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3-27일자 기사 '당신의 계좌에 수십원 빼가는 북한 해킹이 발생했다?'를 퍼왔습니다.
북한 사이버 테러 의심 분위기 편승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 무분별 보도
북한이 사이버 테러를 했다는 의심 분위기에 편승해 언론에서 확인되지 않은 북한 관련 정보를 보도하는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다. 전문가들의 시각에서 사실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 '엉터리' 언론보도의 경우도 나타났다. 북한측의 반론을 듣거나 확인할 수 없는 취재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상식을 벗어난 수준의 '카더라' 보도를 양산하면서 언론 스스로가 매체 신뢰성을 깎아먹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일 방송과 금융기관에 대한 해킹 사건이 터진 후 언론들은 북측의 사이버 테러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쏟아냈다. 기자들을 상대로 "북한에 무게를 둔다"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 역시 보도에 영향을 끼쳤지만 결정적으로 조사 결과 농협 사내직원 사설 IP를 혼동해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이 드러나면서 단정적으로 북한의 테러라고 보도했던 언론사들은 오보를 한 셈이 됐다.
26일 연이어 발생한 YTN의 홈페이지와 계열사 홈페이지가 다운된 것도 내부 전산 시스템 장애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뉴스전문방송 YTN도 20일에 이어 어제 또다시 외부 공격으로 전산망이 마비됐다"(동아일보 27일 사설)는 보도가 버젓이 신문 지면에 실리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북한 전문 인터넷신문과 탈북자 단체 홈페이지가 마비된 것도 외부 공격으로 추정이 되고 있을 뿐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탈북자 증언 하나만으로 소설?
북한을 위험 대상으로 과도하게 설정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 24일 중앙선데이의 (SMS 안 쓰는 45세 이상 계좌만 골라 北, 남한서 80~180원씩 1000억 빼갔다)라는 제하의 기사가 큰 화제가 됐다. 보도의 파급력 때문이라기보다는 너무 허무맹랑한 주장을 늘어놨기 때문이다.
(중앙선데이)는 "2012년 12월, 중국 동북3성의 단둥(丹東)·옌지(延吉)·선양(瀋陽) 등에 산재한 북한 정찰총국의 해커들이 일제히 한국 금융권 해킹에 들어갔다"며 "사이버 방화벽을 뚫고 예금자 정보를 훑은 뒤 45세 이상을 고르고 SMS 문자서비스 사용자는 제외했다. 그리고 이들의 계좌에서 80원부터 최대 180원까지 시차를 두고 빼냈다. 인출한 돈은 국내 대포통장에 넣어 최대 7번 정도 해외 계좌로 돌려 총 1000억원 규모의 돈을 모았다"고 보도했다.
보도의 근거는 단 한가지다. 탈북자 신모씨가 정찰총국 소속 박모 중좌를 통해 들었다는 것.
신모씨에 따르면 박모 중좌는 "왜 45세이고 SMS 사용자를 제외하는지 아는가. 20대는 200원에도 민감하지만 45세가 넘으면 은행 수수료로 보고 넘어간다. SMS 사용자를 뺀 건 예금 인출을 매번 자동으로 알려 주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중앙선데이)는 나아가 우리나라 국회의원 개개인의 성향을 인터넷을 통해 정밀분석한 뒤 "의원 계좌를 해킹으로 알아내 입출금 상황을 알아낼 수도 있다"는 박모 중좌의 주장을 여과없이 보도했다.

▲ 지난 24일 중앙선데이 기사
이 같은 보도에 대해 보안 전문가는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모바일 보안 전문기업 에스이웍스 홍민표 대표는 1000억원과 같은 큰 돈이 공통된 징후에 따라 일정한 패턴대로 모이면 흔적이 드러나게 돼 있다면서 역설적으로 최고 수준의 우리나라 은행 보안 전문가를 무시한 보도라고 지적했다.
