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3-0-3-26일자 기사 '악당이 사라진 이후, MBC는 어떤 '인격'을 가질 것인가?'를 퍼왔습니다.
[전망]망명정부의 채권처럼 회수되지 않던 그가 해임됐다

▲ 지난 2010년, 출근하려는 김재철 사장과 이를 저지하고 있는 당시 이근행 노조위원장의 모습 ⓒMBC노조
한 동안 유행했던 표현을 빌자면 ‘잃어버린 3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재철 체제의 MBC 3년은 그 이전까지 누렸던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공적 영역도 최선의 올바름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어떤 사회적 믿음은 깨졌고, 최고 수준에 가깝던 공영방송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삽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PD저널리즘의 고유명사처럼 기능하던 이들은 기회를 원천 박탈당했고, 비옥하던 각종 경영 성과 지표들은 쓰나미라도 맞은 것처럼 황폐해졌다.
이 과정이 모두 김재철 사장을 원인으로 한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어찌되었건 김재철 사장은 그 모든 과정과 문제들의 발화점으로 존재하던 인물이었다. 김재철 사장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되는 정치적 상황의 최후적 존재이자, 방송을 장악해 집권을 연장한다는 정치적 기도의 현존이었다.
망명정부의 채권처럼 회수되지 않던 그가 해임됐다
망명정부의 채권처럼 회수되지 않던, 그 김재철 사장이 느닷없이(!) 해임되었지만 이건 어떤 완료가 아닌 이제 겨우 상황이 다시 시작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꽤 복잡한 반성이 필요할 것이고 고난할지도 모를 성찰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참이나 궤도를 벗어난 회로를 재정립하기까지는 또 얼마의 인내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모든 기대는 이젠 뒤집어진 의미에서 ‘잃어버린 10년’을 말해야 하는 정치적 체제라는 점에서 또 헛된 ‘망상’이 될 수 있음을 각별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우선, MBC가 회복해야 할 기치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존재 의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 보다 더 완벽할 수 없을 정도의 정치적 종속물이던 김재철 체제의 MBC가 잃어버린 공영방송의 ‘정신’을 되찾는 행위다. 공영방송은 ‘프로그램의 질, 다양성, 상업적 영향력에서의 독립성, 시민들과의 충실한 커뮤니케이션’ 등의 측면에서 존재 의의를 갖으며, 이를 토대로 ‘정치적 영향력에서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저널리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때, 존중될 수 있다.

▲ 2011년 8월 야당 추천 방통위 김충식(왼쪽),양문석(오른쪽) 상임위원이 진주창원MBC 통폐합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는 모습. 김재철 사장은 지역사 통합을 위해 사표를 제출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미디어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뉴스’의 재건이다
다소 추상적인 이 가치들을 방송 현장에서 구현하는 장치는 바로 ‘뉴스’이다. 뉴스는 방송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김재철 체제 MBC는 바로 이 가장 중요한 기능을 마비시키거나 혹은 절단 내고 유지되던 체제였다. 김재철 체제 이전에 ‘촛불’이라고 불리던 민주주의의 행렬이 한강을 건너 MBC로 향했던 적이 있다. 집단적 시민이 개별 방송국의 독립성을 지켜주겠다고 나섰던 그 광경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한국 방송사 전체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MBC는 ‘아직도 MBC 뉴스를 보느냐’는 조소와 회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 김재철 사장과 그의 마름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뉴스데스크-PD수첩-시사매거진2580의 진용을 가졌던 MBC의 저널리즘 진지는 지금 완전히 박살난 상태다. 김재철 해임 이후, 일차적인 과제는 이 진용의 복원이 가능할 것인가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MBC가 다시 한국 사회의 믿을만한 사회적 뇌 회로로 기능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김재철 이후 MBC의 뉴스가 재건될 수 있을 것인가를 판단 지표로 할 것이다.
뉴스의 재건을 통해 MBC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정상적인 언론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대중적 합의를 끌어내야 할 것이다. 현재, MBC는 광고주들로부터는 ‘언제 다시 장기 파업을 할지 모르는 방송’이라는 불안한 평가를 받고 있으며 대중들로부터는 ‘무한도전 외엔 볼 게 없는 방송’이라는 빈약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극단의 괴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은 파업을 하지 않는 것도, 무한도전을 더 잘 만드는 것도 아닌 방송 고유의 기능을 원래로 돌려놓는 것에 있음을 지각해야 할 것이다.
긍정적 선순환의 시작은 ‘사람’이다
이 과정이 준수된다면, 공적 영역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곧 채널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정상적인 흐름에 MBC가 안착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순환될 것이다. 이 긍정적 선순환의 시작은 의외로 간단하다. 가장 경쟁력 있는 인물들에게 원래 하던 일을 돌려주는 것이다. 사람의 문제다.
예컨대, MBC는 뉴스가 앵커라는 브랜드를 통해 ’소비‘되기 시작했음을 본격화한 채널이었다. 굳이, 따로 이름을 거론하지 않아도 단박에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을 정도다. MBC의 가장 경쟁력 있는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은 그러나 지금 MBC에서 방송을 하고 있지 않다. 어떤 이는 그 공허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기까지 했다. 또 몇몇 PD들은 그 자체로 한국 PD저널리즘의 고유명사이기도 했다. 그들 역시 김재철 체제의 희생물로 제거됐다. 이들 역시 복귀해야 할 것이다. 공영방송의 공적 위상에 대한 고민을 여전히 갖고 있는 이들이 복귀하고, 경쟁력을 검증받은 인물들이 제 역할을 찾고 요소요소에서 다시 조직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면 MBC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 26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는 김재철 사장의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미디어스
불안한 정당성은 은폐하는 수단으로서의 ‘경영 합리화’
그리고 이후의 개혁은 경영 합리화 논리 속에서 방송사가 기업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근본적 혁신이 될 것이다. 김재철 체제 MBC는 불안한 정당성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사실상 민영화에 준하는 조치들을 경영의 이름으로 단행해왔다. 이윤을 창출하고 경영을 합리화하는 것은 그러나 공영방송의 존재 목적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시청률 경쟁에서 MBC를 ‘3등 방송’으로 전락시키는 폐해만 가져왔다. 하지만 김재철 체제 이후 MBC 내부에는 차라리 민영화가 답이라는 견해를 가진 경영진들이 상당수 포진되어 시장 체제에서 MBC가 살아남는데 공영방송의 틀이 거추장스럽단 논리까지 등장한 형편이다.
김재철 다음의 사장이 정치적으로 김재철에 비해 덜 나쁘고 다소 온건하더라도 이 노선 위에서 MBC를 끌어가고자 한다면 이는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선 광고 판매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소신 그리고 지역 MBC와의 관계에 있어 합리적인 입장을 가진 이가 MBC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과제들이 있다. 제작 역량을 회복해 콘텐츠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부분도 있고, ‘조직의 노령화, 전 사원의 간부화’라는 비웃음을 사고 있는 관료적인 직급 구조를 개혁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김재철 사장이 워낙 망쳐놓은 것이 많아 사실상 모든 것을 다시 일구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수사가 아닌 진심으로 김채절 사장의 해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변화는 거대한 무엇을 해체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사소한 무엇까지 바꾸는 것으로 완성된다. 많은 이들이 MBC가 이명박 정부를 살아서 건너오길 기대했지만, 애석하게도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다시 MBC에게 새로운 ‘인격’이 부여될지도 모를 순간을 맞았다. ‘마봉춘’은 다시 어떤 의미로 사회에 자리매김할 것인가? 겨우, 시작이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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