희 소장은 “안철수 전 교수가 부산 출마를 택하면 영남 대표주자 이미지가 생긴다. 그러면 오히려 호남에서 불리하다. 안철수 본인이 서울에서 나오는 것과 비교하면 수도권 화력도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민주당과의 경쟁을 고려하면, 부산은 애초에 선택지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안철수 캠프에 참여했던 정연정 교수는 “노무현의 길은 문재인이 계승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안철수 앞에 놓인 전선은 노무현의 그것과 다르다는 얘기다.
범야권 지지층을 두고 벌이는 쟁탈전의 예상 경로로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안 전 교수가 민주당으로 입당해 당내 투쟁의 길을 선택한다. 민주당에서는 경쟁을 당내 문제로 만들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으므로 선호한다. 하지만 안철수 측 인사들은 가장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나리오다.
둘째, 안철수 신세력이 범야권의 주도권을 장악한다. 정계 개편이다. 이 가능성을 높이 보는 쪽에서는 여론 동향에 주목한다. 3월4일자 (한겨레)는 ‘안철수 신당 창당’을 가정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새누리당 40.1%, 안철수 신당 29.4%, 민주당 11.6%로 조사됐다. 민주당 지지율이 폭락한다.
‘안철수 정계 복귀’ 소식이 반영된 3월8일자 (조선일보) 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새누리당 36.1%, 안철수 신당 23.6%, 민주당 10.6%였다. 핵심 지역인 호남의 동향은 더 주목할 만하다. 호남 지지율 분포는 안철수 신당 34.4%, 민주당 24.1%였다. 민주당은 호남에서마저 뒤졌다. 반새누리 여론층이 민주당 장기독점에 얼마나 피로를 느끼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이런 여론 지형이 정착된다면, 민주당 일각의 이탈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셋째, 안철수 신세력의 등장이 민주당의 혁신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어 범야권 내부 경쟁이 민주당의 승리로 끝난다. 호남과 친노라는 민주당의 양대 블록이 외부에서 직접 타격을 받기 때문에, 민주당 혁신 압력도 더 강해질 것이라는 기대 섞인 예측이다.
안철수 신당이 길게 보면 생각보다 강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이 시나리오를 뒷받침한다. ‘찻잔 속의 태풍’ 가설이다. 주류로 분류되는 한 민주당 의원은 “안철수 신당 지지율은 안철수 개인 브랜드와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핵심이다. 이를테면 ‘안철수 당’ 대 ‘문재인 당’으로 했어도 결과가 이 정도로 차이가 날까? 당이라는 형태의 현실 정치로 들어오면, 결국 유권자의 판단 근거도 달라진다. 안철수 신당의 조직력과 인재풀이 민주당을 넘어설 수 있을까? 지방선거까지 1년 넘는 기간에 개인 브랜드로 지지율이 유지될까?”라고 되물었다.
넷째, 당분간 안 전 교수가 개인 자격으로 움직이며 상황을 관망할 수도 있다. 정당을 만들고 인물을 영입하고 조직을 정비했다가 국면이 뒤바뀌면 몸집이 지나치게 커서 대응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영입 인물의 ‘품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기존 정당에서 밀려난 인사일수록 ‘고위험 고배당’인 새로운 모험에 기꺼이 뛰어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정치학 박사)는 “양당제하에서 안철수 신당과 같은 ‘외생정당’(기존 정당구조 밖에서 새로 등장한 정당)은 양당 체제 밖에 있는 유권자층을 정치로 끌어들이는 것이 핵심인데, 안철수 현상은 좀 다르다. 이미 체제 안에 들어와 있는 범야권 지지층 쟁탈전 성격이 더 짙다. 원래 이런 기획은 실패한다고 보는 건데, 한국은 워낙 역동적이고 불만의 누적이 두드러지는 정치환경이라 성공 가능성도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
안철수라는 대형 외부 변수에 직면한 민주당은 계파별로 셈법이 다르다. 4월24일 재·보선이 끝나고 열흘 뒤인 5월4일, 민주당은 지방선거까지 당을 책임질 새 대표를 뽑는다. 당권 장악이 유력하다고 평가받는 현 비주류에서는, 안 전 교수와의 연대·협력 방안을 내놓을 움직임도 있다.
현 주류인 친노 그룹 일각에서는 ‘문재인 조기등판론’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외부 충격이 등장할 때일수록, 내부 구심점이 든든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친노 중에서도 문재인 의원과 가까운 핵심 인사들일수록 “그건 문재인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고개를 젓는다. 친문재인 그룹의 좌장 격인 한 인사는 “문 의원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제대로 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일각에서는 전면에 나서는 것이 책임지는 자세라는 논리도 펴지만, 벌써 나서는 게 국민 상식에 맞는 얘기인가”라고 말했다. 문 의원과 가까운 또 다른 인사는, “당장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이 범야권 리더십 경쟁을 벌일 가능성은 제법 있다. 그게 나쁜 일도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 모든 시나리오는, 안철수 전 교수가 노원병에서 이긴다는 것을 대전제로 한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재·보선은 투표율이 낮아 고정표가 두터운 새누리당이 유리한 경향이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여서 정권심판 정서도 높지 않다. 안철수 측 핵심 인사는 “이 선거는 이미 상당히 어려운 선거다. 전력투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에서는 당협위원장인 허준영 전 경찰청장과 이준석 전 비대위원 등이 거론된다.
정치 고관심층에서 ‘안티 안철수’ 늘 수도
새누리당과의 일대일 구도를 만들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민주당은 도의상 후보를 내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 많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독자후보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진보정의당은 잔뜩 격앙되어 있다. 안철수 전 교수가 진보 정치의 몇 안 되는 지역 기반을 노리는 것이 적절하지 않으며, 삼성 X파일 사건을 폭로했다가 의원직을 빼앗겼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무시했다고 주장한다. 진보정의당은 노회찬 전 의원의 부인 김지선씨를 후보로 확정했다. 현재 분위기로 보면 완주는 물론이고 당 역량을 총동원할 기세다. 장기적으로도, 진보 성향의 정치 고관심층에서 안철수 안티가 늘어난 것이 부담일 거라는 평도 나온다.
안철수 전 교수는 3월11일 노원병 출마 이유와 앞으로 펼칠 정치 구상 등을 밝힐 예정이다. 그가 밝히는 구상을 들어보면, 앞으로 범야권 헤게모니 쟁탈전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반새누리 전선’의 민주당 독점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새로운 경쟁이 야권 전반의 체질을 강화시킬지 어정쩡한 타협과 계파정치의 악순환으로 되돌아갈지에 따라, 앞으로 총선과 대선의 지형도까지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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