또한 금융결제원에 액수가 뜨게 되고 이체에 대한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 은행 코드가 개인 송금으로 찍히게 돼있다는 점 등 감시망을 피해 이체할 수 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홍 대표는 "은행망에 접속하는 것 자체도 어렵다. 공중망으로 이체하는 것은 복잡한 단계로 이뤄져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은행에서 이런 일을 한 것도 말이 안되지만 여러 은행에서 했다면 공통적인 징후로 은행 보안 전문가들이 벌써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십원의 돈에 대해서는 수수료로 생각해 가볍게 생각하는 45세 이상의 사람들을 상대로 해서 계좌를 이체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젊은 사람이 부모님 이름으로 계좌를 쓰고 있는 경우도 많다. 당장 180원 정도 액수가 왜 빠져나가는지 의심할수 밖에 없는데 그런 일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IT 감독국 관계자는 "기사가 나와서 저희들도 은행 쪽에 알아봤는데 논리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면서 "10원이라도 자금이체를 하게 되면 계좌 비밀번호와 보안 카드가 있어야 하고, 은행에서도 매일매일 대조를 통해 10원이라도 맞지 않으면 결산이 안된다고 한다. 현실성이 없는 얘기지만 완전히 무시할 수 없어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 누리꾼은 1000억원의 돈을 모을려면 천만개의 계좌에서 한 계좌당 200원을 50번 인출해야지만 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전직 구속된 안기부장 초청해놓고 ‘첩보’ 주장 보도
TV조선의 경우 권영해 전 안기부장을 초대해 대담하는 형식으로 연일 북한 사이버 테러를 기정사실화하는 주장을 전파로 내보내고 있다.
지난 20일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 출연한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이번 사이버테러는 북한의 소행이 확실하다면서 우리나라가 북한의 사이버 테러를 지원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권 전 안기부장은 "사실은 북한의 IT 능력은 해커를 제외하고는 비교가 안된다. 이와 같은 해커를 양성하는데 고도 정밀화된 컴퓨터가 필요하다. 팬티업급 컴퓨터가 필요하다"며 "핵개발 하는 국가에는 수출을 제한하는 품목인데 (우리)정부나 개인 기업들이 북한에 주었던 사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권 전 안기부장은 "북한의 김일성 대학을 졸업한 최우수 해커들을 제3국에서 한국의 IT 회사들이 그쪽에서 훈련까지 해줘서 북한으로 보냈다는 첩보도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권 전 안기부장은 "대남 공작원들에게 마지막 남파되기 전에 교시를 한다. 그때 비밀리에 지시한 내용"이라며 지난 1974년 5월 김일성의 대남공작 담당요원과의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고 김일성 주석이 "칠레에서 아옌데의 경험은 선거를 통해서도 정권을 탈취할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며 "이제부터는 대남 국회공작에서도 프락치 공작에 그치지 말고 의석을 확보하는 공작으로 전환하도록 해야 하겠다"고 교시를 내렸고 현재도 이 교시가 유효하다는 주장이다.
권 전 안기부장은 "이번에 국회에 얘기되는 그 사람들이 저기에 연관돼 있다고 아무 근거없이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교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는 없지만 아무튼 여러가지 의구심은 많이 든다"며 "국회 뿐 아니라 지방의회까지 모두 다 진출이 그런 차원에서 된 사람들이 아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전 안기부장의 주장대로라면 국회나 지방의회에 이미 김일성 주석의 교시를 받고 종북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눈에 불을 켜고 잡아들여야할 사람이 국회나 지방의회에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권 전 안기부장의 주장이다.
권 전 안기부장의 발언을 자세히 살펴보면 '첩보', '~할 것' 등 결론에 가서는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결국 권 전 안기부장의 주장을 아무도 입증할 수 없는 동시에 주장에 대한 명예훼손을 교묘히 피해가고 있는 모습이다.

▲ TV조선에 출연한 권영해 전 안기부장
권 전 안기부장은 또한 과거 선거에 개입해 수사를 받고 현직 수장의 자리에 있으면서 구속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발언에 신빙성도 떨어진다.
지난 1997년 12월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는 '김대중 후보가 김정일한테 돈을 받았다'는 허위 주장을 펼친 작전을 실행하면서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권영해는 안기부법의 정치관여죄와 선거법 위반 혐의로 5년 형을 선고받았고, 안기부 자금까지 횡령한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7년 10개월형을 받았다. 과거 정보를 다루는 최고 국가기관의 수장에 있으면서 국내 정치에 개입했던 인물을 출연시켜놓고 미확인된 정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과연 언론매체의 윤리에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안보위기 조장하는 언론보도 지양해야
이희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최근 이 같은 사례의 보도에 대해 "전쟁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도의 질로 보면 사실을 왜곡하고 상상력을 발휘하고 양으로 보면 지나치게 많이 양산해 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처장은 "기본적으로 언론 보도는 팩트에 근거해야 하고 예상되는 일이거나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없을 때 가정을 해서 무리할 때도 있는데 지나치게 묘사하거나 국민 정서에 맞지 않은 억측을 해서 왜곡하는 보도행태를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진 기자 | jinpress@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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