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0일 화요일

TK는 지금… ‘박정희 성역화’ 경쟁 중


이글은 시사인 2012-07-09일자 기사 'TK는 지금… ‘박정희 성역화’ 경쟁 중'을 퍼왔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의원의 정치적 근거지인 TK 지역은 ‘박정희 성역화’ 작업에 경쟁적으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2009년 구재단이 복귀한 영남대에는 ‘박정희 대학원’이 세워지기도 했다.

구미역에서 출발한 택시는 ‘박정희로(路)’를 내달렸다. 새주소 사업이 진행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와 국도 33호선을 잇는 길이 2.8㎞, 왕복 4차로 길의 이름이 ‘박정희로’로 결정됐다. 생가로 향하는 길 위에서 택시기사는 박정희 체육관을 자랑하고, 대통령 부부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딴 정수초등학교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말은 풀이 죽어 있었다. “생가를 보면 실망하실 겁니다. 너무 초라해서 속상합니다.” 

금오산 자락 대지 754㎡(228평)에 조성된 박정희 생가는 박 전 대통령이 1917년 태어나 1937년까지 살았던 집을 복원해 만들었다. 1979년 박 전 대통령 사망 이후 희미하던 박근혜 의원의 공식 행보가 시작된 곳도 이 생가였다. 박 의원은 IMF구제금융으로 나라가 휘청이던 1997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생가에 초청해 입당을 선언했다. ‘아버지의 위업’을 잇기 위해 정치를 시작한 그녀다운 선택이었다. 생가는 그 이후로 ‘정치권의 성지’가 됐다. 경북의 공직 출마자뿐만이 아니라 대권주자들 역시 생가를 방문하는 것으로 자신의 출마에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시사IN 백승기

기자가 생가를 방문한 6월26일에도 사람들이 꾸준히 들고 났다. 생가의 방문객은 지난해에만 55만명이 훌쩍 넘었다. 1997년 전만 해도 한 해 2만여 명에 불과하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다. 생가 내부에 비치된 방명록을 보면 노인회나 상이군인회, 새마을과 관련된 단체들의 방문이 눈에 띈다. 방명록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자”라는 다짐의 말이 넘쳤다. 

“대구·경북 건드리면 가만 안 둔다”

한 지역 주민은 ‘금오산 이왕설(二王說)’에 대해 설명했다. 이 지역이 풍수지리상 왕(대통령)이 두 명 나올 지세라는 의미이다. 금오산은 부처가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 모습을 한 모양의 와불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주민은 “와불상의 이마 부근에 꽂힌 철탑이 정기를 누르고 있어 지난번(2007년)에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저걸 빨리 뽑아내야 한다”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금오산에 세워진 철탑은 6·25 전쟁 직후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군통신기지용으로 세운 것이다. 구미시와 미군은 지난 3월 기지 반환에 관한 합의문에 서명한 상태이다. 

생가 앞 주차장에는 ‘진주 노인회’에서 온 관광버스 5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생가 입구에 세워진 박정희·육영수 부부의 사진 입간판을 향해 “안녕하십니까! 고맙습니다!”를 소리내어 외치던 한 노인은 생가 내 분향소에 들러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이 노인은 “이만큼 먹고살게 해준 게 누굽니까? 젊은 사람들은 고마워할 줄을 몰라요”라며 박 전 대통령의 치적을 설명했다. 

‘대구·경북 새마을회’ 명찰을 달고 방문한 청·장년도 눈에 띄었다. 생가에서 150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높이 5m의 박 전 대통령 동상 앞에 선 이들 중 일부는 “누구든 대구·경북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라고 외치며 결연히 기념 촬영을 마치고 돌아섰다. 한창 공사 중인 생가 주변 공원화 부지 내에 위치한 이 동상은 지난해 11월 시민들의 모금을 통해 세워졌다.

택시기사가 ‘초라해서 속상하다’고 말한 생가 부근은 현재 대규모 예산이 투입돼 각종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박근혜 대망론’과 함께 지역 역시 들썩이는 형국이다. 먼저 2008년 시작된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은 7만8789m²(2만3000여 평) 대지에 도비 25억원, 시비 261억원이 투입된다. 영상실·유품전시실·기념품 판매소가 들어설 박정희 홍보관 역시 55억원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 이 사업은 2013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새마을공원 사업에 792억원 투입

중복 사업 논란도 있다. 새마을 농사 체험장 등 체험마을 형태로 꾸며질 ‘새마을 테마 공원’ 사업은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과는 별도로 예산이 책정되어 있었다. 26만3553m²(7만9000여 평) 부지에 국비 396억원, 도비 119억원, 시비 227억원 등 모두 792억원이 투입된다. 애초 계획된 예산은 1500억원이었다. 이 밖에도 구미시는 매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일인 11월14일 열리는 미술 공모전 대한민국정수대전에 1억7000만원, 탄신제에 7500만원, 추모제에 700만원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시사IN 백승기 충북 옥천의 육영수 여사 생가.

