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3-03-19일자 기사 ''윈윈 협상했다'는 민주당, 어디서 이긴거지?'를 퍼왔습니다.
[분석]산 이슈 다 내주고, 죽은 이슈 3개 받아온 민주당 '퀄리티'
민주당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18일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정부조직법 합의를 평하며 “박근혜 대통령과 국회, 그리고 여와 야 모두 윈윈(win-win)했다”고 말했다. “대화와 타협의 상생정치”가 이뤄졌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정치, 성숙한 정치의 모습”이라는 자화자찬이 이어졌다.
정말, 그러한가? 언론계 안팎에선 ‘도저히 질 수 없는 게임에서 졌다’는 평가와 ‘이길 순 없던 게임이라도 최악의 패배를 당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지만, 문 비대위원장의 평가는 이와는 근본적인 온도차를 보인다.
문 위원장이 이번 합의를 ‘윈윈’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여야 합의를 통한 해결’,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거수기 관계 재정립’,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닌 협상하는 야당’ 등의 세 가지이다. 합의를 했다는 것을 최우선 가치에 두고, 이 합의를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이뤄냈다는데 또 각별한 의미를 두는 판단이다.

▲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박기춘 원내대표 ⓒ뉴스
윈윈의 협상? 민주당의 정신승리는 아니고?
민주당에 안 된 말이지만, 이는 지극히 ‘승리적인 정리’ 즉, ‘정신승리’의 다름 아니다. 예컨대, 문 비대위원장의 논법은 시험을 마친 학생이 ‘시험이 끝났으니 무조건 잘했다’고 생각하며 그 근거로 ‘풀 수 있는 문제만 푼 실력’에 만족하고 자신은 이미 ‘등수와 상관없는 성적’인데 ‘시험을 거부하지 않은 것 자체가 성숙한 태도’였다고 판단하는 것과 같다. 어느 학생이 시험을 안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봤고 그나마 아는 문제는 꽤 풀었으니 잘한 것 아니냐고 물을 때, 뭐라고 답해야 하는 것일까? 문 비대위원장의 판단은 스스로 민주당이 한국 정치의 이런 학생이란 고백의 다름 아니다. 민주당의 존재 의의는 여당과의 협상을 위한 것이고, 여당과의 합의에서만 야당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할 때 그런 수동적 정치 집단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의 근본적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
물론, 예로 든 학생의 경우 공부를 하지 못하더라도 다양한 적성과 인성의 축적 과정이란 점에서 여러 가지 판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민주당의 경우 기회를 제공받는 학생의 입장과는 다르고, 그나마 이번 합의를 놓고 보면 ‘적성’과 ‘인성’에서도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는 것이 또 심란한 문제이다. 여야가 합의한 사항은 총 20여 가지이고, 이 가운데 정부조직법 개정과 관련한 것은 9가지이다. 그 밖의 11가지는 국회 운영과 관련한 내용들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이 부분에서 성과를 거두었단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혀 아니다.
정부조직법 합의도 문제지만, 부속 합의는 더 문제
상임위 개정을 제외한 국회 운영 관련 합의의 주요 내용은 ‘6월까지 인사청문회법 개정 논의’, ‘국가정보원 직원 댓글 의혹 관련 국정조사’, ‘4대강 감사 결과 이후 미진한 부분 국정조사’,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자격 심사’,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와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는 여야 동수 위원회 구성’ 등이 있다. 여야 합의가 ‘콘클라베’ 방식의 협상으로 이뤄져 어떤 것이 민주당의 제안이고 또 어떤 것이 새누리당의 제안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이슈의 방향과 주도성을 봤을 때, 민주당의 득실은 매우 저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선, 민주당이 따낸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국정원, 4대강 국감’의 경우 이미 죽은 이슈들이고, 지난 정부의 문제들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일한 사무관까지 다 들어낼 정도로 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꾀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 입장에선 하등 부담스런 이슈들이 아니다. 국정원 문제의 경우 대선 기간 중 발생한 사건을 포함하고 있어 폭발력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기관의 특성 상 민주당 입장에선 성과를 끌어내기 매우 까다로운 문제이다. 4대강 사업의 경우 이미 감사원이 이명박 정부 말기, 기존의 판단을 완전히 뒤집는 감사 결과를 내놓은바 있고, 친박 인사들 역시 사업 자체에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어 굳이 이를 정치 협상에서 주요한 합의로 가져갈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죽은 이슈 따내고, 산 이슈 내준 민주당의 협상력
반면, 새누리당이 요구한 것으로 보이는 ‘인사청문회법 개선’과 ‘이석기, 김재연 자격심사 건’은 민주당 입장에선 다소 뜬금없거나 말린 것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인사청문회법의 개정은 박근혜 정부의 인선이 난항을 겪으며 여권 내부에서 돌출적으로 등장한 문제의식일 뿐, 민주당 입장에선 굳이 6월까지라는 시점을 정해 시급하게 논의할 까닭도 이유도 없는 문제다. 이석기, 김재연 자격 심사 합의 역시 어떤 근거를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그 둘이 당선 과정에 불법을 저질렀다는 뚜렷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인데, 민주당은 무얼 근거로 그걸 합의했는지 알 수 없다. 새누리당 입장에서야 ‘종북’이라 심사를 해야 한다고 ‘선전’을 해도 되겠지만, 민주당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일각에서는 ‘이정희 대표가 대선 기간 중 박 대통령을 불편하게 한 것’에 대한 정치 보복 성격까지 거론하고 있는데, 민주당이 이에 말린 것은 아닌지 회의적이다.
마지막으로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와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는 여야 동수 위원회 구성’은 이슈를 점화해 끌고 간단 측면에서 민주당의 성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정치적 힘의 역관계를 감안했을 때, 하나마나한 실효성 없는 합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얼핏, 의석 분포가 적은 민주당이 동수의 위원을 구성하는 것이 유리한 협상 내용처럼 보이지만 그게 뭘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여야가 동수로 구성했던 ‘미디어발전위원회’ 역시 민주당은 뭣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형식적 절차의 ‘알리바이’만 만들어준 꼴이 되고 말았었다.
매번 이런 협상을 하는 게 민주당의 '퀄리티'
결국, 새누리당은 ‘정부조직법 원안’을 사수하며 부속적인 내용은 ‘보완 장치’로 남겨주는 정도에서 협상을 해냈다. 반면, 민주당은 애초 요구했던 SO 방통위 고수를 관철하지 못한 채 다소 완충적인 지대를 만들어낸 것 정도에서 협상을 마무리했다. 이에 딸린 부속합의는 구도만 놓고 보자면, 민주당의 요구를 대폭 새누리당이 수용하는 것이 마땅할텐데 어찌된 일인지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요구가 절반씩 포함됐고, 결과만 놓고 보면 민주당은 ‘죽은 이슈’를 새누리당은 ‘산 이슈’를 따낸 양상이 됐다.
‘협상’의 사전적 의미는 “양방향 의사소통(communication)을 통하여 상호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의 합의(agreement)에 이르는 과정”이다. 민주당은 양방향 의사소통이 됐고,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며 이번 협상 결과에 만족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민주당에게 ‘양방향 의사소통’은 대화를 했단 것 그 자체이고 ‘만족할 만한 수준’은 협상의 주체로 본인들이 존재한단 사실 그 자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민주당은 왜 늘 이런 협상을 하는가의 해답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협상 결과야 말로 민주당의 ‘퀄리티’, 정치적 실력이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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