구미시만이 아니다. 경북도 내 지자체들은 너나없이 박정희 성역화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6월13일 문경 상리 청운각에서는 박정희 사당과 기념관을 갖춘 공원 준공식이 있었다. 시비 17억원을 들여 박 전 대통령이 문경에서 교사 시절 머물렀던 초가 하숙집 터를 바꾼 것이다. 구미시 재정자립도가 45%인 데 비해 문경의 재정자립도는 18%에 그친다. 역시 재정자립도가 겨우 13%인 울릉군은 15억원을 들여 박 전 대통령이 울릉도 방문 당시 숙박했던 곳을 박정희 기념관(가칭)으로 개관할 계획이다. 가난한 지자체 살림치고 큰돈을 쓰는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을 ‘선점’하기 위한 지자체 간 신경전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새마을운동 발상지가 어디냐를 두고 청도군 신도리와 포항시 문성리는 10여 년간 마찰을 빚어왔다. 청도군은 2009년 ‘새마을운동 발상지 청도’라는 문구와 이미지를 상표화해 발 빠르게 특허청에 등록했다. 2011년에는 ‘새마을운동 발상지 성역화사업’ 준공식을 열기도 했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청도군에 방문해 “새마을운동은 정신혁명이었다”라는 방명록을 남기기도 했다.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위치한 충북 옥천 교동리 역시 본격적인 성역화에 나섰다. 6월26일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충북 지역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70여 명이, 대구 남구의 노인정에서 90여 명이 생가를 다녀가는 등 이날 오전에만 400여 명이 생가 방문을 마쳤다고 했다. 지난해 17만명, 올해 6월까지 9만여 명이 육 여사 생가를 다녀갔다. 지난해 5월 생가 복원 당시 국비 4억원에 도비 16억원, 군비 16억원 등이 사업비로 쓰였다. 11월29일에는 육영수 탄생 86주년을 맞아 숭모제가 열리기도 했다. 2001년부터 시작된 탄생 숭모제는 2010년부터 옥천군이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이 됐다. 

그런가 하면 경북 경산의 영남대에서는 매달 1일 새벽 6시30분이면 ‘진풍경’이 벌어진다.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PSPS:Park Chung Hee School of Policy and Saemaul)’ 소속 외국인 학생들이 이른바 ‘새마을정신 실천운동’을 벌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PSPS가 적힌 새마을 조끼를 입고 청소도구를 든 채 캠퍼스 정화 운동을 벌인다.  

영남대 중앙도서관 12층에 위치한 이 대학원은 지난해 11월 영남대 이사회가 설립을 승인했고 올해 3월 첫 입학생을 받았다. 방글라데시·필리핀·캄보디아 등지에서 모두 15명의 학생이 입학했다. 석사 학위 과정으로 새마을학과와 공공정책리더십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중앙도서관 건물에는 박정희리더십연구원, 새마을연구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모두가 이른바 2009년 ‘재단 정상화’ 이후 벌어진 일이다. 이 중 박정희리더십연구원의 경우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협약을 맺어 구미시 예산에서 매년 1억원씩 지원된다. 또한 연구소는 지난해 6월 구미시와 조갑제닷컴의 후원으로 ‘박정희 리더십 독서감상문 대회’를 열기도 했다. 

2009년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20여 년간 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됐던 영남대의 정상화를 추진하며 사실상 구재단의 손을 들어줬다. 29세의 나이에 영남대 이사장에 올랐던 박 의원은 2009년 ‘종전이사’의 자격으로 이사 추천권을 행사해 측근 4명을 영남대에 앉혔다. 강신욱 전 대법관, 우의형 전 서울행정법원장, 박재갑 서울의대 교수, 신성철 카이스트 교수가 그들이다. 

“재단 정상화가 아닌 구재단의 복귀다. 박근혜 본인이 직접 들어오지 않고도 ‘섭정’ 체제를 갖췄다”라는 게 한 영남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의 설립 역시 박 의원이 추천한 이사들이 결정한 사항이다. 이들은 정관상 논란이 됐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교주(校主)’라는 표현도 세련되게 바꾸었다. 2011년 개정된 영남대 정관 1조는 ‘이 법은 대한민국 교육이념과 설립자 박정희의 창학 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적혀 있다.

1988년 국정감사 회의록을 보면, 영남대 설립자로 알려진 박 전 대통령 및 이사장을 역임했던 박근혜 의원이 영남대에 출연한 돈은 ‘0원’이다. 또한 당시 29명의 부정입학 사건, 인사 전횡 사건 등 각종 비리의혹으로 학원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었음을 알 수 있다. 박근혜 이사장은 이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퇴진해야 했다. 그런 영남대가 구재단 복귀와 함께 박정희를 다시 소환한 셈이다. 

‘5인방’ 최외출 교수가 대학원장 맡아특히 눈에 띄는 것은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장을 맡고 있는 최외출 교수이다. 1977년 ‘새마을 장학생 1기’로 영남대에 입학한 최 교수는 이른바 박근혜의 과외선생 5인방 중 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5인방은 박 의원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설립을 주도한 5명의 학자그룹을 일컫는 말이다. 최 교수를 비롯해 김광두 서강대 교수(경제학), 19대 국회에 비례로 당선된 안종범 의원, 김영세 연세대 교수(경제학),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경제학) 등이다. 

이름 밝히기를 꺼려한 대구 지역의 한 정치학자는 “정치권력이 지난 수십 년간 바뀌어본 적 없는 TK 지역은 여전히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과잉 충성심 경쟁을 벌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 의원이 이를 묵인하며 사실상 부추기는 면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 막판에 이르면 이런 ‘일부 세력’의 결집은 결국 박 의원에 짐이 될 수도 있다(20~22쪽 딸린 기사 참조).  

박정희는 여전히 살아 있는 모델이다.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설문조사에서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그 영향력은 ‘박근혜 대망론’으로도 이어진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박 의원의 최대 지지 기반인 TK와 TK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계도 째깍째깍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만, 그 시곗바늘은 미래가 아닌 박 의원에게 정치적 유산을 물려준 아버지를 향해 역주행을 하고 있다.

대구·구미·옥천/장일호·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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